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 없는 경기도민이 집에 갈 때 깨달은 것들

의식의 흐름

by 김이난달

미리 밝히자면, 이 글을 쓰기 전 완성된 한 편의 글이 날아갔다. 이 또한 내 업보라고 생각한다. 난 작은 이어폰을 소중히 하지 않았다. 브런치는 자동 저장 기능을 만들어달라.

오늘 이어폰을 회사에 두고 퇴근했다. 이어폰이 주머니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지하철 6 정거장이 지난 뒤였다. 약속도 있었고 그냥 가자고 결정했다. 돌아보니 앞으로 4일 연휴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약속들도 있었고 내겐 이제 블루투스 이어폰 밖에 없다.

서울 어디를 가든 1시간 정도는 족히 잡아야 할 경기도민에게 이어폰은 정말 소중한 존재다. 핸드폰이 뇌라면 이어폰은 귀정도 될 거다. 동영상과 음악을 못 듣는 제약은 너무 크다.

이쯤 되면 인간의 과학을 탓해본다. 인류의 편의성은 때론 자연 섭리에게 독으로 작용한다. 선이 없는 편안함은 블루투스 이어폰 구입을 유도했다. 적자생존이라지만 충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선 이어폰이 필요하다. 애초에 선 이어폰이면 주머니에서 꺼내서 충전할 필요도 없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엊그제도 충전시킨 이어폰을 두고 온 나다. 꼭 챙기자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까먹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과도한 도파민의 분비로 대뇌는 '퇴근'이라는 행위만 생각하나 보다. 모니터 아래 포스트잇으로 써붙여야 할 판이다. 머릿속에 맴도는 건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글로 옮겨도 그걸 보이게 해야 한다.

이어폰은 세상과 나의 세계를 분리시켜준다. 요즘 어디를 가도 다들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다닌다. 거리와 지하철, 버스 심지어는 일할 때 쓰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그 목적이 필요성이든 편리성이든 패션이든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만의 세계를 지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충동적으로 하나 살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접었다. '패닉 바이'는 소비 습관에 좋지 않다. 또한 나는 지금 넉넉한 상황도 아니다. 어젯밤도 쇼핑을 하다가 겨우 멈췄다. 4일조차 참지 못하면 난 뭘 할 수 있을까. 이 고민은 나아가 올해의 최대 과제인, 어떻게 하면 수입을 더 늘릴 수 있을까 와 연결된다.

작은 물건이 일으킨 파장은 별의별 생각을 들게 한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세상의 소리를 듣게 해 준다. 친구의 대화, 버스의 엔진 소리, 바람 소리까지. 사색은 어떠한가. 동영상과 음악에 갇혀 생각과 감정의 수용자였던 나는,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다신 이어폰을 두고 오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