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보다 진보가 더 낫다는 근거
블로그를 보면 옛 추억을 떠올려 향수를 느끼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 ‘추억을 먹고 산다.’ 거나 ‘옛날이 그립고 좋다.’는 식으로 추억을 미화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이를 먹으면 과거에 대한 애착이 더 크게 느껴지나 보다. 지나간 세월이 마치 도둑맞은 시간처럼 잊어버린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남아있는 것은 과거뿐이다. 과거가 남긴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을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 과거를 복사하여 현재를 살다가 추억으로 남겨 놓고 떠나는 게 인생이다. 나이가 들수록 과거를 그리워하고 집착하는 것처럼 회귀본능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꽁보리밥이나 꿀꿀이 죽은 기성세대들이 어렸을 때 즐겨먹던 음식이다. 꽁보리밥 맛집을 검색해보면 어디에나 있다. 아직도 옛 추억이 그리워 보리밥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옛날 음식에 향수를 느껴 찾기도 하지만 혈당 조절을 위해 저칼로리 음식을 찾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꽁보리밥이나 꿀꿀이죽이 싫다. 어렸을 때 먹던 음식에 향수가 아닌 염증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끼니를 대신해 먹던 감자나 고구마는 지금도 좋아하지 않는다. 배고픔을 달래던 시절에 때를 가리지 않고 자주 먹던 주전부리에 얽힌 서러움조차 떨쳐내지 못한 한심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말을 좋아하게 됐다. 나날이 새롭게 변하는 모습을 인생의 방향으로 삼고 싶었다. 내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식처럼 여기기로 했다. 책을 고르거나 사람과 대화에도 관심은 새로움을 기준으로 삼는다. 여행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즐길 때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과거보다는 새로운 미래에 초점을 두려고 한다. 새로운 도전이나 모험과 방향이 다르면 거리를 두려는 편이다. 나답게 사는 생활 자세라는 생각이다. 세상에 떠밀려 살았던 과거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싫어하게 된 배경이다.
과거의 삶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 역사나 독재정권 시절의 쓰라린 과거의 역사가 그러하다. 식민사관이나 권위적이고 가부장인 사고방식이 그 예다. 6~70년대 추억의 대부분이 마음에 상처나 다름없다. 현대와 미래의 삶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 인권을 침해하고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무시했던 가슴 아픈 역사였다. 가정이나 사회가 폭력과 탄압으로 억압하던 사회였다. 가정에서는 가장이 생트집을 잡아 밥상을 집어던지고 고함을 질렀다면, 사회는 군사독재 권력이 반공을 권력 무기로 휘두르며 탄압했던 무지몽매한 시절이었다.
과거의 폐단이나 악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미리 세대로 이어져 악순환되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 매를 맞거나 학대를 받은 사람은 악몽에서 쉽게 벗어나기가 어렵다.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되면 오히려 더 심한 충격과 고통으로 느끼게 된다. 어릴 때 맹견에 놀라면 강아지만 다가와도 두려워하는 이치와 비슷하다. 이들의 고통과 불안은 분노의 원인을 찾아 치료하지 않으면 생존의 위협으로 남아있게 된다. 호된 시집살이를 했던 시어머니가 며느리 편안 꼴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꼴이 된다. 가정 폭력이나 학교 폭력이 아직도 근절되지 않는 원인도 과거에서 악순환되어 왔기 때문이다. 자신이 극도로 혐오하는 과거의 행위인데도 자신도 모르게 흉내를 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올챙이 시절에 난 상처는 쉽게 아물지도 고치기도 어려운 법이다. 자신이 이미 기억하고 있는 사실을 모르는 것으로 한다고 기억된 사실이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무의식 속에 남아 언젠가 자신의 삶을 힘들게 하고 괴롭히게 되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버릇이 없다.’는 말이 그 예다. 권위와 폭압에 못 이겨 까라면 까야했던 암울한 시절을 살았던 이들이 못난 과거를 자랑하는 격이다. 심지어 아직도 ‘조선 놈은 매를 맞아야 말을 듣는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친구가 있다. 일제가 조선인을 노예로 취급할 때나 쓰던 말인데도 무심코 내뱉는 한심한 일이다. 스스로 비하하고 모멸감을 주는 표현인 줄 아랑곳하지 모습이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흔히 해왔던 ‘젊은 시절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처럼 엉터리 주장도 없다. 폭력과 억압이 통용되던 과거형에 불과하다. 약자에게 억울하지만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주장처럼 들릴 뿐이다. 오래된 과거일수록 배워야 할 점보다는 버려야 할 점들이 훨씬 많다. 세상은 점점 타락하거나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시나브로 나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아날로그 시절에나 최고의 전문가였지 첨단 디지털 시대에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아직도 과거 시절 자신의 지위나 명예를 그리워하며 착각의 늪에 빠져 살아선 곤란하다. 꼴불견도 그런 꼴분견이 없어 보인다. 10년 전 최고의 학술 논문일지라도 쓰레기통 신세가 되는 것은 매한가지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그리워해선 안 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