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원글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랫화잍 Dec 30. 2022

소원글방

첫 모임을 떠올리며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온 섬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일, 섬을 터전으로 먹고산다는 건 그렇게 섬의 모든 것에 허락을 구해야 하는 것이었다.(p.184)


<복자에게>, 김금희, 문학동네, 2020


ㅡㅡ


매주 화요일, 그들은 같은 공간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씁니다. 각자의 결심은 비장합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두 글로 옮길 수는 없어도 ‘나’라는 우주에 대해서만큼은 힘껏 써낼 수 있노라 자신해 봅니다. 쭈뼛거리며 썼던 모임의 첫 글은 비록 팔 할이 타의에 의해서였지만 글을 읽고 환대받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기억은 영상처럼 연속성을 지니는 게 아니라서 의식의 흐름대로 종이 위에 글을 옮기다 보면 꼭 필요한 서술의 축약과 비약, 그리 중요하지 않은 첨언과 부언으로 혼돈의 도가니탕이 되기 쉽습니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건 ‘무엇을 쓸까’보다 ‘무엇을 뺄까’ 혹은 ‘무엇을 빠뜨렸나’의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상대방의 문장 사이 여백에는 아직 내뱉지 못한 많은 단어가 숨어 있습니다. 그들의 행간을 읽어내듯, 나의 마침표와 접속사 틈새에 미처 옮기지 못한 애틋함과 서러움도 돌아봐주세요. 글쓰기란 구멍가게에서 뽑기를 고르듯 공을 들여 단어와 표현을 곡진하게 가다듬는 일입니다. 글은 상대에게 닿으려 허락을 구하는 과정과 같기 때문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