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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May 09. 2024

생각만 해도 짜증 나는 사람

마음이 불편한 사람을 대하는 법 

     어버이날이다. 살고 있는 근처 아파트로 작은 딸이 이사를 오기로 한 날이다. 이사를 할 때는 연쇄적으로 상황이 진행되기 때문에 시간 약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데 입주할 곳에 하자가 생기고 말았다. 이사 청소를 하고 이사하기로 했지만 숨겨 둔 곰팡이가 문제였던 것이다. 청소 업체가 청소는 끝냈지만 도배공사를 다음 날 해야 했다. 오늘은 이삿짐을 거실에 쌓아둔 채 도배를 하는 날이다. 하나마나한 이사 청소로 화가 잔뜩 났다. 임차인과 이전 세입자가 도배 비용은 부담하기로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사가 이틀이나 지연되는 상황에서 문제는 아이한테 나타났다. 낮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잘 지내던 녀석이었는데 밤이 잠투정이 예상외로 삼한 것이다. 혹시나 우려되어 침대며 익숙한 잠자리를 준비해 두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온종일 노느라 피곤한 탓에 곤히 잠들 길 기대했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밤새 흐느껴 우는 바람에 가족 모두가 혼쭐이 나고 말았다. 아이가 놀라고 겁이 난다는 신호를 밤새 보냈어도 누구도 아이를 진정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끌어안고 달래도 아이의 불안과 두려움은 엄마도 잠재울 수 없었다.


    아침에 녀석의 울음소리를 듣고 안고 나왔다. 딱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꽉 껴안고 비벼대니 눈물이 흘러나왔다. 자괴감에서 흘러내린 눈물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나 사물을 경계하고 무서워하는 손자다. 천성이 여린 손자의 상처를 감싸주지 못한 죄책감의 눈물이었다. 두려운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돕지 못한 할아버지의 미안함이다. 불안에 떠는 아이를 허둥대며 지켜보는 이들을 탓하던 자신에 더 짜증 나고 화가 나서다. 나이 들어 더욱 안정되고 평온한 삶만을 원하는 과욕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실 나는 가족의 평온한 생활을 제외하면 특별히 걱정할 일도 마음 불편할 게 없이 지내는 편이다. 가족의 안위는 덜 걱정이다. 그나마 서로 믿고 의지하고 각자가 바쁘게 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않는 걱정이 현실 정치에 대한 걱정이다. 생각만 해도 짜증 나는 사람 때문이다. 마음 편한 날이 거의 없고 잠을 이루지 못한 밤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2년을 무기력에 빠져 불편하게 지내고 있다. 아직도 남은 3년을 버틸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가족의 아픔이나 상처도 견디기 힘들지만 정치 충격도 마찬가지다. 정치가 불안하니 마음이 불편한 걸 새삼 깨닫고 있다. 삶의 일부를 지배하는 종교가 종교인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할 수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겐 부당하게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다.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삶 전체를 지배하는 정치는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짜증 나는 사람을 뽑지 않은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패하고 후퇴한 정치 현실에 자꾸만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짜증 내는 사람이 손해를 입는다. 태연한 척 지내고 불편하면 거리를 두는 게 상책이다. 동창회나 동호회, 친지들 모임조차 내키지 않으면 나가지 않는 내가 그렇다. 아예 포기한 모임도 여러 군데다. 애경사 인사도 계좌 이체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운전이 부담스럽고 이동이 귀찮은 탓도 있다. 속내는 마음 불편한 사람이 있는 자리를 피하고 싶어서다. 산업화 민주화를 함께 겪고 살아온 이들이지만, 공정과 상식을 잘 지켜 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아서다.


     정치의식도 진화해야 삶도 희망이 있다. 정치가 억압과 차별, 불평등 해소에 진보를 거듭하면서 선진국 대열 합류하고 성공한 한국 사회가 될 수 있었다. 검찰 정권이 들어서 후퇴하기 시작했고 불안과 절망을 맞게 된 것이다. 군사 독재 시절 군사력으로 국민을 억압했다면, 검찰 정권이 수사력으로 탄압하고 있다. 차별과 불평등을 가속화시켜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훼손시키고 있다. 정치가 퇴보하여 과거로 회귀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에 거는 희망이 사라져 기운이 빠지고 정신이 멍해진 상태라 할 수 있다.  


     주말마다 촛불 행동 집회가 열리는 것도, 이번 총선에서 민심이 쏠린 것도 그 때문이다. 정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불신이 커졌기 때문이다. 88 차례나 수천 명 시민들이 탄핵을 외치고 특검을 주장하는 이유다. 민생이 불안하여 국가 위상을 추락시킨 정치 주범을 표심으로 심판한 것이다. 더욱 화가 치미는 까닭은 개선의 기미는커녕 변명과 수사력으로 겁박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포탈이나 방송 언론은 스포츠나 연예 오락으로 민심의 눈과 귀를 한가히 흐리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직장 동료, 정치는 짜증이 나도 부딪칠 수밖에 없다. 떼려야 뗄 수 없는 현실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생존 욕망으로 묶인 운명 공동체는 부정도 외면도 할 수 없다. 구속과 지배로 자유를 빼앗겨도 견뎌야 한다. 어린아이가 처음 눕는 잠자리가 불편하여 위화감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무력함을 느껴도 견뎌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슬픔과 불행을 겪어야 하는 까닭이 아닐까.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지혜로 삶에 적응하고 도약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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