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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Jun 03. 2022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생각

변하고 있는 전통문화 시민의식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생애 잊지 못할 추억이다. 평소 축구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떠들썩했던 한일 월드컵은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한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을 외치는 리듬 소리가 반갑게 들린다. 평소 같으면 이기기 버거운 상대를 차례로 물리치고 4강 신화를 이룩한 주인공들이 다시 살아온 느낌이 들게 한다. 그 해 여름에 느꼈던 승리의 기쁨은 '대~한민국'을 외치던 붉은 악마들이 만들어 낸 기적이 분명하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부둥켜안고 '대~한민국'을 외쳐댔던 함성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만 같다.

 

     2016년 촛불 시위도 잊지 못한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과 문화계 블랙리스트, 세월호 침몰 사고 등에 분노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백만 명이 넘는 시민 행렬은 거대한 촛불 물결을 이루었다. 어마어마한 시위 장면이었다. 다수가 선택한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박근혜 탄핵' 카드를 든 행위는 한국 정치를 출렁이게 한 충격적인 일이다. 어떠한 폭력이나 희생도 치르지 않고 평화적으로 대통령을 물러나게 만든 사건이었다. 1700만 명이 넘는 시민 혁명군의 힘 때문이다. 세계사에 남을 시민혁명이 아닐까.


     비슷한 상황이 또 일어나도 똑같은 행동이 벌어질까?  붉은색 T셔츠로 거리 응원에 나가고, LED 촛불을 든 시위 행렬에 동참하게 될까. 장담은 할 수 없어도 망설여진다. 마음이 동조해도 몸이 실행하는 것은 부담으로 느낀다. 나이가 들어 열정이 줄어든 탓도 있고 군중의 일부가 되는 것이 꺼려진다. 다수의 의사를 존중해주고 따르는 것이 기본 질서라 생각하지만 가치관이 다르면 반드시 따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선택이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니고 실패한 경우도 흔한 일이다.


    랭킹이 높은 상대 팀을 이겨 즐겁고, 무소불위 권력을 심판하여 그만두게 만든 일은 잘한 일이다. 공동체 의식이 모여 이뤄낸 즐거운 일이다. 서로 양보하는 합심으로 국가적 재앙 코로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수출 품목 규제로 압박하던 일본에 대해 관광 중단과 불매운동 등 강한 연대로 대항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자존을 지켜낼 수 있었다. 수많은 독립군이나 민주투사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기에 선진국 지위와 위상을 차지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한데  군중의 힘이 잘못된 방향으로 쏠리면 위기를 자초하는 경우도 있다. 예비군 복장을 하면 누구나 행동이 비이성적인 태도로 돌변하는 것처럼 본능적 행동이 지배할 우려가 있다. 특정 종교 집단이 최면에 걸려 집단 무의식에 빠진 것처럼 잘못된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 개인주의 문화권 사람들에게 붉은 악마 열풍이나 촛불시위는 전통의식이나 되는 것처럼 원시적인 행동처럼 비칠 수 있다. 개인의 자유와 독립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떼창이나 대규모 시위 행렬은 집단 이기를 위한 이색적인 집단 행위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 한국의 또 다른 원동력이 스마트 폰 보급이다. 책도 휴대폰으로 읽는 스마트폰 만능 세대를 살고 있다. 인터넷과 대중 매체 보급이 세계 최고 앞선 나라가 한국이다. 콘텐츠 시장을 한국이 선도할 수밖에 없다. K-문화나 한류 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인기를 누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미디어를 통해 대중문화의 생산과 소비가 일어나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미디어 시장은 허점이 많다.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는 현실이 말해준다.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소비를 유혹하는 콘텐츠가 대부분이다. 왜곡 편협된 사고로 갈등을 겪는 원인이다.


