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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Mar 08. 2023

울 것 같은 마음일랑 그러쥐고.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대한 확신

요즘은 아이를 보며 시간을 가늠해. 한창 기저귀 갈고, 젖물리던 날엔 저리 해사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순간이 올 줄 몰랐지 뭐야. 껴안고, 손잡고, 곱게 머리 빗겨주었던 저 날 아침도 그랬어. 요즘? 서로 껴안는 횟수도 꽤 줄었지. 제 머리 빗겨달라며 알록달록 구슬 달린 방울을 내 눈앞에 가져와 흔들지도 않아. 아마 사진 속 그날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건 사진만 그윽하게 바라볼 ‘오늘’을 예감해서가 아닐까. 얘가 어딜 가겠어. 잘 알면서도 상념에 빠지는 건 아이의 앞날에 내 존재 따위 남지 않을 거라는 서운한 마음 때문이겠지.


소설가 김연수는 <이토록 평범한 미래>(문학동네, 2023)에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이르러 가장 좋은 미래“, 즉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느냐 묻지. 꽤나 진지했던 문제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해프닝이 되어버리잖아. 옛날에 나는 가수 김윤아의 정규 2집에 수록된 노래 제목이기도 한 이 구절을 싸이월드의 제목으로, 일기장의 한 페이지에 적어두며 스스로를 위로했어. 밑도 끝도 없던 지금의 고민이 미래의 나에게는 큰일이 아닐 수도 있을 거라는 가능성으로 다가왔거든.

 

김연수의 단편 속에는 또 하나의 소설이 있어. 거기엔 동반 자살을 했다가 인생을 한번 더 사는 연인이 나와. 그들은 시간을 거슬러 죽음 전에 일어난 일들을 되짚어가지. 미래에서 과거로 진행되는 복기랄까. 첫 만남을 향해 시간을 거꾸로 살아가며 두 사람은 처음 만났던 설렘과 기쁨을 다시 경험해. 그들은 다음 또 다음에 올 행복을 예측하며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기뻤대. 첫 만남에 이르는 순간에,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을 바로 그때, 둘은 한 번만 더 시간이 원래대로 흐르기를 바랐다나 봐. 다시 살고 싶어서.


6년 전의 나는 아이와 가장 멀리 떨어지려는 순간을 사진에 담으며 커다란 학교가방에 보조가방까지 메고 씩씩하게 나서는 평범한 오늘을 상상했을지도 몰라. 혹 십수 년이 더 지나 아이를 첫 등원시키는 딸 곁에서 내 딸의 딸에게 손 흔드는 평범한 미래를 꿈꾸진 않았을까. 만약 내게 다시 한번 저 순간이 주어지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마음을 그러쥐고 더욱 해사하게 웃으려 해.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건 거창한 행복의 보장이 아니라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있을 거라는 확신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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