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한국에 맞는 '교육개혁'

의식을 바꿔야 사회가 바뀔 수 있다

by 최길성

100년 전 사람들이 현실 세상을 본다면 모든 것들이 깜짝 놀랄 일들 뿐이다. 평균 수명 40세 밖에 되지 않았던 수명이 79세나 된다. 원인을 알지 못하던 대부분 질병이 퇴치되었다. 세계 어느 누구와도 통신이 가능하고 어디든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다. 배가 고파서만 먹는 게 아니라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골라 먹는다. 제철 과일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다. 많이 먹어서 비만이 된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힘들지 않는 노동으로도 먹고 살 수 있고 삶의 질은 휠씬 풍요로워졌다.

3~40전과 현대도 삶의 차이는 현저하게 달라졌다. 전혀 딴 세상이라 할 만큼 많이 다르다. 문명의 진화로 삶은 나아지고 개선되고 있음을 뜻한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고 참고 견뎌야 하는 불편 부당한 일들이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새로운 문명과 제도가 들어서면서 일상생활은 나아지고 좋아질 것이 자명하다. 사회가 진화되는 모습은 의식이 변하면서 제도에 반영되어 제도가 바뀌고 삶이 달라진다. 문제는 인간의 의식 변화가 느리다는데 있다. 의식의 변화 속도가 느려 진화가 더디게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5살 된 손자가 갖고 노는 전자 기기조차 다루기가 서툴다. 휴대전화에 내장된 다양하고 유용한 어플이 있어도 내겐 있으나마나한 기능이다. 기존에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나 의식이 문명의 혜택을 거부하는 격이다. 오래된 사고의 습관을 버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유익한 기능이라 할지라도 익숙한 방식을 고집하는 까닭이다. 쉽게 변하기 어려운 의식구조로 현실에 적응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수 십 년 전 방식대로 현대를 살아가는 모습은 마치 원시인이 타임머신을 타고 온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아는 것이 모르는 것이 될 수 없다. 기억이나 사고는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이러한 인지 속성은 전통이나 문화를 오랫동안 유지하는데 유리하다. 익숙하고 편함을 고집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기존의 방식은 아무래도 구식일 수밖에 없다.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경우가 많다. 이는 새로운 미래로 진화하는 데는 걸림돌이 되거나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농경사회에서 산업 자본주의, 자유 경쟁 사회로 변해왔다. 하지만 구시대의 잔재들이 삶의 곳곳에서 발목을 잡고 있는 것들도 많다.


구시대 유물로는 봉건적 유교문화와 일제 식민사관, 권위주의적 군사문화 등이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공존하고 있다. 현재나 미래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치욕적인 슬픈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나 다름없다.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의해 심긴 식민지 노예근성의 뿌리에서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어도 식민지 노예근성이 사라지지 않는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1910년 8월에 발표된 조선교육령에 기조한 교육방침과 교육에 관한 법령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일제는 조선교육령을 몇 차례 개정하면서 신민지 우민화 교육정책을 35년이나 펼쳐왔다. 전시체제를 강화를 위해 강제 동원이나 황국신민화를 위해 개정되었고 각종 토목공사에 동원이나 자원 채집, 학도병으로 강제 지원을 위해 개정시키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개정된 일제의 조선교육령은 조선인을 영구히 식민지화하려는 지배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인의 고등교육을 억제하고, 일제에 충성하는 하급 직업인만을 양성하려는 식민지 우민화 교육정책이었다. 이는 군사독재 권력에서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권위주의적 위계질서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고질적인 사고방식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는 배경이다.


