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의식으로 살아가는 지혜

누구나 열등감을 안고 살아간다.

by 최길성



어느 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아들이 '아빠! 나 눈썹 문신을 하고 싶은데 아빠 생각엔 어때!' 하며 묻는다. 그 말을 들은 뇌리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한다. 눈썹에 열등감을 느낀다는 말이 일단 엉뚱하게 들린다. 그러고 보니 요즘 아들이 외모에 부쩍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좋아하던 치킨을 먹자는 말에 사양을 하고, 운동으로 땀에 흠뻑 젖어있는 모습을 종종 본 적이 있다. 좋아하는 여자 친구이라도 생긴 것이 아닌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외모나 미용에 관심을 갖는 아들 모습이 너무 생소하기 때문이다. 우선 왜 눈썹 문신을 하려고 하는지 궁금하여, ‘어째서 문신할 생각을 하게 됐지?’를 물었다.


아들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다가,‘학과 선후배들이 눈썹 문신이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아들 눈썹을 뜯어보더라도 열등함은 찾을 수 없었다. 아빠 입장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아들 눈썹에는 못생기거나 약점을 찾을 만한 구석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네가 눈썹에 열등의식이 있어서 문신을 하고 싶다면 찬성은 하는데, 타투로 너의 자존감이 달라질지는 의문이다.’는 답변밖에 따로 할 말이 없었다. 엄마에게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면 합리적 근거와 논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경험한 아들이다.


지난여름 방학 때 일이다. ‘아빠! 나 머리 염색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엄마가 '사내 녀석 머리카락에 울긋불긋 물들인 모습이 꼴사납게 보인다.'며 반대를 하니 아빠가 응원군이 좀 돼달라는 거였다. 아내는 ‘학생을 가르칠 녀석이 자기 몸부터 단정하게 할 줄 알아야 할 것 아니냐.’며 거절 이유를 대서 못을 박아놓은 상태였다. 더구나 엄마는 아들 바보나 다름없다. 아들이 원하면 무조건 들어주는 늦둥이 편애가 심한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반대를 하고 있으니 머리 염색을 위한 엄마 카드 찬스는 놓치기 일보 직전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미용이든 타투든 성형이든 몸과 마음을 치료할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부모는 없다. 나 또한 예전 같으면 그랬다. 일언지하에 아들의 눈썹 문신을 거절부터 했을 것이다. 그런 아빠에게 자신의 용모에 대해 상의할 자녀가 누가 있겠는가. 애초부터 여쭤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포기하거나 자기 맘대로 해놓고 변명하는 편을 선택했을 것이다. ‘아들이 앞으로 노랑머리를 해볼 기회는 없을 것 같은데. 게다가 여름방학을 이용해하고 싶다는데 기특한 생각이 드는데.’라고 거들었다. 엄마의 반대로 위기를 맞았던 엄마 찬스가 유효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열등의식을 갖고 있다. 체격이나 용모, 성적 기능처럼 신체적인 요소만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학력이나 경제력, 출신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사람에 비해 열성이나 열세라고 느끼는 것은 누구나 갖고 있다. 나에게는 가난과 학벌이 열등의식 속에서 나를 늘 짓누르고 있었다. 평생을 족쇄처럼 따라다니며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내 인생은 한마디로, 없이 사는 서러움과 지방대학 출신이라는 자격지심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으로 살아온 인생이라 할 수 있다. 열등감에 의한 자극이 없었다면 박사학위에 도전하는 일도 대학 교수가 되는 일도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남들과 비교하고 평가받으면서 자란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려면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비교로 인해 생기는 비교병이 필연일 수밖에 없다. 누구든 자신의 열등감을 만회하고 극복하려는 욕구를 갖고 살기 마련인 것이다. 그럼에도 열등감이 심각한 정신질환이 되는 까닭은 자신의 결함이나 약점을 의식하지 못하고 자기기만에 빠지는 경우가 그러하다. 일례로 자기 자랑만 일삼거나 다른 사람 험담을 즐기는 사람 심리가 그런 부류에 해당한다.


태생부터 무기력하고 열등한 존재가 인간이다. 태어나 20년 동안 부모의 도움을 받아 생활력을 키우고도 불안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동물이다. 스스로 독립할 자격을 부여받았어도 둥지를 떠나지 못하고 망설이는 동물이 인간뿐이다. 그만큼 인간은 미력하고 연약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열등의식을 안고 사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자신의 열등감을 지우는 것이 삶의 목표이자 원동력이 되는 셈이다. 인간이 일평생을 배움으로 깨달으며 살아가면서도 부족함을 느끼는 존재가 인간이다.


자신의 존재 가치나 다름없는 것이 자존감이라면 열등감은 자존감에 난 상처나 흠결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열등감을 들춰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자신의 마음속 상처는 누구나 숨기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특히 남들이 전혀 알지 못한 자신의 상처나 민낯은 드러나지 않길 바라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정계의 명사(political celebrity)나 인기 스타의 극단적인 선택도 자존감에 난 상처 때문이다. 자살충동을 견디지 못할 만큼 흠결의 노출이 두려워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생사를 좌우할 만큼 열등의식은 중요한 요소이다.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여 나답게 사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삶을 파멸로 이르게 만드는 충격적인 사건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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