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죽었다. 사망 선고가 내려지던 4월 11일 16시 30분. 나는 아빠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병원에 도착한 지 24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짧은 시간 만에 온기를 잃어버린 아빠의 손은, 이제 더는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했다.
혼이 떠나버린 육체는 아빠의 그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7시간 동안 진행된 수술 때문에 몸은 부어오를 때로 부어올랐다. 오죽하면 입관할 때 장의사들이 “아버님이 체격이 좋으시네요”라고 말했을까. 어쩌면 가는 길에서라도 그 마른 몸 대신, 조금이라도 건장한 체격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아빠에 대한 혐오 때문일까. 사실 나는 엄마처럼 서럽게도, 형처럼 삭히면서 울지도 않았다. 오히려 동생이 그나마 나랑 비슷했는데, 중학생에 불과한 동생은 의연하게 울음을 이겨내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하면 나는 담담했다. 언젠가는 올 줄 알았던 날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언젠가 마주할 어느 날이 그리 슬프지 않을 거라 늘 생각했다.
이름 모를 기계 속 아빠의 심장 박동이 파동에서 평행선으로 변한 순간,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 남아있는 가족들도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야 하는 의사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담당 간호사 역시 슬픔에 잠긴 표정이었다. 숱한 죽음을 봐왔을 그들의 얼굴은 진심이었을까. 가면이었을까. 그들은 직업의식과는 별개로, 누군가 아파야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나도 가족의 일원으로서 슬퍼하기로 했다. 눈물이 나서 다행였다.
현실의 슬픔은 아침 이슬처럼 생겨났다. 내 눈물은 더는 원망할 사람이 없다는 것에서 비롯됐다. 어쩌면 아빠가 내 비루한 인생의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내 현재가, 내 대학이, 내 능력은 다 아빠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라고. 내 사춘기는 왜 아빠가 죽기 불과 몇 주 전에 왔을까. 더 빨리 돌아가셨다면 나도 오열했을 텐데.
떠난 이는 남는 사람에게 그리움만 쌓이게 했다. 우리는 너무도 빨리 현실을 만났다. 시신을 옮길 장례식장을 알아봐야 했고, 퇴원 절차를 위해 행정적 서류를 준비해야 했다. 그중에서 병원비는 단연 압권이었다. 이 모든 것을 남기고 간 아빠가 부러웠다. 사망 선고는 세상 모든 연으로부터 자유를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