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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Jun 15. 2022

자연을 빌려 쓰는 삶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아껴야 하는 이유

      우리 모두는 자연에서 왔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다. 원래 없는 존재였다가 태어나 존재로 살다가 다시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8~90년 정도 생명체로 지낼 뿐이다. 오랜 자연의 역사에 비한다면 우리의 존재는 미세먼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 길지 않은 생명체일 뿐이고, 물과 공기가 없으면 한시도 살 수 없을 만큼 미력한 존재일 뿐이다. 자연의 절대적인 도움을 받고 살아가는 자연 의존적인 생명체가 인간인 것이다. 


     자연을 아껴 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의 물과 공기가 오염되면 우리의 생명도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자연에게 빌려 쓰는 사람으로서 자연을 귀히 여겨야 하는 까닭이다. 자연을 지키고 보존하는 일이 곧 우리의 내일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자연의 소중함을 잊지 말고 고마움을 간직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던 자연을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자연으로 돌변하게 만들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산속에 가면 공기가 다르다. 빌딩 숲 속에 지내다가 시골에 가보면 바람에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천연 자연이 주는 맑고 깨끗한 시골보다 북적대는 도시공간을 찾는 이들이 더 많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편해질수록 주거환경도 그렇게 변해왔다. 문명이 진화할수록 자연의 혜택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 방향으로 변해왔다. 자연 친화적 삶을 포기하고 이기적 문명의 길을 선택하여 걸어왔던 것이다. 


   편리와 안락을 도모한다는 명분 하에 자연을 파헤치고 개발 이익에 취해 살아온 격이다. 자연에게 인류는 배은망덕한 존재나 다름없다. 언제 어떤 위험과 공포가 일어날지 모를 불안에 떨며 살게 된 원인이 아닐까 싶다. 자연 파괴범 내지 공범자들에게 안겨준 경고나 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전염병이나 지진과 태풍,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로 인한 재해나 재앙들이 그런 것이 아닐까. 자연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땅과 대기를 오염시킨 인간의 그릇된 행위를 꾸짖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당장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유해 물질을 타 먹는 어리석은 짓을 멈출지 모른다. 유전자 조작 식물에 의존하고, 살충제나 제초제를 뿌려 키운 농산물에 의존하는 현실이 그러하다. 욕망을 위해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삶을 묵인한 채 살고 있는 셈이다. 땅 속뿐이 아니라 문명 이기로 인한 대기 오염 상태는 심각한 상태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지구 온난화로 인한 엄청난 불행을 맞게 될 것이라 경고한 지 오래다. 자연을 아끼고 지키는 일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지난 8월 5일 달 탐사선 다누리가 우주를 향했다. 12월이면 달에 착륙할 것이라 한다. 대한민국의 천문 우주 과학 기술의 발전과 성공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달 탐사선 성공을 자축하며 자유 우주여행 시대를 열었다고 자랑하는 보도 장면을 보면서 왠지 씁쓸한 기분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성공으로 국제 사회 위상과 경쟁력에 유리한 줄은 몰라도 공기가 없어 생명체가 살지 못하는 행성마저 차지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환상은 맘에 들지 않는다. 자연을 사랑하는 자연인에게 정복자 꿈을 부추기는 듯한 인상이 못마땅하다.


