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에 기대고 싶은 나약한 인간 심리
모든 생명체는 살기 위해 산다. 먹고 자고 숨쉬기 위해서 산다. 하지만 살기 위해 산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 인생이 그랬던 것이 아닐까. 뭔가 부족한 욕망을 추구하며 살아온 것 같다. 지식을 쌓고 일을 하며 살아온 삶 자체가 부족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나 명예를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마다하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다. 갖고 있는 것이 모자라다는 생각 때문에 더 갖기 위해 경쟁을 벌였던 것이다. 내 인생이 허탈한 기분이 들게 했던 원인이 아니었을까.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욕망이 살게 한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일상이 아니라 욕망의 노예처럼 살아왔던 셈이다. 그러한 욕망조차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좋아한 것이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싶어 취미생활을 하고, 각종 모임이나 학술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했던 것이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돈이면 그만인 부당한 현실과 맞서 싸우지 않고 내 욕망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던 것이 분명하다. 욕망을 쫓아 살아가면서 살기 위해 산다는 말은 괜한 말은 아닐까.
얼마 전 가난의 좌절과 고통을 견디지 못해 일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가난으로 인한 소외의 고통이 얼마나 아팠으면 생존 본능마저 포기하고 말았을까. 돈이면 다인 참혹한 사회가 얼마나 원망스럽고 싫었으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했을까. 아직도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연애도 사랑도 결혼도 엄두 내지 못하고 인생을 살아갈 만큼 돈이 종교가 된 세상이다. 돈 없이 생존이 불가능한 자본 중심 세상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절대 빈곤 시대에 태어나 생존을 지키기 위해 불나방처럼 살아온 인생에게 N-포 세대들의 삶은 사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동안 열패자들을 양산해낼 수밖에 없다. 자본 중심 사회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동안 생존 욕망조차 사치로 여기는 세대들 세대가 다가온 것이다. 자고 싶을 때 못 자고 굶주린 배를 참아야 하는 피해자들이 무지기수로 등장한 셈이다. 불나방처럼 살아온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의 아픔과 고통을 게으름이나 무능을 탓하면 안 되는 까닭이다.
누구나 스타가 되고 싶다. 인정받고 싶고 존경받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 모두의 욕망이다. 남녀노소 인기 가수나 연예인을 좋아한다. 자신이 그들을 향해 환호하고 열광하는 것처럼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인 것이다. 청소년들이 인기 스타에 탄성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현상이나 트로트 가수 임영웅에 열성 팬 할머니들이 상당수다. 자신이 갖지 못한 재능이나 능력을 갖춘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도 존재감이 부러운 것이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즘 특정인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팬덤 문화가 유행이다. K-pop 뿐 아니라 지식인이나 정치인, 종교인이나 스포츠인 셀럽이 미디어를 통해 현대인의 관심과 사랑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BTS나 K-문화가 세계적 인기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팬덤 문화 덕택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가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시대에 팬심의 쏠림 현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남들도 똑같이 좋아하는 건 아니다. 취향이나 기호마저 대세를 따르는 기이한 문화 현상이 아닌가 싶다.
욕망을 추구하고 편견에 의존하는 한계를 지닌 인간은 우상을 섬기고 의지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부족한 이상을 꿈꾸고 싶어 하는 것을 인간다운 모습으로 여긴다. 하지만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나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인간일 따름이다. 제 아무리 유명하고 훌륭한 인물도 전지전능한 존재가 될 순 없다. 그럼에도 인간을 초월한 '신'이라는 존칭을 쉽게 쓴다. 영원불변의 존재가 불가능한 일이고 비현실적 알면서 삶의 목표나 이상으로 여기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이다. 자기중심적 모순에 빠져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인간이기에 비현실적 삶에 지배당하고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약한 인간으로서 고유한 생존 방식이 아닐까. 고도의 지능을 지녔지만 연약하고 생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지혜가 신앙을 만들어 냈고,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상상이나 관념도 만들어 삶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모든 것을 알고 모든 능력을 지닌 전지전능의 존재나 언제 어디서나 변하지 않는 영원불변의 진리를 만들어 우상으로 섬기고 삶의 질서나 근거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다.
우상을 우러러 섬기려는 태도는 스스로 포로가 되는 것을 자처하는 행위에서 시작된다. 주인에게 복종하는 자발적 노예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나약한 인간의 공통점이 아닐까. 자신이 만물의 영장이라 생각하지만 지극히 미흡한 지식과 한정된 삶을 사는 존재임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만물의 영장이라 하지만 고독과 불안을 참기 힘들어하는 힘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한 탓이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만큼 무리에서 이탈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공포로 여기는 존재가 인간이다.
삶이 즐겁고 행복한 까닭도 사랑하는 가족과 그리운 친구가 있어서다. 사랑을 나눌 때 기쁘고 정이 오갈 데 즐거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 재미있고 살만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뿌듯함이 느껴지고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로 지내는 것이 내 삶과 인생의 전부이자 목적이 아닐까 한다. 영원히 죽지 않을 사람처럼 살고 우상에게 의존하며 살고 싶어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닐까.
우주 만물 먼지에 불과한 보잘것없는 인생이다. 살면서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고 잘하면 얼마나 잘할까. 별 것도 없는 인생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희로애락을 나눠온 그들이 고통받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게 모두의 바람이 아닐까. 힘이 없어도 큰 상처와 아픔을 겪지 않는 사회가 살고 싶어 하고 동등한 대접을 받는 공평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 돈과 명성에 아등바등하지 않고 살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이 언젠가 찾아오리라 믿는다. 신과 우상을 추앙하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