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정보는 삶에 필요한 근본 에너지다. 건강한 몸을 위해 안전한 먹거리가 필요하다면, 건전한 사고를 위해 올바른 정보가 유통되고 소비되어야 한다. 건강을 해치는 식품은 아직도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다행히 불량식품은 잘 골라내어 소비하는 편이다. 그러나 정신 건강을 해치는 정보는 그렇지 않다. 가짜 정보나 불량 지식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어도 지혜로운 소비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형편이다. 영세한 먹거리 생산자 제품은 그나마 적어서 다행이다. 정보 생산자는 거대 자본 기업이 장악한 상태이니 걱정이다. 대중을 단순 소비자로 전락시킨 언론에 의해 일방적 소비를 강요당하다는 형편이다.
평상시 알지 못하는 새로운 소식이 뉴스다. 세상을 이해하는 기준이 된다. 그래서 TV나 언론을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라 한다. 뉴스를 안 보면 세상에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한다. 삶에 필요한 많은 지식이나 정보를 언론을 통해서 얻기도 한다. 언론사가 전달해주는 정보에 의지하고 살아가는 셈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기능이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본 언론의 의도대로 정보를 멋대로 소비하는 형태나 다름없다. 소비자가 정보를 걸러내 수용을 해야 한다. 대중들이 걸러낼 안목이 부족하다면 방송과 언론의 프레임에 꼼작 없이 갇혀 사는 꼴이다.
예전 군사정권 시절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언론과 권력의 3S 정책이 그랬다. 스포츠, 영화, 섹스 산업에 눈을 돌리게 만든 장본인이다. 자본과 권력에 의도대로 갇혀 산 것이나 다름없다. 스포츠는 광고와 사회적 효과를 가져온다. 빈부격차나 사회적 억압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만든다. 프로야구도 폭압정치 시대 정치 수단이나 마찬가지다. 무력으로 지배하기 어려운 대중들을 끌어들여 탈정치 의식을 대대적으로 고취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기업과 지역 연고를 묶어 지역감정과 결합시켰다.
미디어는 국가 운영과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부분을 지원하게 된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소수의 기업이 미디어를 장악해왔다. 기업화된 미디어의 선동적이고 선정적인 보도형태를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볼 수 없다. 공공의 토론장을 발전시키는 미디어의 중요한 역할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락물에 치중된 현상도 달갑지 않지만 진정한 비극은 고정된 시간에 방영되는 뉴스에 있다. 올바른 정보를 정확하게 보도해야 하는 소명의식을 망각한 듯하다. 이는 방송사가 무엇을 선택하고 강조하고 빠뜨렸는지를 보면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언론사의 의도대로 부정확하고 불공정한 정보를 소비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다. 첫째 의제를 선택하는 과정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언론사의 취재 범위는 제한되어 있다. 인력이나 취재원을 확보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지면의 크기와 방송 전파에 실을 수 있는 정보의 양도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제한된 상황에서 의제 설정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부득이한 상황에서 ‘보도를 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왜곡은 없다.’가 발생하게 된다. 게이트키핑 과정 자체가 편파와 왜곡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정 언론사 입맛에 따라 보도에서 제외시키거나 축소시켜 보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과장하거나 강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언론사가 부패한 권력기관으로 신뢰받지 못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둘째 전달 내용은 실재가 아니라 재현된 가공물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방송 내용을 만드는 촬영과 편집 과정 자체가 조작을 의미한다. 따라서 언론사가 현실 사회를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보도할 것이라는 가정은 애초에 착각이나 다름없다. 있는 사실을 어떤 측면을 강조하고 어떻게 해독하게 할 것인지는 제작자의 의도에 달려있는 일이다. 동일한 취재원이라 할지라도 카메라의 각도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똑같은 내용도 보도자의 의도와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다. 언론사의 입맛에 따라 편향된 정보를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셋째 언론의 목적은 사실을 알려 여론을 모으는 데 있다. 시청자를 프레임에 가두려고 화면을 구성하는 것이 언론의 기본 속성이다. 화면 구성을 통해 시청자들이 어디를 봐야 하는지, 무엇을 봐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봐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곳이 언론사다. 한마디로 언론이 곧 여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무리 중요한 사안도 알려주지 않고 짚어 주지 않으면 관심을 끌지 못한다. 반면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안도 자꾸 보도하면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생각을 모으는 주체가 언론인 것이다. 언론을 여론이라 말하는 까닭이다.
넷째 감각기관이 수용하는 정보 자체가 원래 신뢰하기 어렵다. 의도가 깔린 정보를 의도대로 소비하는 형태와는 별개로 소비자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행태도 변형시켜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동일한 사고를 목격했어도 가해자 혹은 피해자 관점에 따라 사고 내용을 전혀 다르게 인식하는 것과 같다. 독자나 시청자의 가치관이나 기호에 따라 정보를 다르게 읽고 해석하기 마련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읽지 못하고 색안경을 낀 채 색깔이 들어있는 정보로 받아들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의해 걸러진 사실이 마치 진실인 양 착각하고 확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문해력에 좌우된다.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경험이나 지식에 의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개인의 뇌가 이미 기억으로 알고 있는 내용을 꺼내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취향이나 관심에 맞는 정보에 솔깃하기 마련이다. 개인이 좋아하고 유리한 정보만을 받아들이고 싶은 경향을 지니고 있다. 건강하고 유익한 정보를 소비하는 형태가 아니라 편향된 인식이 점점 심해지는 까닭이다.
한국의 언론사 신뢰도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은 수준임에도 자신이 선호하는 언론사가 뿌리는 정보에는 믿고 따르는 경향은 아주 강하다. 대세에 추종하는 대중의 심리를 이용해 여론을 만들어 내는 곳이 언론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믿고 따르기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남들이 다 가니 대학을 가야 한다는 말만 믿고 대학을 가는 꼴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사회의 공기나 다름없는 조직이 언론이다. 사회를 이끄는 정치권력이나 자본 세력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균형 잡힌 안목을 갖게 만드는 것이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세상을 붉은색 안경을 끼고 보게 하면 세상은 온통 붉게 보일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이 광고주나 언론사가 왜곡시킨 붉게 물든 세상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된다. 잘못된 일에만 거품을 물고 달려들어 물어뜯는 언론의 모습은 균형 잡힌 시각이 아니다. 그런 언론사들은 이제부터라도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 공익은 외면한 채 자신들의 이익만을 대변해온 기득권 언론들이 냉정을 찾았으면 좋겠다.
언론이 정확하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하면, 국민은 국가와 정치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만다. 두 눈과 귀로 한쪽 눈과 귀로 봐야 하는 정보를 보는 것이 이젠 지겹다. 지겹다 못해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기존 언론들이 두 눈과 귀로 보고 들어도 부끄럼을 느끼지 않는 정직하고 공정한 언론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