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 있는 반석천을 따라 산책을 하다 보면 플로깅(Plogging)을 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30대쯤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봉지와 집게를 들고 산책하는 모습이다.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이 플로깅이다. 누군가에 의해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진 쓰레기를 봉지에 주어 담고 있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진다. 내가 버린 오물은 아니어도 내 얼굴이 화끈해진 기분이다. 고마운 일을 하는 분에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마음속으로 '환경운동을 하고 계신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를 몇 번이고 외쳐본다.
미세먼지나 환경오염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다. 개발과 기술의 발전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그림자다. 인간만이 유일한 존엄한 생명체라는 고정관념에 맞서 자연의 오염을 대변하는 환경 운동가를 보면 나도 몰래 고개가 숙여지게 된다. 1940~1950년대 인간에 유해한 만능 살충제 DDT로 '침묵하게 된 봄'을 이야기한 레이철 카슨을 비롯해 최근 기후온난화 경고하고 나선 세계적인 10대 환경 운동가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에 우리 모두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썩어 없어지는 데 500년이 걸린다는 플라스틱 원료 소비량 세계 1위, 온난화 주범 이산화탄소 배출량 4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환경오염에 대해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모든 환난이나 재앙, 재난, 대형 참사 모두가 사전에 예견된 일이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은 없다. 인간의 이기적 삶을 위해 알면서 모른 척 외면한 채 살뿐이다. 지구 전체를 펜데믹에 빠트린 코로나 19 사태도 마찬가지다. 자연을 파괴를 일삼고 환경을 오염시켜온 인간의 욕망의 결과에서 비롯된 재앙이다.
지구가 병들고 있고 아파한다는 사실은 어린아이도 안다. 초등학교 사회에서 배운다. 하지만 알고 있으면서 자연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파괴시키는 주범은 끊임없는 인간의 욕망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잘못을 스스로 저질러온 것이다. 인간의 문명이 자연환경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자만이고 착각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이기적인 소유와 지배욕으로 풍요와 편리를 추구해온 삶이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혹독한 재앙을 불러온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준 메시지는 확실한 듯하다. 인류에게 자연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짓을 멈추라는 경고 신호를 준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자연에 해를 가하는 못된 짓은 멈추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갈수록 진화된 문명으로 자연의 지배 범위를 넓혀가면서 무분별하게 자원을 개발하고 환경을 망치는 짓을 확대하고 있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운명을 타고났음을 망각해선 결코 안 될 일이다. 살아있는 유기체인 자연이 훼손되면 자연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갈 인간도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은 뻔한 이치다.
생태계가 무너지면 그 최종적인 피해는 인간에게 돌아온다. 자연 전체가 우리와 공동 운명인 것이다. 중세의 흑사병도 고양이가 마을에서 사라져 쥐가 급속도로 늘어난데 원인이 있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 가량이 흑사병으로 희생됐다고 한다. 생태계 파괴로 인한 중세의 뼈아픈 경험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모든 생명체는 먹이 사슬로 얽혀 순환되고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욕망에 의해 일부 생명체가 유독물질이나 환경오염으로 피해를 당하면 그 피해는 결국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코로나 19 사태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고귀한 깨달음이 아닌가 한다.
그레타 툰베리는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다. 학교를 빠지고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 변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여, 그 시위가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학생들이 참가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 소녀는 '온실 가스 감축 등 각종 환경 공약을 실천하지 않아 실망시킨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세계 정상들을 향해 경고장을 당당하게 내민 인물이기도 하다. 생태계가 무너지고 최대 멸종 위기 앞에 있는데도,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만 늘어놓는 현실사회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스웨덴은 환경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다. 숲 속에 바위나 나무의 자원을 그대로 둔 채 지은 대형 건물들을 여기저기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자연과 환경이 주는 혜택을 고마워하고 아까워할 줄 아는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스웨덴은 자연과 환경을 특별히 소중히 여긴다. 가장 두드러진 점이 쾌적한 공기와 물맛이다. 수돗물을 그냥 마셔도 우리가 마트에서 사 먹는 생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선한 물맛을 느낄 수 있다. 천연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는 대가에서 얻은 물맛이 아닌가 싶다.
자연을 탐하거나 훼손하지 않고 사는 모습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주변에 있는 야산에 블루베리가 널려있고, 개암나무에 고소한 헤이즐넛 열매가 지천으로 깔려 있다. 뿐만 아니라 도심 주택가 체리나무에 새콤달콤한 체리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자연이 주는 열매지만 어느 누구도 손을 대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모두가 야생동물의 몫으로 돌려주자는 무언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지나치는 사람뿐이었다.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일을 무엇보다 중시 여기는 시민의식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공기가 더러워지면 공기청정기를 만들고 팔고, 물이 오염되면 생수공장을 만들어 물을 팔 줄만 아는 현실사회에 큰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든다. 그들의 자동차 문화에도 대기오염 방지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배어있다. 개인의 승용차이지만 사치품 또는 호사품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공기오염의 주범인 자동차 이용을 지양할 목적의 일환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대신 어디서나 대중교통수단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자전거나 보드, 유아 차 등 이동수단을 누구나 어디서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준비해 놓았다.
반면에 자동차는 어디로 이동하든 움직일 때마다 환경오염에 대한 비용을 톡톡히 치러야 한다. 어느 장소든 주차를 하는 곳마다 50Kr(8천 원)를 내야 한다. 심지어 자신의 아파트에 지정 공간에 세워놓더라도 월 3000Kr(20만 원)의 환경오염 과료를 부담한다. 스웨덴 시민들은 대부분 세계 최상위 수준의 경제생활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고급 승용차나 주택을 소유하는 것을 스스로가 꺼린다. 호사품에 대해서는 상당한 고액의 세금을 부과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시민의식으로 배어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코로나 초기부터 집단 면역 운운하며 희생자가 많았던 나라 중 하나가 스웨덴이다. 현재까지 마스크 사용을 의무화하지 않을 정도로 코로나 사태에 초연한 국가가 스웨덴이다. 지구 전체가 펜데믹에 빠져 2억 2천만 명의 감염자와 4백5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여 난리를 치고 있는데 반해, 스웨덴은 외출을 자제하고 재택근무로 업무를 보는 정도이다. 인류가 일체의 지각변동으로 삶이 해체된 느낌이 들 정도인데도 의연한 그들의 자세가 놀랍기만 하다. 지구와 자연을 향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마스크로 가린 얼굴로 침묵시위를 하고 있는 우리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스웨덴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불안하고 초조하다. 마스크를 사서 보내줬지만 한국처럼 쓰고 다니질 않으니 더 걱정되고 답답한 마음이다. 스웨덴의 일부 시민들은 한국 정부의 코로나 방역대책을 보면서 부러워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들 정부의 방역정책을 불신하거나 불만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저 정부의 방역대책과 결정을 믿고 따르며 담담하게 코로나 위기 상황이 해제되길 기다릴 뿐이란다. 오늘 뉴스에 북유럽의 '코로나 패스'와 '위드 코로나'가 언급됐다. 장시간 코로나 바이러스의 펜데믹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 아닌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