대한민국은 2021년 7월 세계 선진국에 진입했다. 무역순위 10위와 잘 사는 경제규모가 세계 7위나 되는 잘 사는 나라가 됐다. 국제 사회가 인정하는 선진국 요건을 충족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다. 가장 못 사는 빈곤한 나라가 불과 57년 만에 일궈낸 쾌거다. 눈부신 경제 성장과 국민의식으로 이뤄낸 결과다. 한국인의 우수한 두뇌와 근면 성실한 국민성이 땀 흘려 일한 대가이어서 자랑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급속한 경제적 성장과 발전 속에는 많은 상처와 인내가 있기 마련이다.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의 고충과 희생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세계 선진국 지위 인정은 뿌듯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어깨에 무거운 책임도 함께 지어져야 한다. 스스로 자립 경제를 이끌어 가는 것은 물론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나라에게 도움도 줘야할 의무가 부여된다. 선도적 국가로서 역할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영세한 농업국은 자국의 농업을 국제 사회가 보호해주지만 선진국이 되면 그렇지 않게 된다. 한국의 농업정책이 타격을 입게 되어 농민들의 삶이 더욱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영세한 농민들의 삶이 더욱 곤란에 처할 수밖에 없다. 선진 문명의 혜택을 입은 국가로서 그만큼 국제 사회에 돌려줘야 할 몫이 생겼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선진국으로 진입한 것은 국가나 기업, 중산층이다. 서민들의 삶이 선진화되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수준은 못된다.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OECD 36개국 중 34위 수준에 머물러있다. 서민들의 삶은 오히려 치열한 경쟁에 살기가 힘들어졌다. 상실의 아픔까지 서민들의 고통은 더 어려워졌다. 경제성장과 개발로 고립과 소외당한 계층이 더 먹고살기가 어려워졌음을 뜻한다. 빈부 격차는 오히려 더 심해졌다. 미국 다음으로 심각한 나라다. 부동산 투기 공화국으로서 비난과 우려는 격심한 빈부 격차를 말해주고 있다. 검찰이나 언론, 교육 등 사회 전반 분야가 오염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불신과 불안의 수준이 극에 달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자유롭고 행복한 미래 사회가 되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들이다.


고장 난 사회를 고치기 위한 최우선 과제가 교육이 아닌가 한다. 선진 시민 의식 개혁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개인의 의식이 변하는데 주된 영향을 미치는 것이 교육이다. 언론의 역할과 기능도 중요하지만 교육 개혁이 최우선 비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형 교육이념과 제도는 미래 사회의 삶에 적합하지 않다. 더구나 그릇된 사고와 태도를 바꾸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선진 시민의식을 갖춘 미래 지향성 인간성 교육으로 교육 개혁이 시급한 까닭이다.


현재까지 우리의 교육은 일제 강점기 때 황국신민화 교육에 뿌리를 두고 있다. 주인이 아닌 노예를 키워내는 교육에 의존해온 것이다. 교육 개혁을 첫 번째 개혁 과제로 꼽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제의 식민 노예를 길러내는 복종형 인재 양성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은 그동안 신민화 교육으로 반공투사와 산업 일꾼을 키워냈다해도 믈린 말이 아니다. 민주화 사회가 된 지 30년이나 지났지만 교육이념과 체제는 그대로 변하지 않고 있다. 인간을 생산자원 내지 인적자원으로서 키우는 교육 목표는 변함이 없다.


교육개혁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교육이념이다. 최근 국회에서 홍익인간 이념을 취소하는 법안 발의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까지 한국의 교육이 추구하는 기본 이념이 홍익인간이다. 홍익인간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고조선의 건국이념이자 대한민국의 교육법이 정한 교육의 기본 이념이다.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이타적인 인간을 추구하는 기조 원리는 숭고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의 교육과 정치를 반성하고 문명과 윤리를 비판하는 가치와 이념으로써 손색이 없어 보인다. 덕성과 역량을 가진 인재를 교육하고 권력이나 돈과 같은 가치가 아닌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활동이어야 한다는데 이견을 가질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바꿔야 교육이념은 바꿔야만 한다. 과거 추상적 신화에 굳이 교육이념의 바탕을 둔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신화는 말 그대로 그럴싸하게 꾸며낸 말에 불과하다. 현대 자유 민주 시민의 삶의 기조를 고조선 건국이념에 맞춰야 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홍익인간은 일제의 군국주의가 조선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건 구호였다. 일제의 제국주의가 요구하던 인간상에 맞춰 한국 교육을 유지하려는 자체에 의문을 가져야 할 일이다. 해방 후 지금까지 황국신민 사상에 익숙한 교육계 인사들이 이끌어온 교육체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교육의 한계와 병폐를 지니고 있는 신민화 교육정책과 제도를 바꾸지 못한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어 보인다. 과거의 과오를 더 이상 답습할 까닭은 없질 않는가.


