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을 위한 최선의 선택 '취미'
어떤 운동이든 몸에 힘을 빼는 것이 좋다. 체중이나 근력을 이용하는 운동이 아니면 어떤 운동이든 '힘을 빼고 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특히 골프나 테니스, 탁구나 배드민턴, 당구와 볼링 등 도구를 이용하는 운동이 그렇다. 무리를 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동작이 운동의 기본이다. 테니스 레슨을 받을 때 '라켓에 힘을 빼는데 5년 걸린다'라고 했던 코치의 말이 기억난다. 테니스를 20년 동안 즐겼지만 힘을 빼는 데 성공하질 못했다. 몸이 굳은 나이에 배운 탓도 있겠지만 승부 경기를 하면서 힘을 빼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켓을 들고 코트에 서면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게 된다. 이기려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서브나 스매시를 할 때 힘을 빼 지지 않는다. 그러한 테니스 경기를 오랫동안 하다 보니 뜻하지 않는 상처가 남아있다. 오른팔 팔꿈치가 25도 이상 굽어진 채 아직도 펴지질 않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불필요한 동작에 힘을 썼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대부분 운동 경기 실력이 그러하듯 테니스도 라켓 활용 능력에 비례한다. 라켓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다루는지 숙련도에 따라 판가름이 난다고 볼 수 있다.
요즘 즐기는 당구도 비슷한 것 같다. 처음 당구를 칠 때는 큐대가 손에 익숙하지 않았다. 300점 수지가 되니 공에 대한 터치감이 어느 정도 생긴 것 같다. 큐의 무게를 이용해 힘을 조절하고 분리각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공의 배치에 따라 다른 기법의 스트로크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만큼 당구 게임이 편해지고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당구에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무리한 샷을 하는 법이 없다. 큐대를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부드러운 샷을 하는 사람이 당구도 고수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그동안 바둑을 좋아하고 탁구와 테니스, 당구에 취미를 가진 이유가 무엇일까를 돌이켜보면 하면 할수록 어려움이 느껴지는 매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알면 알수록 한계를 느껴 자꾸만 파고들고 싶은 성취 욕구를 자극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도전하고 그것을 성취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 취미생활이 아닌가 한다. 자신의 욕망과 기대, 열망을 품고 즐기기 위한 우리의 인생과 닮은 모습이 아닐까 한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 취미생활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생계를 팽개치고 취미생활을 즐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노동으로 운동을 대신했던 시절이었으니 생존을 위해 빼야 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시절이라 할 수 있다.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단순 놀이처럼 딱지치기나 구슬치기가 고작이었고 화투 놀음이나 윷놀이가 전부였다. 생존 욕구가 해소되지 않으면 취미생활에 관심을 갖기조차 어려운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생존에 안전을 느껴야 비로소 자아실현의 꿈도 자유롭게 도전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돈을 버는 기계처럼 살아온 기성세대들의 삶이 그랬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삶이다.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관심과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미래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천착한 삶을 자랑으로 삼았다. 하루도 돈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생존을 위한 그들의 열망은 당연한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힘을 빼지 못한 운동선수에 비유할 수 있다. 논밭의 잡초가 농사를 망치듯, 끝없는 그들의 소유욕이 그들의 행복한 삶을 불행하게 만들었던 셈이다.
생존을 위한 샘물(욕망)은 끊임없이 솟아나기 마련이다. 분명한 것은 돈이 삶의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삶의 여유를 찾는 취미생활이 절실한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고 성취의 기쁨과 자존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신의 피로를 달래고 성취에 대한 짜릿하고 달콤한 보너스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취미생활이다. 자신이 무언가를 이뤄내고 성숙함에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고 자각할 때처럼 삶이 뿌듯하게 느껴질 때가 있을까.
경쟁사회 인생은 고달픈 것이 사실이다. 싸우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전사처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사회는 이익을 놓고 벌이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일상의 모든 노력과 시간, 비용이 결국 돈과 연결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공부나 취업, 승진도 결국 돈 때문이고, 어떤 사건 사고 뒤에도 범인으로 돈이 숨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본이 모든 생존 욕구를 대신할 수 있고 삶의 모든 영역을 결정하는 것처럼 모두가 착각하고 사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가난으로 생계가 힘들고 불행했던 시절에는 어쩔 수 없었다. 생존을 지키려면 불편부당해도 시키면 시키는 대로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친일과 독재권력, 비민주화 시대를 살았던 삶이 그랬다. 개인의 의식을 일깨운다는 명목 하에 온갖 채찍과 경종을 울려댔다. 온 국민이 생존을 위한 처절한 경쟁으로 살라는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돈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 돈의 노예처럼 살았던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현대는 경제 선진국 수준에 오른 대한민국이다. 일에 중독된 억압된 삶에서 벗어나 인권을 존중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자본 경쟁에 매몰된 시대에서 삶의 질을 중시하는 시대로 변하게 된 배경이다. 개개인과 가정이 행복해야 일에 대한 만족과 국민 전체 행복도가 높아질 수 있다. 자유와 자아실현의 일환으로 취미생활을 중시하는 까닭이다.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던 시대에서 하다 보니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시대로 바꿔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람을 사람답게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가 아닌가 한다. 개인이 크게 힘을 쓰지 않아도 여유 있는 삶을 즐길 수 있는 사회가 진정으로 행복한 사회가 아닐까.
예컨대, 운동선수만 운동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건강과 자아실현을 위해 누구나 취미로 삼아야 하는 것이 운동이다. 어려서부터 즐기다 보니 남들보다 재능이 탁월하다고 인정되면 국가 대표 선수로 발탁될 수 있다. 유럽 국가 대표 선수들이 그런 것처럼 회사원이 국가 농구 선수가 되고 의사가 축구 선수로 뛸 수 있는 것이다. 뭐든지 남을 꺾어야 직성이 풀리고 수단과 방법을 어겨서라도 승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기에서 이긴 자가 승자가 아니라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승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생업이나 직업인으로 자신의 전문 분야는 따로 있으면서 전문 선수처럼 취미활동으로 즐기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다. 국민 세금으로 1등 만을 위한 엘리트 체육을 지원하고 국가 대표 선수촌을 운영하는 우리의 인식을 고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건강에 유익한 체육 활동을 취미생활로 즐기는 매력의 연장선에 국가 대표 선수 체제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승자만 살아남는 잔혹한 승부 세계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오로지 승부에 집착한 그릇된 폐단도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을까 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살게 아니다.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사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다. 생존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은 힘들거나 지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힘을 빼는 것이 쉽지가 않다. 한번 실패로 낙오자로 낙인찍히면 일어서기 어려운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일에 힘을 빼라는 주장은 힘이 없으면 살기 어려운 현대인들에게 힘을 빼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지킬 수 없는 진리나 다름없다.
워라벨이 중시되고 있다. 일에서 힘을 빼고 생활에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는 시대다. 운동뿐이 아니라 음악, 회화, 예술 등 모든 취미활동이 몸과 마음에 생긴 불필요한 힘을 자연스럽게 빼주는 역할을 해준다. 개인에게 행복과 자아실현의 꿈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최고의 촉매제가 취미 활동이 아닌가 한다. 자신이 품었던 기대나 꿈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도 취미생활을 통해서다. 돈이나 명예, 권위 어느 것도 인생에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스스로 내려놓게 만드는 것이 취미생활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