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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Feb 27. 2022

고집불통

갈등과 충돌이 만연해진 사회

     전국 어디든 지역마다 '옹고집'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자기 생각만 우기고 고집 센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을 자랑하는 셈이다. 사실 앞 뒤가 꽉 막혀 융통성이 없는 사람은 밥맛이다. 벽창호 같은 성미를 지닌 사람을 좋아할 리 없다. 그런데 음식점 간판에 '옹고집'이나 '고집불통'이라는 명칭을 고집하는 이유는 전통을 지켜온 식당을 자랑한다는 뜻이다. 예전부터 우리 사회는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는 사람을 줏대 있는 사람으로 인정해주고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 '옹고집'이나 '고집불통'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많은 까닭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음식 맛이든 취미 생활이든 계속하다 보면 익숙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자주 즐긴다는 것은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색하고 싫어하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지는 일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고 소중한 가치로 여기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기적 욕망의  인간이 생존하는 방식이자 본능적 욕구가 보수적이다. 대형의 값싼 식자재 마트가 집 근처에 있어도 교통조차 불편한 전통시장을 굳이 찾아가고, 친절한 스타벅스 커피를 마다하고 늘 다니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려 든다.


     '보리밥'이나 '청국장'은 익숙한 입맛이다. 어린 시절에 흔히 즐겨먹던 음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음식의 맛과 향 속에 가난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배어있는 듯해서 싫다. 오래된 전통을 귀하게 생각하고 계승하자는 주장에는 동감하면서 문명의 진화를 역행하는 태도는 못마땅하다는 생각이다. 현대인으로서 현대 문화 속에 동화되어 살 수 없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시대를 거슬러 폐쇄와 고립을 자초하면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따지고 보면 문맹으로 미숙하던 비문명 시대의 관습이나 풍습은 비과학적이고 비위생적이었다. 무지몽매한 시절부터 되물림으로 이어온 문화 중에는 버려야 할 악습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불과 5~60년까지만 해도  이와 벼룩, 빈대와 싸우며 살아야 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담배를 피웠던 시절이다. 버스나 기차는 물론 방 안에서 독한 입담배를 말아 피웠다. 인분을 퇴비로 쓰던 70년대는 기생충 감염으로 회충약을 먹어야 했고, 대변검사 봉투를 가방에 넣고 다녀야 했다.


   70년대 한국인이었다면 나는 장수하는 편에 속한다. 낮은 문맹과 형편없는 의료보건 기술로 그 당시 남자는 평균 65세를 넘기기가 어려웠다. 지식이나 정보 습득 또한 매우 한정되어 있었고 공동체 사회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정치나 사회에 대한 시민의식 수준이 낮은 상태였다. 허기를 채우던 맹물을 떠놓고 신령에게 두 손을 빌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먹고사는 생존 문제에 매달려 복종하고 맹신하는 삶이 불과 수십 년 전의 우리의 삶이다.


    우리의 과거는 그럴만한 역사가 가로막고 있었다. 폐쇄적 유교문화에 고립된 나라마저 약삭빠른 일제에게 빼앗겨 민초들만 고초를 겪으며 살아야 했다. 해방이 되었어도 강자의 횡포에 휘둘려 동족 상쟁의 비극의 역사를 걸을 수밖에 없었다. 친일세력과 독재자들이 남겨 놓은 흑역사가 신토불이 한국사로 한국인의 정신 속에 남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선조들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고 소중한 유지로 계승하려는 정신은 이해하지만 시대착오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과거가 없는 현재나 미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식이나 경험 자체가 과거의 기억을 의미하고 기억된 정보에 삶을 의존하기 때문에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낡은 관념이나 습관에 집착하여 외골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은 고리타분하게 느껴진다. 꽉 막힌 답답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싫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견문이나 시야를 넓히는 것을 꺼리게 되고, 타인의 주장이나 의견에 아랑곳하지 않는 고집불통이라는 생각이 들고 미래 삶의 길을 발목을 잡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과거의 실패와 잘못은 시나브로 나아지기 마련이다. 개인의 자유롭고 공평한 삶을 방해하던 악습들도 민주화 시대 이전에는 당연하게 여겼을 뿐 개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새로운 문화가 등장하면 좋든 싫은 옛것은 조용히 없어지는 것이 도리다. 붓글씨를 쓰는 것이 글쓰기 기초를 다지는데 필요하더라도 아이패드 세대들에게 가르칠 순 없는 일이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를 살면서 4~50년 전 터득한 아날로그 사고방식에 의존하여 고수하려는 짓에 불과하다.


    세계 최상위 선진 한국에 살면서 쓰레기통에서 조차 비워져야 할 그릇된 관행에 사로잡혀 고집을 부리는 이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 독재권력이 휘두르던 색깔론 카드를 아직도 불리하면 꺼내 들고 있는 보수세력이 그 예다. 검찰과 언론의 비호 아래 정치권력을 기득권 세력을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 구태 정치인들이기도 하다.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그들에게 세뇌되어 정치 도구화된 유권자들이다. 구태 정치 세력에 길들여져 '정권교체' 목소리를 외쳐대는 유권자들이다.


   민주 시민의식이 건강하지 못하면 진단 지성이 망가져 사회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불신과 충돌이 쌓여 제2의 촛불 혁명과 같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는 어느 때보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정치로 바꿀 수 있는 후보가  절실한 선거가 아닌가 싶다. 과거를 거울 삼아 미래로 나갈 후보에게 유권자들의 열렬한 지지와 현명한 선택이 이뤄지길 희망한다. 기득권 정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를 펼쳐나갈 유능한 후보가 3월 9일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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