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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인들을 찾고 있었어요!

자신의 소식을 전해오는 사람들.

by 차거

내가 온라인 방송에서 상담을 할 때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있다.


바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행동을 교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실제상담에서도 지키려 하는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단점을 교정하기보다는 장점을 강화시키는 방향을 선호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 내가 이야기하기보다는 내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만든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상담을 찾아온 호소문제보다 오히려 더 내담자를 힘들게 하는 '진짜 호소 문제'를 함께 찾아내는 경우가 꾀나 많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굳이 내가 문제를 해결하거나, 교정을 하려 할 필요는 더욱 없어진다. '진짜 호소 문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내담자 스스로 방향성을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온라인의 경우 더욱 그렇다. 단 회기에 끝나는 경우가 다수이고 철저한 익명, 그리고 텍스트와 목소리 외에 표정을 볼 수 없기에 오히려, 내담자가 말하는 호소문제를 해결하고 교정하려들면 더욱 어려워진다고 판단을 했다. 그래서 더욱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그렇게 나는 사례에 상관없이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죄송스럽게도 제가 문제를 해결해 드린다고 약속을 못 드려요. 하지만 정말 최대한 편하게 이야기하실 수 있게 도움드릴게요'


'자신의 이야기를 웹 공간에서까지 상담하고 싶어 졌다는 것은 평소에 얼마나 답답하셨다는 거겠어요. 제가 oo님이 누군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그게 익명의 장점이고요, 매주 방송을 하니 언제든 와서 편히 이야기하세요.'


그리고 그렇게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이 본인의 이야기를 편하게 털어놓게 되면 공통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


'oo님이 힘들지 않다는 게 아니에요. 오해하지 마시고 들어주세요. 그냥 사람들의 뇌가 힘든 일을 중심으로 살아가게 만들어져 있어요. 그래서 힘든 것이 oo님의 탓이 아니라 그냥, 자동으로 그렇게 되는 게 클 거예요. 그런데, 저는 사람들의 그 삶이 억울한 것 같아요. 힘든 일 때문에 좋은 일들은 잊고 살잖아요. 힘든 일이 없어져야만 행복해지는 건 아니에요. 우리 마음속에 힘든 일과 행복한 일은 공존하고 있어요. oo님이 힘든 일을 없애는 것보다, 행복한 일을 생각하고, 잘한 일을 칭찬했으면 좋겠어요. 이미 잘하고 계시는 것들이 많은데 그것들을 잊고 살 필요는 없잖아요.'


물론, 자신이 구체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것을 해결하지 못함을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개운함을 표현하고, 스스로 방향성을 잡아 감사함을 전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오랜만에 방송에 복귀하고 두 번째 방송에서 감사함과 함께 자신의 소식을 전해온 사람들이 여렀있었다. 그리고 그날 방송 이후 나는, 방송 관련 글을 '진짜' 남겨야겠다는 갑작스러운 다짐을 하게 되었다. 아래는 그날 방송 중 일부를 간략히 적은 내용이다.


임신한 와이프기 조기진통으로 입원한 2월부터 휴방을 했었다. 다행히 와이프는 건강을 찾았고, 아이고 건강히 태어났다. 육아에 집중을 하다가 아이가 6개월 정도 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그렇게 방송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방송을 하던 도중 한 청취자가 채팅을 남겼다.


'혹시 예전에 방송하셨던 분 아닌가요?'


나는 평소에 자주 듣는 이야기이기에, 예전부터 방송을 했음을 밝혔고 방송을 이어나갔다. 그러자 그 청취자가 이렇게 글을 남겼다(정확한 워딩은 아니다).


'2017년에 방송에서 상담을 했었습니다. 그때 이야기 나누고 잘 극복해서 지금 너무 잘 살고 있습니다. 도움 주신 은인들을 찾고 있는데 이렇게 찾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흠칫 놀랐다. 사연을 들어보니, 과거 투자사기를 당해 억대금액 손실을 봤어서 괴로울 때 방송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었고, 그때 힘을 얻으셔서 조언대로 오션폴리텍에 바로 입학했고 현재 항해사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출산을 앞두고 있으며, 와이프 명의로 사업체도 운영 중이라고 한다. 그렇게 삶의 여유가 생겨 자신이 힘들 때 도움 주신 분들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농담조로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다.


'그때 차거님을 방송에서 못 뵈었으면 배를 타고 있는 게 아니라 한강에 갔을 거예요'


그리고 그날 갑자기 2020년경 이야기를 나눴던 청취자도 들어왔다. 군인시절 방송에서 처음상담을 했었고, 전역 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중에 카페를 차리는 게 목표다 라는 소식을 전해줬던 청취자였다. 그 청취자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군인이었는데, 지금은 카페 사장이 되었습니다. 대전에 차렸는데 손님들에게 디저트가 성심당보다 맛있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내일 준비를 위해 자러 갑니다! 종종 소식 전해드릴게요'


그리고 같은 날 또 한 명의 예전 청취자가 들어왔다.


'와~~ 대박 저 오늘 나이트 근무라 지금 교대 전 휴식시간인데 방송을 켜시다니!'


대학교1학년 시절부터 방송에 들어왔던 청취자였고. 자살자해시도 등으로 약물치료 및 병원입원을 자주 하고, 상담에 대한 거부감이 많은 친구였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우리 방송에 자주와 줬고, 자신의 상황들을 종종 전해줬다. 매번 좋은 소식이 아니라 오히려 안 좋은 소식도 이야기해 줘서 오히려 다행스럽고 기특(?)하게 생각한 친구였다. 그랬던 친구가, 내가 휴방하던 시기 잘 졸업해서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게시판을 통해 전해 줬었고, 방송에 들어와 자신의 소식을 구체적으로 전해줬던 날이었다.

그리고 내가 조금 더 안심(?)할 수 있는 말을 남긴 체 교대근무를 하려면 자러 가야 한다면서 방송을 나갔다.


'최근에도 약을 먹긴 했는데! 예전과 같은 문제라기보다는 화상병원이고 응급실이다 보니 돌아가시는 분들을 자주 뵙다 보니 그것 때문에 힘들어서 그랬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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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세 분의 청취자에게 특별한 조언을 해준 것이 없다. 그저 편하게 이야기를 하실 수 있게 노력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저들의 장점이 조금 더 드러나게 지지해 줬을 뿐이다.


내 상담 방식과 삶에 대한 가치관은 세상에서(특히 시장에서) 환영받는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내 방식이 정답은 아닐지라도 누구에게나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다른 이들의 시선보다 나 스스로 기준점을 세우고 살아가는 삶을 살기에 타인의 평가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솔직히 위 세 분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내 가치관을 지켜가는데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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