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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Jan 10. 2023

좋아서 하는 일

그렇게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카페를 운영해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죠. 에티오피아에서 유학을 했어요. 철이 없었죠. 커피가 좋아서 유학을 했다는 자체가..”


문득 그가 생각났다. 단단한 어깨를 가진 그 남자는 웃상(웃는 인상)이다. 우수에 찬 그의 한쪽 눈에는 언제나 반곱슬 앞머리가 드리워졌다. 그는 자신을 ‘카페 사장 최준’이라 소개한다. 뜬금없이 카페사장 최준을 인용한 것은 그의 자기소개 멘트 때문이다. 커피가 좋아서 유학을 다녀온 그는 철이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린다. ‘좋다’는 감정은 때로 ‘철이 없다’는 상태로 설명된다. 철들지 않고, 간섭에 휘둘리지 않는 내 방식의 쿨(cool)함은 멋스러운 삶처럼 다가온다. 그러다 문득 ‘철들었다 ‘고 판단되는 순간은 후회가 꿈을 앞서면서부터다. 후회는 지그시 누르는 모양새로 삶에 하나씩 무게추를 얹어준다.


 글방모임 3회 차, 글벗들과 머리를 맞대고 15분 즉석 글쓰기를 했다. 대상을 정하고, 편지 도입부를 쓰라는 주제다. ‘사랑하는 ‘이라는 수식어보다 ‘좋다’는 말 앞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흘러넘친다. 또 당신을 소개하라는 말보다 “무엇을 좋아하나요? “라는 질문이 자기 이야기를 줄줄이 끌어낸다. ‘서로’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 한 ‘좋다’는 말은 주관적이고 일방적이다. 욕망의 순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욕망 앞에 솔직해지려니 두려운 마음부터 앞설 때도 있다.


 우리는 타인의 ‘좋다’를 들으며 감각적으로 상대를 알아간다. 나와 다른 세계가 우호와 인정의 공감대로 바뀌는 순간이다. ‘좋다’는 감정에 꼭 기준이나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비록 그 끝이 ’ 상실’이라 해도 애끓던 기억은 흐릿해지게 마련이라 언제든 좋아하는 마음에 다시 시동을 걸 수 있다. 시작의 설렘은 새롭게 시도하는 사람만 누리는 특권이니까.


 불가에서는 전생의 억만 겁의 인연이 쌓여야 현생의 단 한번, 옷깃의 스침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1겁은 선녀의 얇은 옷으로 스쳐 바위가 닳아 없어질 시간을 의미한다. 더불어 사방 40리 성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백 년에 한 번 새가 날아와 겨자씨 한 알을 물고 성 안의 겨자씨가 다 없어질 때까지 하늘에 오고가는 시간을 의미한다. 억만 겁의 시간을 기다린 사람들이 지금 이 자리, 머리를 맞대고 있다. 좋아서. 새로운 시작의 설렘을 가득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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