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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Apr 13. 2022

미디어 중독 사회

생각과 마음을 빼앗고 있는 미디어

    최근 언론소비자 주권 행동이라는 시민단체가 조선일보 폐간과 언론 개혁을 외치고 있다. 그들은 일제 잔재가 청산되지 못한 원인도 조선일보가 건재하기 때문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대선에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지금 국회에서 언론개혁 관련 법안이 개정 중에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언론의 눈치를 보는 이해 당사자들이 언론 개혁 추진은 기대할 수 없다'며 TV조선과 조선일보 퇴출을 알리는 500KM 국토 순례 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사회를 위한 정치와 언론, 검찰 개혁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필자도 주류 정론지를 구독한 적이 있다. 15년 동안이나 조선일보나 중앙일보를 구독했다. 그들이 쓴 기사와 사설, 논평에 현실 세계를 읽어왔던 셈이다. 현재는 언론이 부정과 비리를 감시하고 부당한 권력을 견제한다는 언론의 역할이나 기능 따위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조중동이 정보를 독점하던 시절에는 그들을 담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모르는 동안 조중동 주파수에 맞춰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이해할 수밖에 없다. 뉴 미디어 시대인 지금도 조중동에 길들여져 독자들이 많고 그들이 여론을 좌우하는 현실이다.


    현대는 메시지 홍수 시대가 분명하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TV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환경이다. 마샬 맥루한은 이러한 현실 세계를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로 50년 전쯤에 예견한 바 있다. 자신의 의견과 감정, 객관적 정보를 주고받는 수단에 우리의 삶이 지배를 받을 거라 미리 예견했던 것이다. 사람에게 직접 영향을 받던 과거 시절과 달리 현대는 미디어 영향이 큰 것이 사실이다. 미디어에 둘러 싸여 미디어가 주는 메시지의 지배와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미디어 영향권에 사는 현대 사회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모든 권력은 미디어가 만든다'는 말로 바꾸어도 해설될 수 있다. 실제로 대통령을 뽑을 때 방송이나 신문, SNS, YouTube 등이 유권자 판단을 좌우하고, 이번 대선 결과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미디어는 주권행사뿐 아니라 욕망을 소비하는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실생활에 유용한 지식을 내면화하고 사고하는데 미디어 메시지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지식 정보화 사회를 거치면서 개인의 생각이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조정자나 미디어가 된 것이다. 