두번째 교육 개혁은 대학교육까지 무상교육을 실현해야 한다는 점이다. 교육이 돈벌이 수단인 한 교육의 역할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으로 인색되어야 한다. 사회 구성원의 자질과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해주는 역할이 교육이 할 일이다. 교육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게 하고, 직업이 귀하고 천함이 없다는 인식부터 가르쳐 주어야 한다. 누구나 공동체 삶에 유용한 사람으로서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교육에서 가르쳐야 한다. 인격 완성에 필요한 교육이지 상품처럼 도구를 키우는 것이 교육이 아니다. 교육을 투자로 접근하는 현실 교육에서 벗어나는 교육이 요구된다.


무상교육은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지만, 본질적으로 한국사회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 사회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가 되고, 노동 현장에서 비정규직이나 인턴이 넘쳐나고 있다. 정규직도 언제 해고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고용이 불안한 사회다. 한번 삐끗하면 영원히 빈곤에서 헤어날 수 없는 구조다. 노후준비는 못해도 자녀 교육은 시키는 사회다. 이 마저도 안 되면 목숨까지 내놓는 참담한 사회다. 이러한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비싼 등록금이 있다. 교육이 개인의 출세 수단으로 인식되선 안 된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교육이다.


교육자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대학교육에 치부를 드러내기가 민망하다. 부끄러운 속내를 드러내면서 가책이 느껴진다. 미래 사회를 망치는 교육에 그렇다고 변죽만 울리고 있을 순 없다. 학부모에게 짐이 되고 학생들을 괴롭히는 불행한 현실 교육에 한없이 모른 채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교육제도나 기구 따위가 개혁되지 않으면 한국 사회 미래도 크게 나아지기 어렵다고 믿는다. 학생들이 교육 감옥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지옥 같은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교육만이 살길처럼 외쳐대는 모습이 안타깝다. 60년 동안 기득권들의 논리에 내면화되어 교육 개혁이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학재단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한국 대학의 85%가 사립대학이다. 대학은 이미 거대 자본가의 이익 추구 집단으로 변질되고 만 셈이다. 교육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무다. 그러한 책무를 개인에게 특혜와 재갈을 물려주며 책임을 전가한 격이다. 8~90년대 권력은 학령인구 감소 추세조차 감안하지 않고 학교법인 설립을 우후죽순으로 인가해 줬다. 그 후 사학재단에 대한 관리와 감독을 소홀한 탓에 불법비리 사학 문제는 관행처럼 되어 있다. 입학 정원을 못 채우는 부실한 대학이 전반이나 된다. 대학교육을 돈벌이 수단으로 허용해주면서 전혀 예상치 못할 결과가 아니다. 학교법인이 대학을 지원하는 본연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등록금으로 학교법인의 자신을 불리는 부정과 비리 대학이 적지 않은 현실이다.


