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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세에 어린이집을 보낸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상담하는 아빠는 육아휴직 중(297일) - 53

by 차거

와이프 :오빠! 숲이 출생신고 하자마자 어린이집을 걸어놔야 해!


나 : 아니, 꼭 그렇게 해야 해? 첫 돌 되기 전 까지는 집에서 내가 같이 보내고 그 후로 보내면 안 될까?


와이프 : 아니... 오빠... 0세에 다니던 가들이 그대로 1세 반으로 올라가서 숲이 한 살 되면 더 들어가기 어려울 거야.


나 : 만약 1세 못 가게 되면 내가 1년 더 육아휴직을 해도 되지 않을까?


와이프 : 1세 반 아이들이 또 그대로 2세 반으로 가겠지...


산후조리원에 들어가자마자 우리 부부가 했던 대화였다. 어린이집을 0세부터 보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던 나는, 와이프가 왜 이렇게 급하게 어린이집을 신청하려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무지했고, 어리석었는지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출생신고가 완료되고 와이프가 어린이집 신청화면에 접속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까지도 '뭐가 이리 급하지?'라는 생각뿐이었다. 그 순간 와이프가 내게 말했다.


'오빠 우리 지금 신청해도 대기가 80번인 것 같은데? 티오는 총 6명이야...'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그제야 나는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고, 어린이집 대기가 묻지 마 신청 때문에 빠지기도 하지만, 2자녀가 가정이 신청을 하게 되면 그대로 순위가 밀린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린이집 때문에 직장 근처로 다시 이사를 가야 하나 생각도 하는 등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기적처럼 우리는 단지 어린이집에 당첨되었다(관련해서 작성한 글이 있다).


어린이집에 당첨되었을 때 너무 다행이고 감사했지만, 속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1년 뒤에는 더 보내기 힘드니 0세부터 당첨되면 무조건 보내야 한다'라는 것이 무엇인가 나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이 어린 아가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한다니... 그것도 내가 육아휴직을 하며 집에 있는데...


그런데 이런 나의 생각은 와이프가 복직한 후 '산산이 깨졌다'. 아이와 순수하게 홀로 하루를 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육체적 피로에 더해서 '내가 숲이를 너무 정적으로만 대하나?'와 같은 심리적 고통까지 더해졌고, 태어나서 거의 처음 '울적하다'라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이 울적한 마음이 드는 것에 대해서도 온전히 힘들어할 수 없었다. '부모인데 아이 때문에 괴로워해도 되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에게 어린이집은 '어쩔 수 없이 보내는 곳'이 아니라 '숲이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보내는 곳'으로 바뀌었다.


숲이는 다행히도 어린이집에 순조롭게 적응했다.

부모와 함께하는 1주 차 적응기도, 홀로 처음 보내는 2주 차도, 처음 낮잠을 접하는 3주 차도(물론 감기가 계속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리고 나는 학부모운영위원도 하기로 했다.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인가, 솔직히 학부모운영위원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이거를 하면 숲이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였기 때문이다.


0세에 어린이집을 보낸다는 자책감을 버리기로 했다. 숲이도 어린이집에서 즐거운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고(다행히 보채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숲이가 집에 왔을 때, 나 역시 최고의 컨디션으로 숲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제삼자의 시각으로 보는 것과, 직접 겪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리고 가정보육을 하는 여러 부모님께 경의를 보낸다. 동시에 0세에 어린이집을 보낸다고 자책하고 계실 부모님께 '부모가 건강해야 아이도 행복할 것이다'라는 응원의 말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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