    자연이 주는 혜택이 아니면 하루도 살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고마운 자연이다. 토양이 오염되어 먹을 물이나 식물이 살아남지 못한다면 우리의 생명도 생존할 수 없다. 절대 유용한 가치의 자연이 파괴되는 일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끔찍한 상상이 현실로 다가올 날이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불과 수십 년 동안 지내온 삶을 지켜본 바로도 현실 세상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 기술과 문명이 급변하여 삶이 바뀐 만큼 자연 생태계 질서는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60년대만 해도 샘물이든 펌프 물이든 우물물이든 아무 물이나 믿고 마셨다. 하천수를 가둬 걸러낸 수돗물에 의존하는 현대인으로서 꿈만 같은 이야기다. 마실 물을 사 먹는다는 상상조차 하지 않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 일이다. 동식물을 가꾸고 키우기에 피곤하고 힘은 들었지만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생활은 건강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자본의 노예화된 삶으로 변하면서 신선한 공기나 물, 먹거리는 내주고 말았다. 대신 돈벌이를 추구한 삶을 선택하게 됐다. 많은 땅을 돈벌이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꼭지 물을 그냥 마시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손녀가 화장실 수돗물을 컵에 받아먹는다고 하는 말에 적지 않게 놀랐다. 그곳 수돗물은 먹어보면 생수 못지않게 깨끗한 맛이 난다. 신선한 물맛에 놀랍고 부러웠다. 그들이 그동안 얼마나 자연을 아끼고 지켜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레타 툰베리와 같은 환경 운동가가 탄생한 배경이 아닌가 싶다. 그들의 자연 사랑은 남다르다. 탐스런 체리나 블루베리가 지천에 깔려있어도 손대는 사람이 없고, 건물을 지을 때 바위나 나무조차 그대로 둔 채 짓는다. 


    스웨덴 시민들의 자연에 대한 애착은 여기저기에 나타나 있디. 반려동물을 데리고 나오면서 배설물을 방치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자기 집에 자기 차를 주차할 때도 대기 오염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하는 것으로 여겨 월 5만을 낸다. 지구 온난화 방지와 탄소가스 방지를 오래전부터 실천해온 것이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발전만을 추구해온 우리들에게 잊고 있었던 자연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우리 스스로 생존을 지키는 최소한의 지혜가 자연을 아끼고 지키는 일임을 깨닫게 해 준다.


    주변에 있는 하천이 반석천이다. 계룡산 줄기 계곡에서 시작된 물이 흘러내리는 좁은 하천이다. 4대 강 개발 후 생활 하천 정비 사업으로 탈바꿈된 하천이기도 하다. 유성천에 이르기까지 7.4km 하천에 산책로가 나 있고, 체육 시설이나 휴식 공간이 마련돼 있다. 시민공간으로 가꿔 놓은 것이다. 맑은 물에 물고기들이 살고, 야관문을 비롯한 이름 모를 나무들과 풀로 가득한 아름다운 자연 생태계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가 끝나면 아내와 늘 찾는 곳이다.


    반석동으로 이사를 올 때 반석천도 한몫을 했다. 건강 관리를 위해 산책을 일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산책로는 생활 필수 여건이나 다름없다. 산책을 하다 보면 어제 만난 사람을 오늘도 또 만난다. 나이가 든 사람뿐이 아니다. 딱딱한 콘크리트 벽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자연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걷는 운동을 일삼는 이들이 부쩍 늘었음을 알 수 있다. 갈수록 자연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을 알 수 있다.


    2년 전 장마로 수해를 입기 전까지 반석천은 더 생동감이 넘쳤다. 맑고 깨끗한 물과 피라미, 송사리 뛰노는 모습을 관찰하러 나오는 아이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최근 들어 뜸해진 것 같다. 코로나 재앙 탓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하천 오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산책을 하다 보면 하수구나 시궁창 냄새가 코를 찌르는 곳을 지나칠 때가 있다. 인근 주민들의 생활 오수나 폐수가 흘러들어 자연 생태계가 무사하지 못한데 주된 원인이 있어 보인다.