     지난 5월 9일 임기를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났다. 그에 대해 온갖 비난과 원망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고 심한 욕설도 들려온다. 그를 반대하는 유권자들이 많아 윤석열이 당선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이 먼저다'는 가치를 지키며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끈 공적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그의 노력이나 업적에 실망한 사람도 많지만, 지지자로서 그의 공적은 높게 평가하고 싶다.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빚의 보답으로 TV 앞에서 청와대를 떠나 퇴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대선에 이어 8대 지방 선거에서도 진보가 보수진영에 석패했다. 이재명 후보가 낙선했을 때는 멘붕상태에서 헤어나기 힘들었다. 한데 새벽부터 뒤집힌 김동연 경기지사 투표 결과를 보면서 나도 몰래 탄성이 절로 나왔다. 대선 패배로 뉴스가 보기 싫고 입 맛이 달아날 정도로 기운을 잃고 지낸 적이 있던 내게 희망의 불씨를 본 것처럼 기뻤다. 이 의원의 보선 재기와 김 지사의 당선이 내일인 양 감격적인 일로 다가왔다. 좌절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과 관념이나 가치가 비슷한 사람끼리는 좋아하기 마련이다. 동질감에 호감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오랜 전통을 유지해온 대한민국이다. '내 편'에 관대하고 '네 편'을 적대시하는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도 사실이다. 혈연과 지연, 학연에 기대는 패거리 문화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 병폐다. 독점 권력으로 헤게모니를 쥐고 흔들었던 구태 정치의 그릇된 산물이 가중시켜 놓았다. 출신이나 세대에 이어 성별까지 편을 갈라 갈라 치기 하는 일까지 최근에 벌어졌다.                                               

    

    정치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유권자들에게 패싸움을 부추기는 짓도 마다하지 않는 비열한 집합이 정치집단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자신을 반대하던 정적들의 목숨까지 빼앗던 비민주적 악령이 되살아나 날까 염려되는 까닭이다.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일궈낸 선진 대한민국의 민주 시민 사회가 무너질까 두려운 이유이다.  문명의 혜택이 없었던 중세 시절에나 종교에 의지했고, 우리 선조들이 샤머니즘이나 무속의 힘을 믿고 살았다. 무속에 의존하는 지도자를 현대사회 국가 대통령으로 뽑았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아무리 탁월한 존재이고 비범한 사람이라도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미완성 존재일 뿐이다. 욕망과 이성으로 살아가는 한 불안을 느끼고 한계를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누군가를 우상처럼 여기고 떠받드는 행위가 가져다준 결말은 언제나 허망하고 불행한 결과를 가져다줬음을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일이다. 역대 대통령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아무리 지혜롭고 현명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도 전재 전능한 인간이 될 수 없다. 자아실현의 꿈을 향해 생존하던 인격체에 불과하다.


     대중 매체 영향을 받고 사는 현대인들이 그러하다. 류현진이나 손홍민, 이재명이나 윤석열, BTS나 임영웅에 열광하고 환호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스포츠나 영화나 드라마, 정치나 사회 뉴스로 유명세를 탄 인물 모두 대중 매체 주인공들이다. 스포츠나 방송 언론을 통해 스타로 알려진 사람들이다. 미디어에 노출된 메시지에 발을 동동 구르고 탄성을 지르는 모습이나 다름없다. 대중 매체에 압도를 당한 채 삶의 일부를 헌신하고 지배를 당하고 살아가는 셈이다.


    개인의 삶을 구속할 만큼 영향을 미치는 것이 종교다. 종교는 그나마 종교 집합에 국한되어 있어 다행이다. 오대양 사건이나 구원파, 신천지 집단에 의한 불미스러운 일도 집단최면에 걸린 사람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한 방송과 언론, 그를 이용한 정치의 폐해는 심각한 위기를 가져다준다. 대중을 맹신자로 만들어 불행의 수렁에 스스로 빠뜨려 실생활에 영향을 준다. 민심을 조작하여 이권과 특권을 차지해왔던 정치 언론 세력들의 수법이 속아 살아왔던 경험에서 비롯된 지혜다. 


    건강하고 안전한 행복한 삶을 위해 경쟁하고 논쟁하는 정치와 정치인은 드물다. 기득권을 차지하여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불신과 불만이 팽배해진 원인이다. 가짜 정보나 왜곡된 정보 유혹에 속아 넘어가 불행을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불신과 실망을 안겨준 실패한 정치인들이 모두 그랬다. 능력이나 자질이 부족한 형편없는 존재였음에도 대중 매체는 그들을 영웅처럼 포장하고 선전했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수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에 속은 탓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자 불안과 두려움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독선과 독재의 시대가 지났어도 그 시대의 불신용과 타도의 문화가 되살아날까 불안하다. 다수의 힘만 믿고 대화나 타협을 모르는 검찰 세력이 국정을 농단할까 두렵다. 국가 간 전쟁으로 에너지 공급 질서가 깨져 유가와 물가 상승으로 서민 경제생활에 타격을 입고 있는 것처럼 삶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대세를 추종한 선택을 존중해야 마땅하지만 정치인을 위한 정치가 될까 염려스럽다. 침략과 탄압을 물리쳐 이룩한 민주화 사회가 붕괴되지 않을까. 시민의식으로 지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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