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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Nov 19. 2022

단호한 거절이 필요한 때

어그로를 끄는 대통령의 정치질

    교수는 한 학기 강의가 끝나도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들 강의 평가가 나오고 나면 다음 학기를 또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의 만족도 조사는 교수의 강의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고 효과가 있었는지 알아보는 것으로 교수의 역량과 대학의 질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수강자들의 사적 감정이 강의 평가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위해 익명을 보장하여 어느 대학이든 실시하는 것이 원칙으로 알고 있다.


    강의 만족도 조사로 교수의 강의를 평가하는 까닭은 교수의 강의가 교육의 수준과 질이 좌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수는 교육활동뿐 아니라 연구, 학생지도와 사회 봉사 활동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교수는 그 책임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책임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평가에서 탈락하고 만다. 교육이나 연구 활동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교수로서 자격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실제로 교수 평가에 의해 교원 인사가 문제 되어 골머리를 앓거나 불명예 퇴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교수 평가가 탄압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교수가 평가에서 예외인 경우는 없다. 교수의 역량이 대학 교육의 질을 담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교수 직급에 따른 임기가 보장되어 있어도 마찬가지다. 교수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역량이 부족으로 교수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정해진 연구 실적물을 채우지 못하거나, 학생의 기대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교수직을 떠나야 한다. 학문과 기예를 가르치는 교수로서 연구와 교육, 봉사는 원칙으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수뿐 아니라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다. 일 자리가 부족하여 인재가 넘치는 현실에서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를 원하긴 하지만 자본 경쟁 사회에서 성과와 역량에 따른 차등 보상은 합리적 생존 방식이라 생각한다.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자리를 그만두는 것이 순리라 믿는다. 강의 못하는 교수가 강단을 떠나야 것처럼 정치를 못하는 대통령이 국정을 맡고 있으면 곤란하다. 교수에게 학습권 보호 의무가 있듯이 대통령에겐 국민의 생존과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교수가 학생을 중시하고 정치인이 유권자를 두려워해야 옳다. 교수 평가나 여론 조사 때문이 아니라 학생이나 유권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공인으로 책임을 무겁게 느껴야 한다. 교수나 대통령에게 권위나 명예를 부여한 것이 특혜가 아니다. 공인에게 부여된 막중한 책임과 역할에 상응하는 정당한 보상이고 예우이다. 민생 책임 권한에 부여된 역할을 다하도록 주권자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권한 행사를 견제하는 여론 조사를 외면한다면 주권자를 권리를 무시하는 행위와 같다. 민심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6개월 국정 운영 평가에 관한 국민 여론 조사 결과가 나왔다. KBS MBC SBS가 조사한 설문 응답자 중 각각 64.9%, 59.7%, 64.5%가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한 결과였다. '잘한다'라고 응답한 유권자는 30% 수준이다. 취임 초반 민심일 뿐 아니라 현 정권에 주요 방송 언론이 우호적인 상황을 감안한다면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매우 낮은 점수다.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기대와 요구 수준에 못 미치는 '낙제점'이라 할 수 있다.


    여론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대통령의 무시에 화가 났어도 참을 수밖에 없다. 역대 대통령과 달리 새로운 용산 시대를 열듯 시민 친화적 신선한 행보에 기대를 걸기도 했다. 부족하고 결점이 있는 인간이기에 실수나 잘못도 이해할 수 있다. 술도 마실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쾌한 감정도 표출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사적 결함이 공적 책임에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대통령으로 경험이나 경륜 부족이 국가와 국민에게 악영향을 주면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전문 지식이 부족한 교수가 수업 준비도 안 하고 전공 수업을 맡으면 안 되는 이치와 같다. 나는 요즘 그런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이 된 기분이다. 동네 아저씨에게 대한민국 운영을 맡겨 놓은 것처럼 불안을 느낀다. 교수가 본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학생들 학습권 침해를 사유로 처벌이 정당한 것처럼 대통령이 국민의 안정된 삶을 챙기지 못해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면 대통령 자격을 문제 삼을 수밖에 없다. 주권자 권리를 해친 행위를 물어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다음 날. 브런치에 '이태원 사고에 대한 표현에 신중을 기했으면 좋겠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신기할 정도로 놀랄만한 공지가 아니었나 싶다.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자유마저 간섭받고 억압받게 되었나 하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참사를 사고라 하고, 희생자를 사망자라 표현하라는 저의가 한심하여 총칼로 위협하던 군사정권이 떠올랐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당사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은폐 축소하려는 한심한 모습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은 국가로부터 생명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고, 국민의 생존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공인의 가장 중요한 의무가 명백하다. 158명의 젊은 세대들이 영문도 모르는 순간에 무고한 희생을 당한데 비통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애도에 앞서 책임을 밝혀 의혹을 해소하고 재발 방지를 대비하는 것이 정부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부터 해야 안정도 찾고 개선도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현 정부가 참사를 대하는 모습은 그와 반대다. 여론에 어그로를 끌어 민심의 불안과 실망을 초해했던 것이 분명하다.


   가뜩이나 경제 위기로 민생이 어려워진 상황에다 민심이 불안하여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에도 외면하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 아무에게나 반말로 지껄이는 동네 아저씨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공인으로서 품격과 품행이 수준 미달인 것은 확실하다. 욕설과 망언을 사실 그대로 보도한 매체를 압박하고, 이젠 공인으로서 자신의 언행을 당당하게 드러지 못할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든다. 외부 기자의 취재보도를 불허라는 대통령에게 더 이상 우리의 기대나 요구는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능교수가 강단에 서면 안 되듯이 민심을 모른 체하고 무시 해도 괜찮다는 대통령이 국가의 미래를 맡으면 안 된다. 대통령은 모든 행적이 낱낱이 기록되고 보존될 만큼 프라이버시 침해와 무관한 공인이다. 그럼에도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외면한다면 대통령으로서 역할을 스스로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으로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 자신과 국가에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서로의 불행을 막기 위해 단호한 거절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스스로 물러날 수 있게 강력한 저항을 표현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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