   하천가 화려한 꽃양귀비 향기는 물론 풀 내음도 들꽃 향기도 삼킨 만한 악취가 난다. 심한 악취만 진동하는 것이 아니다. 속이 훤히 보이던 하천 바닥이 미끌미끌한 수초와 시커먼 오염 물질로 덮여 있다. 피라미가 사라지고 생존력이 강한 짙은 갈색 물고기로 어종마저 바뀌어 버린 듯하다. 산소가 부족한 탓인지 살려 달라 고함치며 물밖으로 뛰쳐 오르고 있는 모습처럼 보일 때가 있다. 내다 버린 양심 때문에 애꿎은 생명체가 고통을 겪는 듯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비가 후련히 내려 하천 바닥을 청소라도 해줬으면 하는 걱정하던 내 마음을 알았는지 몇 차례 비가 내렸다. 하지만 반석천은 다시 예전 모습이다. 미끌미끌한 수초에 끼어있는 이물질들은 그대로 있다. 빗물에 씻겨 하천수가 일시적으로 정화되었어도 오염원이 제거되지 소용없는 것이다. 생활 오염물질을 하천에 흘러 보내는 시민 의식이 달라져야 하는 까닭이다. 하천수 오염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스스로가 입고 만다. 우리의 생명과 생존 문제인 것이다. 오염의 주범을 찾아내고 제거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까닭이다.


   현대인들은 생존을 핑계로 스스로 삶을 고장내고 망가뜨리고 사는 꼴이다. 스스로 오염시켜 놓고 스스로 피해를 당하는 꼴이다. 반석천뿐이 아니라 주변 생활 하천 모두 우리 생명을 지켜주는 생명수다. 따라서 하천을 오염시키는 행위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하천에 생활 찌꺼기나 더러운 물질을 흘러 보내 하천수를 부패하게 만드는 행위는 삶을 파괴하는 끔찍하고 충격적인 일인 것이다. 스스로 생명을 파괴하여 위험에 빠뜨리는 범죄 행위임을 서로가 깊이 인식해야 하는 까닭이다. 


   생존을 핑계로 소중한 자연의 고마움을 잊고 살아온 지난날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연에 살충제나 제초제를 마구 뿌려대고, 여과 없이 폐수와 오수를 자연에 방출시켜온 지난날을 돌아보고 반성부터 해야 한다.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르는 것이 오늘날이기 때문이다. 독성 물질이나 오염 물질로 뒤덮인 토양에서 나는 생물을 먹으면서 찜찜해 할 수밖에 없고, 안심하고 먹고 마실 수 있는 것이 없을 정도가 아니던가. 하천수를 가둬 걸러낸 밍밍한 수돗물을 끓여 먹거나 생수를 사 먹고 있는 실정이 아니던가.

 

    생태계 방어막이 무너지면 인간의 생존에 위험을 느끼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코로나19보다 무서운 재앙을 겪게 된다. 질소와 인은 모든 생명체에게 필요한 필수 불가결한 원소인데, 바다나 산림, 토양이 제구실을 못하면 질소와 인 등 무기원소 순환이 무너져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 결과 생명체 모두가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되는 상황은 뻔한 일이다. 먹는 식량과 물, 공기(기후)가 붕괴되어 생명의 위험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자연환경의 부패와 오염을 방치해선 안 되는 까닭이다. 


     우리는 자연에 머물러 살기에 피로도 풀 수 있고 스트레스도 해소할 수 있다. 아프면 치료를 돕는 약도 식물의 방어 물질에서 얻는다. 인간의 삶과 생존에 유용한 모든 성분을 자연이 주는 것이다. 그러한 자연이 붕괴되면 우리의 삶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임을 상기해야 하지 않을까. 자연에서 받는 만큼 돌려주는 것이 삶의 이치이자 도리임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소중한 자연을 지키는 의무를 다할 때 우리의 미래에 희망도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을 오염시키는 범죄 행위로부터 자연을 지키는 일이 당연한 까닭이다. 


   오늘도 반석천 산책로를 걸으면서 오염으로 몸살을 앓는 반석천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다짐을 해본다. 봄이 되었지만 침묵하는 봄의 안타까움을 울부짖은 레이철 카슨을 생각하면서 오염 원인을 밝혀내 오염을 차단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양심의 고발장을 쓴다. 침묵하는 반석천이 버려진 양심으로 더 이상 죽어가지 않도록 우리 모두 감시자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우리에게는 미래 세대가 살아갈 자연환경을 살피고 지켜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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