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걸음마가 중요한 이유

육아교육의 소중함과 딜레마

by 최길성

손자가 새 학기에 어린이집을 옮겼다. 단지 내 어린이집을 다니다 4킬로나 떨어진 곳을 다니게 된 것이다. 22개월 된 손자에겐 충격을 주는 변화가 분명하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생겨서가 아니다. 부모와 떨어진 어린이집 생활은 아이에겐 두렵고 낯설긴 일이다. 손자도 처음엔 그런 편이었다. 6개월이 지나면서 적응이 됐을 뿐이다. 아직 말도 잘 못하는데 친구 이름도 부르고 선생님과도 친해진 것 같았다. 가까이 있어 편하고 아이가 가고 싶어 하던 어린이집을 놔두고 먼 곳으로 전학을 시키게 된 것이다.


옮긴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곳 어린이집 생활이 궁금했다. 적응도 잘하고 좋아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여전히 걱정스럽다. 요즘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나 노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많이 달라지긴 했다. 발음 불능이던 낱자가 부쩍 줄어들었고, 낱말이나 숫자를 이어 말하기도 시작했다. 동물 그림 퍼즐 맞추기를 가지고 노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어린이집을 옮기고 전에 비해 아이가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달라진 건 분명해 보인다.


정작 180도 달라진 사람은 엄마 아빠가 아닌가 싶다. 딸과 사위의 육아 태도가 이전과 정말 달라졌기 때문이다. 육아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늘 고민하던 그들이다. 가깝고 편한 어린이집을 놔두고 굳이 먼 곳을 선택할 정도로 열의 넘치는 부모였다. 육아교육에 철두철미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어린이집을 옮긴 후부터 아예 육아에 전념하다시피 하는 모습이다. 손자 어린이집 생활이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어린이집을 쫓아다니며 열성적인 모습에 걱정이 든다.


육아 부담이 크고 망설임 끝에 선택한 육아공동체 생활이다. 할머니와 나는 손자를 편히 보살필 수 있다는 생각에 옮기는 걸 속으로 만류했다. 손자가 선생님과 또래 아이와 잘 지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좋은 어린이집이라 여기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의 일과를 스냅사진에 담아 카톡으로 보내 준 걸 보고 안도하며 흐뭇해했다. 6개월 동안 손자의 어린이집 생활 앨범이 나왔을 때 기특하고 감사하여 감탄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이를 정성스레 돌봐준 선생님의 따스한 보살핌이 너무 고마워서다.


첫걸음마를 뗀 어린아이를 시설에 맡길 때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런 아이를 애지중지 손길로 감싸준 선생님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에 대한 무한의 헌신과 사랑, 그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는 일이다. 할머니와 내가 믿고 안심하여 옮기는 걸 만류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쏟는 딸의 입장은 달랐다. 그녀가 육아에서 무엇보다 신경 쓰는 일이 미디어 노출이었다. 태어나 이제까지 TV 화면에 아이의 시선을 빼앗기게 한 적이 없는 딸이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을 때이다. 혈액 검사를 하기 위해 주사 바늘을 꽂자 아파 우는 아이에게 간호사가 휴대폰으로 달래려 한다. 소아 병동마다 뽀로로나 타요 영상을 틀어놓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아이의 시선을 돌려 진정을 돕기 위함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남다른 엄마에겐 배려 행위가 아니다. 간호사 권유를 단호하게 물리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커서 아이가 미디어 중독에 빠질망정 미디어 노출에서 지키고 보호하는 일을 부모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육아교육 현장을 바라보던 엄마의 답답한 속내가 아닐까.


청소년 게임 중독만 심각한 사회 문제는 아니다. 유아 스마트폰 중독도 심각한 상활이다. 미디어 중독이 병적인 심각한 상황임에도 속수무책으로 방치하고 있다. 어딜 가나 어린아이들이 아이패드나 스마트폰에 포획된 모습을 흔히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노출이 아이의 심신 건강에 해를 끼치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집중력 저하와 우울과 불안의 원인으로 등 건강한 성장을 방해하는 주범이다. 교육제도나 사회가 묵인하는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 마음은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를 시설에 맡기는 딸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자 딜레마가 아니었을까. 어렸을 때 딸에게 붙여준 별명이 도덕 소녀였다.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부정행위에 유난히 거리를 두려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사회교육 분야에 전공과 진로를 정한 배경과 무관하지가 않다.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는 어릴 적 신념으로 여태껏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에게 무난한 국. 공립 어린이집도 포기하고 아이 중심의 공동체 육아를 선택한 배경이라 생각한다.


손자가 다니는 공동 육아 어린이집이 그렇다. 아이를 둔 부모의 마음을 딱 닮았다. 아이 중심의 육아를 원하는 부모들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다. 구성원 모두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엄마 아빠 선생님이 아니라 꾀꼬리나 당근, 고구마, 체리로 부른다 한다. 동물이나 식물처럼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관계를 맺는다 한다. 바쁘고 쫓기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각성이지 싶다. 선행 학습이나 인지 교육에 매몰된 육아에 대한 반성이 아닐까 한다. 힘들고 어려워도 지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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