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도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를 가장 좋아한다. 이외 오버워치도 몇 년 전에 많이 플레이했다. 디아블로 2,3와 스타 2, 하스스톤 심지어 히오스도 몇 번 해봤다. 워크래프트의 경우 ‘파오캐’나 ‘원랜디’로 한 때 플레이해 본 경험이 있다. 그래도 워크래프트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최근 리포지드 논란에 대해 잘 몰랐다.
워크래프트 리포지드는 워크래프트의 리마스터로 알고 있었다. 이미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에서 만족감을 느꼈기에 뭐 괜찮겠지 싶었는데 이게 웬걸, 수많은 문제가 보였다. 업계 신입인 내가 봐도 이 정도이니, 게임 매니아나 오랫동안 종사하셨던 분들은 오죽했을까.
우선 게이머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2002년 워크래프트 3의 메타크리틱 유저 스코어는 9.1점으로 상당히 높았다. 2020년 현재는 무려 0.5점이다. 역대 최하위 기록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경우 퍼블리셔와 자사 마케팅팀에서 유저 동향을 매일 메일로 보내준다. 물론 QA인 나도 시간이 나면 직접 살피는 편이다. 블리자드 역시 알고 있을 거다.
텍스트 문제, ‘엘’을 ‘깐’으로
유저들이 종종 ‘깐포지드’라고 부르는 걸 봤다. 무슨 말인가 알아봤더니 게임 내 특정한 상황에서 ‘엘’ 자가 ‘깐’ 자로 노출되는 문제였다. 이뿐만 아니라 ‘깐’ 자가 ‘낭’ 자가 되기도 한다. 텍스트가 겹치는 문제도 발견됐다. 주요 인물 이름과 텍스트가 잘리는 문제도 보인다. 마치 일반인이 한글 패치를 임의로 만들어 게임에 적용한 듯한 모습이다. 덧붙여, 이미지가 체크무늬로 보이기도 한다. 포토샵 작업 혹은 웹툰을 보다 보면 나오는 그 무늬다. 빈 공간 혹은 있어야 할 이미지(파일 링크 오류)가 없어서 나는 오류다. 이 모든 오류는 증상은 단순해도 원인은 복잡할 수 있다.
게임 개발은 버그를 수정하는 과정
게임 개발은 버그를 수정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개발자들은 버그가 많으면 짜증이 난다. 기본적으로 일이 늘어난다. 단순한 증상에 단순한 해결법이 있는 경우면 다행이다. 그러나 때로는 버그를 수정하면 다른 버그가 생기는 상황이 발생한다.
한편, 개발자들은 버그가 없으면 불안해진다. 모든 게임 회사가 버그 없는 완벽한 개발사이기는 어렵다. 결국, 계속해서 버그를 발견하고 버그를 수정하는 게 중요하다. 이때 중요한 게 게임 내 QA팀의 역량이다.
QA (Quality Assurance)
QA는 ‘품질 보증’이라는 의미다. 본래 제조업에서 온 용어다. 제품을 만들 때 가장 마지막에서 불량품을 검수하는 역할을 한다. 제품의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것에서 큰 의미가 있다. 게임 개발의 가장 큰 리스크는 버그다.
게임 개발 내에서 QA는 기본적으로 테스트 케이스 (TC : Test Case)를 가지고 업무에 임한다. 기획팀의 기획서를 기반으로 확인할 목록을 미리 선정하고 정리한다. 이 테스트 케이스들이 업무를 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그 직업군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워크래프트 리포지드를 보고 있자면 ‘QA팀이 있기는 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상당히 충격적이다. 텍스트나 이미지 정도 버그라면 테스트 케이스에 없을 수가 없다. 원인은 불분명해도 발견을 못할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필자의 회사의 경우 내부 개발 과정에서 QA가 먼저 그물망을 쳐서 버그를 거른다. 이후 서비스되는 국가 담당 QA들이 업무에 나선다. 그 뒤엔 협력사인 퍼블리셔 QA들이 일한다. 수많은 필터를 통해 제품의 리스크를 줄인다.
이쯤 되면 QA 직무유기?
블리자드 1월 28일 공지에 보면 ‘캠페인 대화에서 비 라틴문자의 겹침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있다. 즉, 블리자드는 이 버그들을 알고 있었다. 아마 발매 직전에 발견해서 버그 수정이 어려운 상황이었을 거로 추측해본다. 이는 결국 QA팀이 이 문제를 발견해서 버그 리포트를 공유했단 소리다.
QA는 특성상 업무가 단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같은 테스트 케이스를 여러 번 봐야 하는 경우도 많다. QA들은 모두 감수하면서 일한다. 그러나 새로운 빌드 (Build, 게임 개발 과정에서 게임의 다양한 상위 버전. 상위 번호일수록 이전의 버그가 수정되어 있다.)의 전달 자체가 늦어지면 QA로서는 답이 없다. 테스트 케이스는 기본적으로 모두 봐야 하고, 필요하다면 수준 있는 피드백 (Qualitative Feedback)도 다른 부서에 제공해야 한다.
현재 워크래프트 리포지드 상황을 미뤄 짐작해보면, QA가 텍스트 관련 버그는 발견했지만 수정할 시간 자체가 부족할 정도로 시간에 쫓겼던 것 같다. 이미지 관련 버그는 아마 시간이 없어서 못 봤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QA 탓을 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개발 전반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버그뿐만이 아니다. 게임 내의 이펙트(스킬 연출 효과, FX)도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스킬 연출도 가히 부끄러운 수준이다. 게임 아트 쪽 담당이다. 원화 – 모델링 – 텍스처 – 애니메이션 – FX로 이어지는 아트 프로세스 중 일부다. 중요하면서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고급인력 역시 부족한 편이다.
사이클론 스킬의 경우 충격적이다. 엄청난 크기에 뒤의 전장 상황을 가린다. 어떤 캐릭터는 스킬 위에서 정상 모션을 취한다. 아군 유닛이 사이클론에서 내려오면 적군 색으로 변한다. 이 모든 과정은 유저가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 플로우 속에 포함된다. QA가 업무에 충실했다면 분명 발견했을 버그들이다.
한편, 시네마틱은 블리자드의 자랑거리였다. 이번 리포지드는 일리단과 아서스의 대결 장면이 유명했다. 다른 장면은 화질을 높였다면, 이 장면은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워크래프트는 스토리만 대강 아는 나도 저 두 인물이 주는 무게감을 알고 있다. 그 시네마틱 조차도 음악이 없는 장면도 있고 전체적인 움직임 자체가 부족해 보였다. 블리자드 정도 회사면 QA가 이 정도에 관해 피드백을 주지 않았을까?
이 게임은 총체적인 난국이다. 정말 오랜 기간에 걸쳐 블리자드를 좋아했다. 최근 몇 년간 구설수도 있고, 회사 인력에 대한 문제도 들었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 몰랐다. 게임의 퀄리티, 유저의 반응 등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은 블리자드에 있다. 부디 개선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