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진짜 말실수로 통일함
바쁜 사람들을 위한 요약
1. 서독 동독 출범 이후 동독은 사회주의 체계 안에서 경제가 파탄 나고 나라가 망해가고 있었다.
2. 당시 동독에는 여행자유제한 조치가 있었고, 1989년 동독 정치 대변인은 여행자유제한 조치를 완화한다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3. 전날 휴가 복귀해서 정책내용을 잘 숙지하지 못한 대변인은 "동독 국민 누구든 베를린 장벽을 오갈 수 있게 결정을 내렸다. 지금 당장"이라고 말실수를 했다.
4. 이를 이탈리아 한 방송사에서 "The Berlin wall has collapsed"라는 헤드라인으로 보도했고, 전 세계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보도했다.
5. 방송 직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장벽에 모여 국경 개방을 요청했고, 경비대는 문을 열어줬다.
6. 이를 되돌리기도 애매했고, 말실수 한 김에 독일은 이듬해인 1990년 10월 공식적인 통일을 발표했다.
본문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은 4등분 되어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통치를 받게 된다. 소련 (동) / 프랑스 (서) / 미국 (남) / 영국 (북). 그리고 현 독일의 수도 베를린 또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나뉘게 된다. 비군사화/탈나치화를 거치며 사실상 독일은 주권을 잃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심화되는 미-러 냉전 체계에서 미/영/프는 소련 견제를 위해 통치 구역을 통합하며 1949년 서독을 출범한다. 서독은 자유진형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경제 성장과 주권회복을 시작했다.
동독은 소련의 통치 아래 서독과 관계된 서방 국과 와의 교류를 끊기 시작했다. 이에 서독 또한 1955년 동독과 관계된 모든 나라와 수교를 맺지 않겠다는 할슈타인 독트린 선언을 하게 된다. 동독은 1961년에 베를린 장벽을 설치하며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넘어가는 시민을 막기 시작하며 동독-서독 관계는 악화된다.
그러나, 동독의 베를린 장벽 건설은 오히려 동독을 국제관계에서 고립시키는 부정적 경제 효과를 야기했고, 서독의 할슈타인 선언 또한 마찬가지였다.
1969년 서독은 할슈타인 정책을 철회하며 동독과의 관계 개선에 들어갔다. 1970년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완화되는 시기 "데탕트"(프랑스 어로 긴장 완화)에 맞물리면서, 서독과 동독의 관계는 개선되기 시작했고 경제도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독은 사회주의로 인한 끊임없는 이탈률과 낮은 출산율, 그리고 사회주의에 입각한 산업구조로 인해 경제 분야에 있어 취약점을 보여왔다. 또한 소련의 경제 발전 계획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동독의 경제는 계속 악화되며 서독에 비해 팍팍한 삶을 겪게 되었다. 서독이 동독의 인구규모 4배, 경제 규모 6배 정도였다. 동독은 경제 파탄과 선거 조작 이슈, 그리고 여행 자유의 제한 등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러다 1989년 11월 재밌는 사건이 발생한다. 동독의 중앙위원회 서기장 샤보브스키가 정부 대변인으로 나와 여행 자유화 조치에 대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여행제한 조치가 완화될 것이라는 새 정책 발표를 위한 전국 생중계 기자회견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샤보브스키가 기자회견 전날 막 휴가 복귀한 상태라 정책을 잘 숙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래는 기자회견 당시의 내용이고, 당시 기자에 따르면 샤보브스키는 뒤에서 건네주는 쪽지를 전달받으며 답변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자회견======
샤보브스키: 오늘 우리는 동독 국민은 누구든 자유롭게 베를린 장벽을 오갈 수 있도록 결정을 내렸다
기자: 언제부터요?
샤보브스키: 지금 당장..?
기자: 샤보프스키, 제가 이해한 게 맞습니까?. 독일 국민은 마음대로 검문소를 지나다닐 수 있다고요? 그럼 국민들이 장벽을 넘어갈 수도 있을까요?
샤보브스키: It is possilbe for them to go through the border (국경을 넘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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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이탈리아 신문사에 긴급뉴스로 보도되었고 헤드라인은 "The Berlin wall has collapsed"로 보도되었다. 그리고 뒤이어 로이터 및 뉴욕타임즈에서 앞다투어 이 소식을 보도했다. 여행제한 완화 소식이 국경 개방이 되고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다는 오보로 전 세계에 퍼진 것이다.
TV보도 후 수천 명의 베를린 사람들이 장벽 앞으로 모여 경비대에 문을 열라고 외쳤다. 동독 경찰들은 여전히 문을 막고 있었지만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고, 오후 11시 30분쯤 경계병들도 "외국 여행이 자유화됐다"는 방송을 보고 국경을 개방하게 된다. 당시 사람들은 직접 망치를 들고 와 장벽을 부쉈다고 한다.
한 사람의 말실수로 인해 그렇게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리고 이듬해 1990년 10월 독일은 공식적으로 통일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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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12월 31일 베를린 장벽에서는 파티가 열렸고 당시 울려 퍼진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I've been looking for freedom
I've been looking so long
I've been looking for freedom
Still the search goe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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