교수는 교육과 연구, 봉사 활동이 본본이다. 그러나 현실은 본분 이외에 학생 모집과 취업 전선에 뛰어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의 질과 교육에 내실을 갖추는 교수의 역량이 대학의 존립과 이해관계에 이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학의 교육 경쟁력 대신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뜻한다. 학생을 뽑지 못하는 부실대학조차 쉽게 퇴출시키지 못한다. 정원을 줄이라고 하면 등록금으로 불린 자산을 돌려달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질 높은 교육이나 연구에는 관심이 없고 이익만 챙기려는 사학재단이 분명하다. 대학을 개인 소유물로 생각하는 사학재단을 위한 사학법부터 개정하는 일이 시급한 일이다. 국가의 지도 감독 권한을 강화하여 대학교육을 정상화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한 일이다. 교육을 국가의 공무로 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대학이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대학 교육 자체가 제구실을 할 수 없다. 권력에 좌우되면 건전한 비판은 불가능하다. 학문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밥그릇 싸움만 하는 격이다.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돈 이외에는 섬기지 말라는 자본주의에 절대복종하는 인재를 키우는 격이다. 학교가 학생들은 자본주의 도구나 상품으로 취급하여 길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학생들에게 자유나 행복, 사회 정의를 위한 비판은 이상주의자들이나 지껄이는 헛소리쯤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불의나 잘못이 만연된 사회를 보고도 비판이나 저항하는 지성인의 목소리가 사라진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세 번째는 서열과 학벌을 조장하는 교육 풍토를 바꿔야 한다. 서열과 학벌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교육의 미래는 기대할 수 없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성적순과 학벌 순을 만들어내는 서열 평가를 위한 교육은 인간을 상품화하는 수단으로 길러내는 일에 불과하다. 한우에 등급을 매기듯이 정답을 찾는 선수에 대한 상품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닥치고 불평등 사회에 종속된 인재가 되라는 의미나 다름없다. 자신의 이익과 출세를 위해 권력에 충성하고 조직에 충성만 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정치와 자본에 맹종하는 말 잘 듣는 노예근성을 심어놓는데 적합한 교육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부모의 삶은 자식을 낳아 키우는 재미가 전부나 마찬가지다. 현행 교육제도와 교육환경은 교육비 부담을 감당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뒤쳐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교육비 부담은 생계를 위협하는 수준이다. 학생 수가 줄어들어도 사교육 시장은 커지고 있는 현실이 말해준다. 다른 의미로는 개인의 자질과 역량에 따라 균등한 교육 기회를 받을 권리를 국가가 빼앗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성적 지상주의 교육의 가장 큰 폐해는 청소년들의 삶이 불행하다는 점이다. 성적에 대한 강박관념이 청소년 자살률 세계 최고인 대한민국이라는 불명예를 만든 것이다. 성적 서열화는 정답을 잘 찾는 순위로 열패감과 우월감을 내면화시키는 꼴이다. 무시와 차별을 생성하는 근원을 교육이 제공하는 셈이다. 불평등과 우월주의를 신념으로 키우는 그릇된 교육을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다.

대학에 다니던 아들이 K닭발에서 2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아르바이트에 나름은 꽤 긴장을 하는 모양이었다. 손님 테이블을 정리하고 음식을 날라주는 허드렛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먹고사는 일면의 속살을 단단히 경험했던 모양이다. 깐깐한 주인과 술 취한 손님을 대하는 노하우도 터득했다 한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배워야 할 내용을 바쁜 현실사회에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가르쳐 준 꼴이다. 일을 하면서 노동도 배우고 인격도 많이 깨닫고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답을 찾는 시험 선수를 기르기 위해 메모리 사용 기술에 쓴 교육비를 낭비한 꼴이다. 어떤 의미에서 학벌과 서열만 중시하는 교육에서 얻은 것은 현실사회에서는 무용지물인 것이 태반이다. 냉혹한 현실사회에서 살아남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지, 도덕적인 이론으로 무장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조금 더 많이 배우고 조금 더 많이 안다고 삶이 푸짐하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만고만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미래사회를 위한 교육개혁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실현하는데 자격을 갖춘 인격체를 키우는 것을 교육의 기본으로 삼으면 충분하다. 민주시민으로서 주인의식을 갖춘 인격체 양성이 교육이 해야 할 우선과제가 아닐까 싶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살아갈 존엄한 인격체로서 성장을 돕는 교육의 역할을 교육개혁을 통해 실현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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