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갈등의 원조

색깔론 공포증

by 최길성

상궁지조(傷弓枝鳥)는 ‘화살을 맞은 상처 난 새’라는 뜻이다. 화살에 맞아 상처 입은 새가 구부러진 나뭇가지만 보아도 놀라서 쓰러진다는 말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나 비슷하다. 사람이나 동물은 생존에 위험을 느끼면 반응하기 마련이다. 외부로부터 위협을 느끼면 몸이 먼저 반응을 한다. 놀라면 ‘간이 콩 알 만해졌다.’ 하고 화가 치밀면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표현을 하는 것처럼 몸이 먼저 움츠려 든다. 외부의 심한 충격은 몸뿐이 아니라 마음도 얼어붙게 만든다. 마음의 중심을 잡는 이성을 마비시켜 합리적인 사고를 못하게 만든다.


사고가 자유롭지 못하면 제대로 된 정신활동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자유로운 상상이나 사유를 못하고, 사고를 표현하는 말이나 글이 억압받게 된다. 사고에 의지하는 인간이 마음대로 사유할 수 없고 자유롭게 표현지 못하면 비합리적 인간으로 살게 되는 셈이다. 누군가를 나쁜 인간으로 낙인찍은 상황에서는 더 이상 어떤 사고도 진전시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고의 결함을 안은 채 불완전한 사고 체계로 살아가는 격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 사는 사회 구성원들이 그런 상태로 살고 있다. 해방된 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언어 사용에 대한 무서운 공포증을 앓고 살고 있다.


다름 아닌 ‘색깔론 공포증’이다. ‘종북좌파’ 내지 ‘빨갱이’라는 말이 색깔론 공포다. 누군가로부터 그런 말을 들어 낙인찍히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공포를 갖고 있다. 누구나 싫어하는 말이 ‘종북좌파’라는 말이고, 들으면 질색하는 말이 ‘빨갱이’다. 누구나 꺼리는 말이라서 입을 아예 닫아버리거나 논쟁조차 피하게 된다. 이념갈등과 관련된 이슈조차 논쟁거리로 삼는 것을 거부하는 자체가 색깔론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어떤 정보든 가리지 않고 소비하는 유튜브에서조차 이념갈등을 언급하는 유튜버는 없을 정도다. 그만큼 심각한 갈등과 두려운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종북좌파'나 '빨갱이'라는 말에 누구나 불안을 느끼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증거다.


‘세월이 약이다.’라는 말처럼 세월이 지나면 상처나 흔적은 없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색깔 공포증은 반대다. 금기어가 금지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 재생되어 확산까지 되고 있다. 반공주의나 공작정치라는 말이 생경한 세대조차 유행어처럼 널리 퍼져있다. ‘문재인 간첩’라는 어휘가 연관 검색어에 떠다닐 정도로 상대방을 폄훼하거나 비방하는 부정의 의미로 마구 쓰이고 있다. 자유로운 표현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사고와 삶을 결정하는 언어습관은 더욱더 중요하다. 자기편이 불리한 경기라고 해서 함부로 레드카드를 꺼내 드는 비굴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베이비 붐 세대들은 어릴 때 '너희들은 한국전쟁을 겪지 않아서 빨갱이 놈들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몰라!'를 들으면서 자랐다. 어린 시절 주로 즐기던 게임이자 놀이가 칼싸움이고 전쟁놀이였다. 중공군이나 북괴군을 적으로 상대하여 적개심을 키우며 자란 세대들이다. 학교 교육도 반공이념을 고취시키는 반공 위주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웅변대회나 글짓기 대회, 사생 대회마다 단골 메뉴가 ‘반공’이었다. 고등학생이 되면 남녀 구분 없이 고된 군사훈련을 받는 것이 의무교육이었다. 반공방첩 세대로서 반공 이데올로기에 빠져나올 수 없는 세대다. 색깔 공포에 가장 민감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세대라 할 수 있다.


반공이념을 애국애족의 길로 여기던 세대들에게 북한 사회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겨왔다. 공공의 적으로서 경계 대상 1호로 기억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북한은 적국으로서 KAL기 납치 사건이나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처럼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적대국이었다. 남자로서 적의 공격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한 국방의 의무는 당연한 의무였다. 필자 또한 최전방 전선에서 33개월 10일 동안 적을 향해 총을 겨누는 병영생활을 했다. 적을 향해 총을 겨눈 사람이 적이 될 순 없다. 적을 도와준 불온 세력으로 취급당해서도 안 될 일이다. 레드카드에 낙인찍혀 두려움을 느껴야 할 하등의 이유가 필자에게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세계인들에게 최악의 재난을 가져왔다. 반면에 색깔론에 의한 이념갈등은 한국인에게 최악의 정신적 병폐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가 불안한 까닭은 뚜렷한 원인과 방비책을 밝히지 못한데 있다. 바이러스가 발생한 원인과 해결책을 확실히 밝혀내야 이전 상태로 회복이 가능한 일이다. 한국사회 갈등의 원조격인 색깔론 공포도 마찬가지다.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남북이 분단되는 과정에서 촉발된 색깔론 공포에 대한 발병 원인부터 알아야 할 일이다. 그래야 사회 갈등을 줄이고 색깔론의 불안과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현대사를 보면, 일본 식민지로부터 해방되면서 한반도에는 기형의 정치세력이 등장한 사실을 알 수 있다. 3년간 미군정 후 남북이 분단되는 과정에서 북한은 사회주의자였던 독립군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남한은 친일 행위자들이 정제계의 주류였다. 일제 강점기 시절 친일파들이 독립 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사회주의 활동을 견제한다는 명분을 수법으로 악용했다. 그러다 해방이 되자 친일 앞잡이들은 반공 투사로 변신했다. 해방 후 친일 행위자들이 단죄 대신 좌익을 토벌하는 반공투사 활동에 앞장서왔던 것이다. 반민족 행위자들의 정체성을 숨겨주는 역할을 해온 것이 반공주의다. 한국사회는 최근까지 친일파에서 반공투사로 변신했던 세력들이 기득권을 차지한 것이다. 반공을 국시로 정해놓고 국정을 이끌어왔다.


국제사회가 미소 냉전체제로 40년 동안 유지되면서,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친일파였던 반공주의자가 주역으로서 이끌어왔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권력이 무소불위의 무력으로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반공주의였다. 반공주의자들은 개혁과 진보를 내세우면 용공분자나 빨갱이로 몰아 탄압하거나 사형까지 마음대로 자행했다. 조봉암과 인혁당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반공주의자들에 의해 저질러온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권력유지와 반대세력 탄압에 반공주의를 이용했던 사실은 이미 대부분이 밝혀졌다. 국가 안보를 국가 폭력으로 악용된 사건들은 모두가 아는 역사적 사실로 드러났다.


식민지배와 냉전체제가 구시대 악령이 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났다. 마녀사냥에 속아 넘어가던 유신시대도 한참 지나갔다. 없는 간첩도 만들어내던 공작정치가 설 곳도 없어졌다. 이젠 친일 세력이 정당성 도모에 악용해온 이념 도구를 폐기시켜야 할 때가 분명하다. 국가 안보를 핑계로 권력을 쥐려는 꾐에 더 이상 놀아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반공 팔이로 사회를 어지럽히는 사람은 민주시민사회를 부정하는 사람이다. 의심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선진 강국이 된 대한민국이다. 마녀들이 살았던 어두운 시절의 구악을 들먹여 민주시민의식을 더럽히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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