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동안 책을 그냥 읽었다.

생각하며 읽기, 비판적 읽기, 반성적 읽기

by 김이난달

돌아보면 어려서부터 참 많은 책을 읽었다. 나이 차가 많이 난 형 덕분에 만화책을 많이 봤다. 만화책은 내게 읽는 재미를 줬다. 집에서 텔레비전은 부모님은 전유물이었다. 컴퓨터도 마땅치 않았을 때는 책만이 내 심심풀이 상대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가리지 않고 읽었다. 삼국지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 판타지 소설, 심지어 고등학교 때는 꽤 어려운 역사 관련 책들도 봤다. 다 재밌어서 봤고 그 책들로부터 나는 이뤄졌다.


내 책 읽기는 생각 훔치기였다. 작가의 생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종이 속 활자가 모두 진리 같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시간의 허들을 넘어 지금까지 이어졌다. 요즘 독서는 주로 퇴근길 버스 안에서 하는데 읽기 습관은 같았다.


그러던 오늘 문득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읽는 책은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다. 작년 친한 형이 읽는 것을 보고 구매해 한 번 읽었고, 두 번째로 읽는 중이다. 역시 내용이 좋다는 생각이 들던 중 유독 안 읽히는 부문을 발견했다.


책 중후반에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 그 둘의 관계 등을 서술한 곳이 있다. ‘어떤 부모도 자신에게 없는 것을 자식에게 줄 수 없다’라는 문장이 계속 눈에 밟혔다. 얼핏 보면 당연한 말이다. 작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 다음 문장은 ‘자녀에 대한 사랑과 훌륭한 삶에 대한 자세를 가진 부모만이 그것을 자녀에게 나눠 줄 수 있다’로 이어진다.


그런데도 나는 묻고 싶다. 그렇지 않은 부모 아래 자식이 올바르게 자라는 일도 있다. 자식이 부모가 무엇이 없는지 알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살아갈 수도 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지만 거울은 관점에 따라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지 않는다. 때론 부모의 결핍이 자식에게 긍정적인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주제에 내가 베베 꼬이는지도 모른다. 충분히 사랑받았다고 생각하지 못해 이러는 것일 수도 있다. 비판적으로 읽기라는 가면 아래 어두운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좋은 말로는 내 주관이지만, 고집이 세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좋지만, 반성 없는 비판은 지양해야겠다. 비판적 읽기의 이면에는 반성적 읽기가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진정한 작가와 독자의 대화는 이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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