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원글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랫화잍 Jan 05. 2023

적당히, 멋스럽기.

아무리 달필이라 해도 말이야, 아무도 읽지 못하는 글씨는 너무 멋을 부려서 되레 촌스러워지는 것과 마찬가지야.(p.26)


<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권남희 옮김, 위즈덤 하우스


ㅡㅡㅡ


한 치 앞을 먼저 내다볼 수는 없어요. 우리 눈은 현재만 바라볼 수 있지요. 그런데 방금 보았던 것을 글로 옮기면 어느새 과거가 되어버립니다. 당장 보는 것을 표현할 새도 없이 시간은 흘러가요. 미루고 말고 할 틈도, 앞뒤를 잴 수도 없어요. 글은 흘러간 시간을 지면 위에 붙잡아둔 흔적이에요. 남기고 싶은 순간에 대한 상황 설명, 단서를 함께 담아서요.


하지만 때로 너무 많은 단서는 생각을 방해해요. 시간을 마이크로 단위로 쪼개어 상황을 서술할 수는 없으니까요. 문장과 문장 사이 여백은 내 상상, 사유로 채워가야 합니다. 남의 글을 읽을 때는 늘 수식어나 관용적 표현, 미사여구를 걸러내고 싶지만, 이상하게 내 글을 쓸 때면 자꾸 설명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야  독자가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봐요.


그런 애씀은 큰맘 먹고 파마를 한 머리칼에서 풍기는 파마약 냄새 같아요. 언제든, 누구든 파마를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짐작가능한 냄새, 특유의 그 냄새요. 비싼 약일수록 역한 냄새가 나지 않더군요. 냄새가 역할수록 가성비와 멋 사이에서 갈등한 흔적 같아요. 큰 맘먹고 세팅한 첫 헤어스타일은 되레 촌스러운 건 아닐까 약냄새가 지독하지 않을까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가다듬게 만들어요. 어색하기만 해서 하루종일 머리를 들여다보느라 여념 없죠.


일주일 정도면 파마약 냄새도 사라져요.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러워지지요. 내 스타일에 자신감이 붙는 것도 그즈음입니다. 머리를 말리는 거울 속 내가 그럴듯해 보이고, 적당히 풀린 펌은 마치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러니 ’적당히’를 가늠하려면 ‘지나침‘과 ’ 부족함‘을 모두 경험해볼 일이에요. 세상 많은 일 중 내 머리 정도는 맘대로 할 수 있어야지요. 머릿결은 좀 상하더라도 머리칼은 계속 자랄 테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서 하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