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길성 Mar 10. 2022

대선 후유증

패권경쟁에 휘말린 사람들

    20대 대통령 선거 개표 방송을 뜬 눈으로 지켜봤다. TV를 그렇게 오래 시청한 기억이 없다. 그것도 초조하게 가슴을 조이며 TV를 봤던 적은 없다. 출구조사 결과부터 막판까지 후보 간 지지율 차이가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야 후보 지지율 격차가 0.6%~0.8%를 오르락내리락거리며 시소를 벌렸다. 그때마다 지지자들의 마음도 천당과 지옥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듯했다. 새벽 4시가 되었을 때 0.73% 차이로 정권교체 민심이 앞선 채 개표가 종료됐다. 이재명 후보가 패배를 인정하는 장면이 TV 화면에 나온다.


    '패배의 모든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후보의 말이 가슴을 후빈다. 지지자를 위로해준 말이 도리어 미안하여 울게 만든다. '지지와 성원에 감사한다'는 낙선 인사를 하는 내내 지지자들의 탄식과 울분의 함성 소리가 배경음처럼 들려오는 듯하다. 대선 레이스는 끝났어도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한다는 다짐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피곤하고 지친 몸이지만 잠이 오지 않는 까닭이다. 피곤한 것보다 패배로 인한 충격과 불안으로 수면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우상으로 삼는 것은 경계해야 옳다. 아무리 뛰어난 정치인이라도 신격화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대통령이 될 사람이라고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절대 우상으로 섬기는 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낙선한 이 후보가 서민들 위에서 군림해온 권위적인 사람이었다면 그토록 열렬히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또한 그의 낙마에 이처럼 속이 상하지도 않았을 일이다. 고초를 이겨내고 그 자리에 오른 이 후보에게 남다른 신뢰와 연민의 정이 느껴진 것은 동질감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고 좋아하는 세상을 그를 통해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의 낙선이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는 두 번째 이유는, 정치 교체에 대한 기대감 상실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는 정치권력의 한계를 극복할 실낱같은 희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국가와 국민의 더 나은 삶에 필요한 정치교체 청사진을 볼 수 있었기에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의 낙마는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기득권 세력의 미흡하고 답답한 체제로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아쉬움에 절망하는 것이다. 패배를 함께 아파하는 마음에서 그를 애달프게 연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앞으로 해낼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버릴 수 없기에 억울한 것이다. 후보의 패배는 곧 우리의 위기와 불안일 수밖에 없다. TV토론에서 지켜봤듯이 당선자에게는 전혀 기대하거나 대안조차 찾아볼 수 없다. 정책이나 민심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는커녕 소통능력조차 부족한 인물이다. 고압적인 태도와 네거티브 공격으로 정권교체를 자극하여 당선자가 된 사람이다. 이로 인해 흑막에 가려진 당선자와 배우자에 대한 각종 의혹과 비위 사실조차 애꿎은 유권자 몫이 되었으니 대선 패배 후유증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선 모드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패권 경쟁에 휘말려 목숨 건 전쟁을 치른 사람처럼 선거에 졌다고 낙심하여 세상을 등질 순 없다. 이즘에 '승패 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라는 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승패를 놓고 다투는 삶이 냉혹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싫어하고 선택하지 않은 결과지만 승복할 줄 알아야 패배의 아픔을 이겨낼 수 있고, 뼈저린 실패의 경험을 다음 대선에서 잊지 않고 살릴 수 있다.


    이번 선거는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얼마 전에 치러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 선거 참패에 비하면 선전한 대선 결과이다. 선거는 졌지만 시민의식 고취 가능성을 확인한 성공적인 선거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래거시 미디어의 거대 위력을 거의 무력화시켰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기득권층의 이익을 옹호하는 주요 언론 매체에 맞선 개인 미디어의 빛나는 활약에 다시 한번 박수를 쳐주고 싶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래거시 언론이 주도권을 장악해왔다. 사회적 담론과 여론 형성에 가장 영향을 미쳐온 주체가 조중동이다. 이번 당선자 역시 그들의 영향력이 만들어낸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닌듯하다. 그들과 검찰이 연대하여 조국 사태와 법무장관 갈등과 논란을 증폭시켜 민주세력의 흠결을 내로남불로 키워냈다. 촛불 혁명의 민주 시민의 기대를 서서히 침몰하게 만들어 촛불 혁명으로 탄생된 문재인 정부의 공적에 빛을 잃게 만들어 정권교체 키워드를 성공시켰다.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노력이나 성과도 퍼주기 정책으로 폄훼시키고, 부동산 정책 실패라는 프레임 하나로 민심 흔들기에 성공한 것이다. 양극화 해소 정책이나 선진 경제와 외교로 국제적 위상을 높인 성공적 정부 이미지 대신 무관심과 미호응으로 전환시킨 주역도 기득권 언론들이다. 게다가 '정치는 누가 해도 똑같다'는 무 관여층 민심이 가세해 이뤄낸 결과가 이번 대선이 아닌가 싶다. 선거 과정에서 주변인들이 선거를 대하는 태도와 대선 개표 결과를 보고 느낀 소회가 이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미온적 태도가 아닌가 한다. 내 삶에 선거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는 점이다. 자신의 선택과 무관한 선거 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괴로워하고 멘붕에 빠지는 자체가 이를 입증해주는 일이다. 이에 반해 선거 무심층은 자신의 행복한 삶의 주요 결정 권한마저 스스로 포기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무임승차 자유권을 누리고 있다면 최소한 고마움의 원천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 나은 미래 사회를 위해 유권자들의 관심과 관여가 절실한 까닭이다. 


   우리 사회 유전자에는 '나'보다 '우리'를 강조하는 집단 문화를 중시하는 의식이 배어있다. 숱한 침략으로 위기와 고난을 이겨낸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안보와 사회안전망, 빈부 차이로 인한 경제적 갈등, 세대 차이, 지역 갈등, 성차별 등 본질적 문제 해소 능력을 갖춘 셈이다. 서로 다른 가치를 인정해주고 존중하는 협치와 통합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구나 현재는 코로나 재앙과 우크라니아 사태를 포함해 국제 사회가 위기 상황이다. 온 국민이 똘똘 뭉친 통합 리더십으로 국내외 위기 상황을 극복해야 할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사익을 공익을 위해 양보해야 한다. 헌법이 정한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는 길이 규칙과 질서를 지키는 일이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이다. 모쪼록 윤석열 당선자가 선거로 인한 갈등과 후유증을 빠른 시일 내에 치유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아울러 다수의 국민들이 원하는 훌륭하고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길 기대해 본다. 그것만이 살기 좋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유일한 선택이 아닌가 싶다.

작가의 이전글 고집불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