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경제상식] 달러는 어떻게 기축통화가 되었을까

Feat. 금본위제

by 잡생각 전문가

바쁜 사람들을 위한 요약

1. 옛날 국가 간 무역에는 금을 사용했으며, 금은 무겁고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었음

2. 이를 위해 금 교환증이 탄생했고, 은행은 금 보유량만큼 화폐를 찍어내기 시작 (금본위제=금 교환권)

3. 당시 잘 나가던 영국이 금 본위제를 처음 시행하며, 파운드화가 기축통화 역할 수행

4.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개박살나고, 전쟁으로 부유해진 미국이 1944년 각국 정상들과 브레튼 우드 체제(금 1oz=$35)를 합의하며 달러가 기축통화가 됨

5. 미국이 1965년 베트남 전쟁으로 돈을 너무 많이 날려먹었고, 보유한 양의 금 보다 화폐를 더 많이 찍어대며 무리함 (기축통화 입지 위태)

6.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브레튼 우즈 체제 폐지하며 아몰라 시행 (닉슨 쇼크)

7. 이미 미국의 영향력이 막강하고, 전 세계에 달러가 퍼질 대로 퍼져서 각국이 달러를 계속 기축통화로 사용하는데 합의.

8. 1973년 오일쇼크 때, 미국이 석유결제 대금을 달러로만 가능하게 하면서 달러의 기축통화 입지 강화

(금 교환권-> 석유 교환권)

9. 오늘날까지 달러는 환율에 영향받지 않고 돈을 마음대로 찍어댈 수 있는 기축통화가 됨



본문


금이 세계 경제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는지 알고 있는가. 사실 몇백 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 간 거래 및 무역에 금을 썼다. 각국의 화폐 가치를 비교하기가 어려웠던 당시에는 금이라는 공통 재화를 사용해 왔다.


하지만 금을 활용한 거래는 너무 무거워 효율성이 낮았으며, 선박이 난파되거나 하는 분실의 위험성이 높았다. 이러한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금 보관증이고, 이것이 금본위제 및 화폐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은행은 금을 맡긴 만큼 보관증을 주었다. 금을 일정량의 화폐와 맞바꿀 수 있는 일종의 금 교환권이다. 상인들은 금 대신 금 보관증으로 편리하게 거래를 시작하게 되었고, 은행은 금을 보유한 만큼 화폐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당시 국가적으로 영향력이 막강했고 부유했던 영국이 1918년 처음으로 금 본위제를 시행했으며, 영국의 파운드화가 첫 기축통화의 지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1, 2차 세계 대전으로 경제가 개박살나고 막대한 양의 금을 소비한 영국은 충분한 양의 파운드화를 발행할 수 없었고, 거기에 1929년 발생한 세계대공황으로 위축된 영구의 파운드화는 기축통화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금 생산량이 화폐 생산량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박살 난 영국의 자리를 대체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각종 자원이 풍부했던 미국은 세계대전 동안 막대한 양의 전쟁물자를 공급하며 부를 축적했고, 1849년에 일어난 골드러시로 이미 막대한 양의 금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849년부터 1860년 사이에 채굴한 금의 양이 150년 동안 전 세계에서 채굴한 금보다 더 많은 양이었다고 한다.) 막대한 영향력을 자랑하던 유럽은 세계대전으로 이미 박살 나있었으니, 미국에 자연스럽게 기회가 넘어가게 된다.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 우즈에서 44개국의 대표가 모이게 된다. 달러를 새로운 기축통화로 합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단, 금 보유량만큼 달러를 찍어내야 한다는 금본위제의 핵심을 유지하는 조건이었다. 전 세계가 금 1oz = $35라는 브레튼 우즈 체제에 동의한 것이다. $35달러를 들고면 금 1oz를 내놓아야 했다. 달러가 곧 금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든 나라에서 쓰일 수 있는 기축 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달러 양 유통량이 많아야 했다. 막대한 통화량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은 당시 전쟁으로 박살 난 유럽을 재건하는 마셜 플랜을 통해 막대한 양의 달러를 유럽게 제공하였다. 이렇게 달러가 유럽 및 전 세계에 널리 퍼진 것이다.


문제가 생겼다. 1960년부터 1975년까지 벌어진 미국-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이제는 미국의 경제가 박살 난 것이다. 막대한 양의 달러를 베트남 전쟁에 쓰다 보니, 미국이 보유한 금의 양보다 더 많은 달러를 찍어낸 것이다. 실제 당시 유럽에서는 미국에 금을 바꿔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은 뻔뻔했고, 1971년 8월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돌연 금본위제를 폐지했다. $35를 들고 와도 금 1oz를 돌려주지 않는, 이른바 닉슨 쇼크가 발생했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력과 달려 통화는 이미 전 세계에 퍼져있었고, 솔직히 달러 외에 다른 대안도 없었다. 1971년 12월 미국은 선진 10개국 재무장관을 불러들여, 금이 없어도 달러를 계속 기축통화로 사용하는 '스미스소니언 협정'을 체결해 버린다. 역시 미국은 깡패가 맞는 것 같다. 이렇게 달러는 기축통화가 되었다.


달러의 기축통화 입지를 단단하게 해준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1973년 오일쇼크다. 석유가격이 오르며 모든 물가가 올랐고, 전 세계 초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며 세계는 경제 불황에 접어들었다. 이에 1975년 미국은 국무장관을 파견해 사우디 아라비아와 한 가지 합의를 하게 된다. 바로 석유대금 결제를 오직 달러로만 하는 것. 미디어에서 보던 정의로운 자유민주주의 미국과 대조대는 참 야비한 모습이다. 이를 위해 사우디에는 OPEC 석유가격 결정권을 주고 사우디 왕가의 안전을 미국이 보장하게 된다. 금 교환증에서 이제 석유 교환권이 되어버린 샘이다. 이렇게 미국은 지금까지 강력한 기축통화의 입지를 가지게 되었다.


결국은 미국이 짱이고 미국은 망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내가 미국주식만 투자하는 이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냥 우울한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