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 증인이라면 죄인이 아닌 사람은 없다'라는 말처럼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거짓말하고 산다. 예쁘고 좋은 것을 탐하려는 게 인간이다. 자의든 타의든 과오를 저지르고 실수를 하면서 살기 마련이다. 부주의나 태만에서 비롯된 잘못이나 허물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정의롭지 못한 행동에 양심이 찔려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기적 욕망에 의존해 살면서 최소의 악인처럼 살려는 것이 인간이다. 이기적 욕망을 지닌 인간 본성이 원래 그렇다. 누구나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는 게 인간이다.
누구나 이기적 욕망으로 산다면 세상은 잔악하고 험악한 세상이 된다. 남을 이기고 질투하고 빼앗으려는 악한 마음으로 가득하다면 세상은 온통 혼란스럽고 문란해진다. 질서가 필요한 이유다. 서로를 지키기 위한 예의나 양보, 법 등 인위적인 규범으로 강제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 분명하며, 인위적으로 교화를 통해 선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행복과 이상을 추구하며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말뿐이다.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쉬고 싶은 게 인간이다. 욕망이나 충동을 억누르고 살기보다 순응하고 사는 게 본연의 모습이다. 나 자신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잘못은 해도 뉘우칠 줄 아는 게 인간이다. 후회하고 반성만 하는 게 인간이지만 망각의 동물이기에 살 수 있다. 반성을 하면서 또 잘못은 저지를 수 있다. 국회 인사 청문회에 나와 말하는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만 볼 수 있다. 대부분 후보는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거나 모르쇠로 잡아떼는 사람들이다. 가끔은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려 뻔뻔하게 구는 인물을 보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사람마다 잘못을 마주하는 마음 가짐도 가지가지가 아닌가 싶다. 어찌 보면 반사회적 행위자나 다름없는 인물이 국민을 대표해서 중요한 일을 하겠다 할 때 내 눈과 귀가 부끄러울 때가 있다.
정치인 가운데 성적인 충동이나 욕구를 억제하지 못해 처벌받거나,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 크고 작은 잘못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수치심,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녀야 할 마음 가짐이다.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도덕적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를 해놓고 창피함을 모르면 안 될 일이다. 죄책감을 느끼고 평정심을 유지하고 사는 게 인격체가 살아가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남에게는 친절하고 예의 바른 태도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정작 가까이 함께 사는 사람한테는 그렇게 대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마음가짐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다 보니 그랬던 것이다.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에게는 깍듯이 대하면서, 가장 애틋하게 여기고 아껴야 할 가족에게는 쉽게 대했던 것이다. 서로가 기대고 의지하는 사이일수록 배려할 줄 아는 삶이 정작 지혜로운 삶임을 간과하고 살아온 셈이다.
가족처럼 선하고 편안한 상대일수록 흠결을 내거나 상처를 주는 사람이 많다. 상대의 약점을 건드려 화를 내는 경우가 흔하다. 일상적인 사소한 언행이 발단이 되어 논쟁을 벌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까울수록 잘 지내고 싶어도 마음뿐인 경우가 많다. 현실 사회 가족이나 부부 사이에 서로 상투적으로 대하거나 마음의 문을 닫고 투명인간처럼 사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등을 바라보면서 마지못해 사는 모습은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곰곰이 들여다보면,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살 수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없는 인간이 자신의 죄책감이나 분노, 증오의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극도의 열등감이나 수치심, 증오심이 감당하기 어려워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스스로 거짓으로 사는 격이다. 죄책감을 풀기 위해 다른 사람 탓을 하기도 하고, 분노를 참지 못해 애꿎은 사람에게 화를 대신 내는 격이다. 상대를 사무치도록 미워하는 감정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줄도 모르고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그릇된 행위에 대해 심리적 불안에서 보호하고 평상심을 유지하려는 본능이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다. 인간의 심리 작용이나 원리를 이해하는 기본으로 사람 됨됨이나 인격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사람들이 크고 작은 일상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자신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면서 살고 있는 지를 알아보는 기제라 할 수 있다. 방어기제가 적절히 작동되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익숙하게 사용하던 방어기제로 내외적인 갈등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정신 증상이 발생하게 된다. 즉 방어기제가 무너지면서 정신질환이 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혹독한 입시 경쟁에 시달리고, 사회에 나와 취업 경쟁에 매달리다 보면 마음은 균형을 잃은 상태나 다름없다. 숨죽이고 눈치를 살피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마음에 안정은 무너진 상태나 다름없다. 불균형의 삶을 참고 살아가는 지혜가 바로 내면에서 일어나는 심리 현상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개인의 마음속에는 세 사람이 공존하고 있다. 이드(id)-자아(ego)-초자아(superego)라는 세 사람이다. 현실 속 자아가 무의식적 욕망과 도덕적 이성 사이를 오가며 고민을 해소하거나 조율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평가하여 소중한 인격체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보통 나라고 하는 자신이 '자아'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인지하고 생긴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존재다. 자신의 욕망과 자신의 양심 사에서 균형을 잡는 의식이 자아다. 이드는 원초적인 욕망을 추구하려는 나다. 본능적 에너지가 저장된 무의식 영역에 존재하는 나다. 생존본능이나 성적 충동처럼 쾌락을 추구한다. 논리적 사고가 통하지 않는 영역으로 시간관념도 없고 무의식적인 나다. 초자아는 자신의 도덕적 양식이나 자신이 이상을 추구하는 이성적인 영역에 해당하는 나다. 도덕과 양심이 지배하는 나로 현실보다 이상, 쾌락보다 완벽을 추구하는 자신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욕구불만이 생기면 불만을 어디선가 해소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숨기는 경우도 있다. 쌓인 불만을 덮는다고 본질적인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이나 동료와의 거리만 멀어지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자신의 내면에 들어있는 방어기제를 천천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화가 나 화풀이를 하고 있는지,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는 자신이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어떤 감정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말을 상대에게 했는지 등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따뜻한 시선과 진솔한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