휴지통을 비울 줄 모르는 기성세대들
세월은 나이를 먹게 한다. 나이는 늙는 약이나 다름없다. 한 해가 지나면 또 그 약을 먹게 된다. 요즘은 약을 먹는 것이 겁이 난다. 갈수록 먹는 주기가 짧아지고 약효도 강력해진 느낌이 들어서다. 약을 장기간 복용하다 보니 없던 주름이 생겼고 검은 반점도 여기저기 많이 늘었다. 듬성듬성한 머리카락이 허옇게 탈색된 지 꽤 지났다. 성인병으로 고장 나기 시작한 곳이 여러 군데다. 마음에 비해 몸은 노화가 빨리 진행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슬픈 일을 당해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반가운 순간에 흘러나온다.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알아서 반응을 할 때 나이 든 슬픔을 느낀다. 아직은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있는데 벌써부터 몸이 망가져 말을 잘 듣지 않으니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지도 한다. 나이를 먹더라도 마음은 더 녹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마음이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같은 기대를 가져본다.
달은 차면 기울기 마련이다. 사람 마음도 그런 것이 아닐까. 연륜이 쌓이면 시야가 넓어지고 성숙한 사고를 해야 마땅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연륜이 쌓일수록 폭넓은 안목으로 세상을 더 정확하게 바라봐야 정상이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노인이 되면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처럼 변한다. 몸의 행동을 마음이 따라가지 못한다. 뭘 가지러 가놓고 왜 왔는지는 까먹는다. 5~60년 전에 있었던 일은 생생한데 방금 전에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단순 사고형 인간이 되고 만다.
과거에 의지하고 매달리는 사람이 보수다. 지난 시절을 옹호하고 지키려고 하는 이들이 보수다.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잃어버린 상태다. 나이 들어 벅차니 움츠려들 수밖에 없는 존재가 보수적 성향을 띄는 이들의 공통점이다. 밤이 두려울 나이가 지났는데 어둠을 두려워하는 존재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낮에는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서 밤이 되면 상념에 사로잡혀 잠을 설쳐대는 사람들로 나이든 기성세대들의 비애가 아닌가 싶다.
산업화와 민주화 시절에 깨어있던 진보 지식인들이 꽤 있었다. 대한민국의 희망이나 다름없는 이들이었다. 대중적 인기를 차지하던 유력 인사들 가운데 인격이나 식견이 뛰어난 성인(聖人)에 가까운 사람이 된 사람은 보질 못했다. 저급한 동물적 본능을 지칭하는 성인(成人)으로 변질된 사람들만 있다. 옳고 바른말하던 훌륭한 인물들조차 퇴물로 변질된 사람들뿐이다. 한 때 우상처럼 여겼던 인물이 타락한 극우적 인사로 변질된 사람들 이름조차 입에 담기가 싫다. 한 때나마 따르고 좋아하던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주위에 아는 동창이나 친구들이 역시 마찬가지다. 보수를 떠나 극우 세력의 편에 가까운 상태다. 국민의 힘을 지지하는 민심의 75%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를 지지했던 사람들 조차 보수 지지층으로 바뀐 듯하다.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의 정치적 보수 성향은 해방 후부터 이어진 오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이념으로 받들고 이를 공산주의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명분을 중시하는 반공 세대라 할 수 있다.
냉전시대가 지난 지 20년이 지났어도 독재권력이 휘두르던 반공 이데올로기에 지배를 받으며 사는 꼴이다. 현대 문명을 살면서 현대인으로서 상식이나 논리에 맞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민주주의 이념 체제에 살면서 반공주의 이념 체제에 지배를 고수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사이비 종교 맹신자들이 교주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자신은 뻔한 거짓말을 믿으면서 진실을 왜곡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이들과 똑같아 보인다.
누구나 사이비 교주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다 안다. 정작 사기꾼 꾐에 놀아나고 있는 자신들만 모르는 척 억측을 부리고 외면하려는 것일 뿐이다. 교주를 맹신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것이기에 자신의 선택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변화를 싫어하는 기성세대들의 낡은 사고방식도 마찬가지다. 프레임에 갇혀 사는 자신들을 성찰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 있다. 기성세대들 스스로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판단이 현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빠져나올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는 것이다.
설령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선택임을 깨달았어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지지하던 후보를 끝까지 지지할 수밖에 없다. 불가피한 선택으로 믿으려 애를 쓰게 된다. 명백한 판단 착오조차 끝까지 옳다고 우기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모함일 거라 핑계를 대거나 또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을 것으로 확신하며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다. 자신이 믿고 싶은 부분만을 반복적으로 강화하여 장벽을 쌓아 이견이 들어갈 틈을 아예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좋은 말로 하면 신념이 강한 사람이지만 앞 뒤가 꽉 막힌 사람인 것이다.
나이 들면 자연스럽게 보수가 되는 원인은 또 있다. 나이가 들면 뇌의 조절 기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전두엽보다 편도체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공포나 두려움을 관장하는 부분이 편도체이다. 전두엽이 발달한 젊은 시절에는 불안정한 변화에 적응을 잘할 수 있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전두엽이 아닌 편도체에 의지하면서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불안에 대비한 안전에 민감한 편이 되기 때문에 보수적 성향을 띄게 되는 것이다.
진화 심리학에서도 변화에 대한 민감성과 위협에 대한 불안은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편도체 의존적인 보수 성향이 과다해지면 현실에 괴리가 있는 거짓 선동에 과잉 반응하기 십상이다. 극도로 불안한 상황에서 머리가 하얘져 정상적인 판단을 못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새로운 자극에 대한 반응이 현저히 낮아지면 확증 편향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자극이나 변화에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하얘진 상태로 판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당연히 변해야 할 것조차 변하면 안 될 것처럼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변화나 개혁이란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삶이 말해주듯 상식처럼 생각하던 일들을 꼬집고 의심하는데서 혁신은 시작될 수 있다. 불공정한 삶으로 인해 삶을 힘들게 만들었던 요인들이 바로 변화의 대상이다. 언론이든 검찰이든 국회든 그릇된 관행들이나 적폐가 개혁의 대상인 것이다. 기득권 세력의 몰상식이 사라져야 미래 사회의 삶에 기대와 희망을 걸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면서 4~50년 전 배운 지식이나 경험에 의존할 순 없는 노릇이다. 급격한 성장과 발전으로 선진국이 되는 과정에서 어제까지 써먹던 지식과 경험이 하루아침에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상황을 수없이 목격해왔다. 기계식이 전자식으로 바뀌고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충격은 엄청났어도 세상은 끊임없이 진보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의 부족함을 딛고 삶은 더 나은 방향이 진화하기 마련이다. 새로운 문명이 등장하면 옛 것은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순리다. 아이패드 세대들에게 붓글씨 배워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가 되면 곤란한 일이다. 과거가 미래의 갈 길을 막고 발목을 쥐고 있는 꼴이다. MZ세대들이 주역이 되어 살아갈 미래는 그들 스스로 삶의 방향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