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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Mar 21. 2023

언어의 세계를 넘나들기

삶이 되는 언어란 말야.

‘언어 공부’란 무엇일까. 타인에게 나를 설명하는 언어를 갖는 것, 더 나아가 삶을 해석하고 세상을 읽을 수 있는 언어 범위를 늘리려는 노력이 아닐까.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오류를 범하기 쉽다. 좋은 도구를 획득하는 것이 보다 편한 공부로 향하는 지름길임에는 틀림없다. 허나 공부로 향하는 궁극의 경지에 ‘편함’에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세상 어떤 언어도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거나 풍성하게 드러낼 수 없다.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함께 쓰는 판을 까는 게 내 생업인 마당에 이 무슨 망발인가. 삶이 자체로 빛나는 이유는 그 일회성 때문일 것이다.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버리는 순간을 붙들기 위해 사람들은 사진으로, 그림으로, 글로 ‘순간의 지점’을 남기는 게 아닐까. 우리는 이야기 사이에 놓인 점을 이어 행간의 여백을 유추할 뿐이다.


응용언어학자이자 <언어가 삶이 될 때>의 저자 김미소는 이른 나이에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현재 저자는 일본 다마가와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30대 교수다. 조금 다르게 그를 소개할 수도 있다. 저자는 아버지의 이혼 후 베트남 새엄마와 함께 살았고 대안학교를 다니며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다문화가정’과 ‘학교밖 청소년’은 다양한 언어문화권을 넘나드는 저자를 설명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저자의 삶의 순간을 특정 개념이나 용어로 짚어내는 건 그의 인생을 납작하게 눌러 들춰보는 것에 불과하다.


이미 주도권을 잡은 언어는 구체적인 삶을 축소하고, 삶이 놓인 자리를 샅샅이 분해한다. 결국 새로운 세계를 보려면 기존의 언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언어의 완벽함 속에는 어떤 성장이나 발견도 없다고 적는다. 언어에 갇히지 않고, 특정한 누군가를 겨누지 않으며 함께 살아보려는 의지의 표명은 안전하고 편하게 정답을 찾는 행위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언어에 대한 책들이 쏟아지는 요즘이다.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이라영의 <말을 부수는 말>(한겨레출판, 2022), 언어학의 기본 원리를 바탕으로 현대의 언어창조, 우리 시대의 언어를 묻는 최혜원의 <휴랭머랭>(의미와 재미, 2022), 내 감정을 직시하고 적확한 언어로 표현하라는 유선경의 <감정어휘>(앤의 서재, 2022)는 바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초점을 맞춘다. 책들이 공통으로 다루는 ‘언어활동’이란 단순히 수용하고 해석하는 행위 이상의 활동을 의미한다. 확증편향의 시대, 소통의 부재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하이데거는 ‘언어란 존재의 집’이라 했다. 진정 글을 읽을 줄 아는 이, 나와 다른 존재를 만날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늘 봐왔고, 보고 싶었고,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을 터다. 언어로 무엇을 쌓아 올릴지는 각자의 자유다. 브런치 독토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여러 언어를 직조하는 즐거움 중 하나다. 보다 많은 이들이 사소한 자기만의 언어로 문장을 만들고, 이를 엮어 문단으로 직조하는 기쁨을 누렸으면 한다. 그 시작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2023. 3. 20 <3월 브런치 독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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