    미디어 영향권에 살면서 부작용과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미디어 기술에 세뇌와 지배를 당하고 있음에도 불만이나 저항의 목소리는 줄어들었다. 미디어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현재로서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미디어 메시지에 맹신하고 맹종하는 태도로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과학 기술의 발달은 이용과 적응의 불편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초창기 디지털 격차 논쟁처럼 이용에 따른 지식 격차가 점점 늘어나고 불편은 커질 수밖에 없다. 공기 혜택으로 생존하면서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살듯 오염된 미디어 메시지가 지닌 한계와 부작용을 언제까지 외면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컴퓨터 오락이나 게임에 빠진 아이들만 미디어 중독자 아니다. 스마트폰 만능 엔터테이너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 모두가 미디어 중독자나 다름없다. 스마트폰은 삶에 깊숙이 관여하고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도구가 됐다. 하루도 휴대폰 없이 견디지 못하는 현대들이다. 일과 여가 생활을 물론 개인의 욕망을 소비하는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대인관계 유지 혹은 물건을 사고파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하고, 친구나 애인을 사귀거나 취미 생활을 즐길 때도 스마트폰 앱을 이용하고 있다. 모두가 미디어 중독자이자 미디어에 종속된 삶을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디어에 의지하고 산다는 것은 미디어 속 사실이나 현상을 현실 세계처럼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영유아가 TV를 시청할 때처럼 미디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동경과 감탄을 느끼는 것이나, 드라마를 보면서 화를 내고 혀를 차는 행동을 하는 것도 자연 속 주인공의 삶을 현실로 착각한데 비롯된다. 현실로 착각할 정도로 촬영하고 편집한 가공물일 뿐이다. 시청자 감동을 위해 연출된 영상 작품에 불과한 것이다. 현상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수용자 태도는 그들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대중 소비자들은 촬영 편집 조작된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실체에 대한 환상을 갖고 가상현실에 빠지게 된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사용된 포장 기술은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한 채 단순 소비자가 되고 만다. 수십 년 동안 정보를 독점한 미디어 산업 입맛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탓이라 할 수 있다. 정의와 공정을 지키고 사실과 진실 보도를 전제로 방송이나 언론을 믿고 의지했던 셈이다. 방송과 언론의 본질은 민심과 여론을 움직이는 데 있다.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어 사익을 추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20대 대선이 끝나자마자 언론 개혁을 외치는 시민들 목소리가 커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으로 미디어 메시지를 소비하던 시민들의 의식이 한순간 깨어난 것이다. 특정 후보에게 유불리 하게 만든 기획 상품을 조중동이나 포털 사이트가 끊임없이 노출시킨 결과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아차린 것이나 다름없다. 시민의 알 권리를 묵살하는 침묵은 그들이 사용했던 무기였고, 칭찬과 비판이 민심을 자극하여 여론을 호도할 때 쓰는 최대 무기였음을 새삼 깨닫게 해 준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후보 배우자와 관련 녹취록 보도 중단 사건은 침묵 무기를 사용한 예라 할 수 있다. MBC와 YTN 공영방송에서  있는 그대로 중대한 사실조차 보도를 중단한 것은 유권자의 알 권리를 침해한 의도적인 사건으로 언론의 직무유기 행위나 다름없다. 대선에 악영향을 미친 편파적인 언론의 현주소라 할 수 있다. SNS나 Youtube 등 개인 뉴 미디어가 유행인 시대지만 대중적 프레임으로 여론 몰이에 가장 영향력 행사하는 기관이 조중동과 종편 채널이다. '정권 교체'라는 사회적 담론으로 보수 정권을 탄생시킨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아직도 기존 미디어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비자들이 대다수다.  일과 시간이든 여가 시간이든 온종일 종편 채널에 눈길을 고정시켜 놓은 시청자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메시지를 확대 재생산하여 조회수를 늘리는 사이트나 유튜브 채널에 빠진 구독자들도 마찬가지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가짜 왜곡 정보를 무차별 생산하고 소비하는 미디어 시장이 된 배경이기도 하다. 솔깃한 미끼를 끼운 낚시 바늘을 던져 놓고 불나방이 몰려오기를 기다리는 미디어 소비 시장이 불안하고 위험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공기가 오염되면 생명에 위태로워지는 것처럼 그릇된 사고나 관념에 사로잡히면 사회가 혼란에 빠진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 조중동을 위시한 레거시 미디어의 개혁이 절실한 이유이다. 국민의 알 권리 추구하고 부당한 권력 남용을 감시하는 역할로 거듭나야 한다. 시청자와 구독자도 마찬가지다. 대중을 광고주에게 팔아넘겨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에게 더 이상 현혹되어 속으면 안 된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클릭하거나, 욕망을 유혹하는 대중적 연예와 스포츠, 서바이벌 오락 프로에 빠지는 것이 그것이다. 숨겨진 그들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속아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언론이 거대 권력이 된 한국 사회다. 민의를 잠재우고 여론 형성에 앞장서 기업이나 정치를 움직이게 만드는 조직이 방송사와 언론사다. 검찰과 유착하여 없는 죄도 만들어 누명을 씌우는데 앞장서고, 마녀사냥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선봉장에 섰던 그들이다.  광고주에 소비자를 팔아 잇속을 챙기고 메시지로 권력을 누리던 적폐 세력이다. 사회와 사회 구성원들에게 등불이 아니라 특정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특권 세력이다. 그들이 던지는 미끼를 함부로 물지 않는 것이 그들 적폐 언론들을 견제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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