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배우고 깨달으며 살아가는 원인
태어난 아이는 유아기에 뇌가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고 생존을 위한 행동 표현이 늘어난다. 거울을 보고 거울 속 모습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내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한 인격체로서 자아가 형성되고 있음을 말한다. 부모의 일방적인 도움으로 생존하던 아이가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부모의 절대적인 보호에 생존을 맡기던 아이로서 스스로 독립하는 과정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엄마와 분리되어야 한다는 두려움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아이가 3~4세가 되면 생떼를 부릴 때가 있다. 부모 말을 어기고 고집을 부리는 아이를 종종 볼 수 있다. 괜한 행동이 아닌듯하다. 부모와 분리 불안을 느낀 아이가 두려운 감정을 자신도 모르게 표현하는 행동이다. 자신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여 주던 부모가 분리가 되더라도 언제나 자기편인지를 시험해 보려는 행동이다. 자신의 생존에 압박이나 위험을 느끼면 방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자아가 불안을 느끼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기제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유아가 분리 불안을 느껴 돌출 행동을 하는 것처럼 사춘기 청소년의 행동도 비슷하다. 평소에는 착하고 공손하던 굴던 아이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불편한 심기를 표현하는 시기가 있다. 말대꾸를 하고 짜증을 내거나 자학하는 청소년도 있다. 심지어 가출을 하거나 폭력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남의 물건을 훔치고 폭력을 저질러 좌절하던 친구가 있었고, 난폭한 행동으로 자식이 무서울 정도라는 친구도 있다. 자식에 대한 좌절의 아픔은 모든 기대를 한순간에 잃는 것처럼 허망하다는 친구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아는 사회 경험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 사고와 감정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아는 성숙해지기 마련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성장통을 겪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성숙한 자아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심적 갈등은 당연한 것이다. 그 아픔과 상처는 견뎌내야만 한다. 참지 못할 만큼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라면 자아는 자신을 속이게 된다. 무의식에 자아를 숨겨 놓게 된다. 소외와 고독, 무시와 무기력 등을 체험하게 되는 경우가 그러하다.
유아기나 청소년기의 갈등이나 방황이 그 예다. 자신과 외부세계 사이에 겪게 되는 갈등을 해소하여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다. 심리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개인의 성격과 인품, 취향과 재능, 가치관과 세계관 등 인격체로서 정체성을 갖게 되는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정신 건강에 면역력을 키워 건강한 삶을 사는데 필요한 에너지로 작용한다. 하지만 자신을 속이거나 관점만 바꾸는 방어기제를 주로 사용하게 되면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정신 질환자가 되기도 한다.
미숙한 자아가 세상과 부딪치면서 자아를 발견하고 스스로 깨닫는 과정이 인생이다.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스스로 책임질 줄 알고 자제할 수 있는 주체가 될 때까지 갈등과 고민을 안고 사는 것이 삶이다.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상처나 흠결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동안 내면에 어떤 욕구가 좌절되어 자신의 마음을 괴롭혔는지 사유해보면 마음도 안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로부터 억압과 무시로부터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지난날의 상처와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이를 먹어 경험을 많이 했다고 자존감을 갖는 것은 결코 아닌 듯하다. 변화무쌍한 사회에 생존하기란 오히려 더 적응력이 떨어지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이 그렇다. 현실 자아는 길거리에서 홀로 춤추고 있는 에어 풍선으로 만든 스카이댄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양 살아온 삶이 허탈하고 허망하게 느껴질 때가 그러하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속 불안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무언가를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며 사는 모습에는 변함이 없든 것 같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인정받기 위해 살아온 내 인생이다. 남들이 원하고 남들이 좋아할 존재가 되는 것을 자아인 양 착각하고 살지 않았나 싶다. 겉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할 일을 자율적으로 하고 살아온 듯하지만 실제는 가족이나 친구, 직장이나 사회라는 거울이 나에게 비친 모습대로 내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자아에 의존한 삶이 아니라 남들 눈치나 보면서 살아온 인생이 아닌가 한다. 타자의 욕망을 쫓으며 살아온 삶이나 진배없다.
평소 나는 불쾌 감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표현하는 사람이 경계하고 아주 싫어하는 편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혐오하고 창피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때문인지 아직도 불쾌 감정을 표현하기가 서툴어 어색함을 느낀다. 내면에 싫은 감정을 애써 자제하고 숨기며 살아온 자아였음이 분명하다. 약자로서 슬픈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강자가 되기 위한 욕망을 갈망하고 살지 않았나 싶다. 무의식에 잠자고 있던 열등의식에 지배를 당해 발버둥 치는 삶을 살지 않았나 싶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내 면의 세계는 복잡하고 무한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누구도 선뜻 내놓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한평생을 배우고 깨우쳐도 자신의 존재는 말하기 조차 불가능하다. 성숙한 인격체가 되기 위한 노력하는 존재일 뿐 자신의 정체를 관념화하지 못하는 존재나 다름없다. 자아의 본질은 원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가치를 지닐 수 없다. 세월이 흘러 경험과 지식이 쌓일수록 주관적인 가치나 마음은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 마음이 불안하고 가치관에 혼란을 겪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어느 심리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일상 대화의 98%가 거짓말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과 관계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선의 거짓말을 그 정도로 많이 한다는 뜻이다. 나머지 2%가 남을 속일 의도로 하는 뻔한 거짓말이다. 거짓말을 이처럼 많이 하고 살면서 거짓말을 나쁜 행위로 규정하고 하지 못하게 금기시하는 것이 인간이다. 정작 자기 자신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 남이 하는 것을 싫어하고 터부시 하는 격이다. 그 정도로 우리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이나 양심에 벗어나는 언행을 일삼고 살아간다는 반증이 아닐까.
모두가 자기기만에 빠져 살고 있는 위선자에 지나지 않는다. 선한 거짓말은 나쁜 짓이 아니라는 변명이나 위안이 아니면 죄책감 때문에 살기 어려운 존재다. 선한 거짓말이 마음을 보호하는 생존 전략이나 마찬가지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이기적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면 상대방에게 비난과 공격을 받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속인 채 살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삶을 살아야 할 존재로서 자신과 상대의 자존감의 상처를 내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현실 사회는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해도 양심에 죄책감을 느끼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보통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심리가 불안하여 편도체에 감정 반응이 일어나지만 남을 이용하는 악인은 편도체 감정 반응이 사라진다고 한다. 스스로 거짓을 진실로 확신하는 자기기만으로 다른 사람을 쉽게 속이는 재주가 탁월한 이유이다. 사기꾼이나 사이비 교주, 숱한 비리와 부정을 저지는 정치인이나 언론인이 득세할 수 있는 까닭이다. 뻔한 거짓말을 해놓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나설 수 있는 것도 자기기만의 방어기제가 쉽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자기기만 행위가 무서운 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