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릴 때부터 꿈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그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인 것처럼 축구기자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축구기자라는 목표를 가지게 되면서 내 삶은 한걸음 나아가기 시작했다.
라며 거창하게 글을 시작하고 싶지만 글쎄 <나도 작가다> 심사조건이 '솔직하며 편안하며'라는 문구가 들어간 걸 보고 이내 접었다. 이후 문장인 '독창적이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인가'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그냥 나는 솔직히 글을 써 내려가기로 했다. 어차피 <나도 작가다>의 선정은 '되고 안되고'고 확률은 반반일 뿐이다. 이렇게 된 김에 '시작'이라는 단어가 내 삶 안에서 어떻게 정의되고 있는지 돌아보기로 했다.
내 속 도서관에 '꿈'이라는 분야는 아마 맨 앞쪽에 비치될 거다. 그중 첫 권, 첫 장은 역사 선생님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시작한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쯤 전후로 생긴 꿈이었다. 담임선생님이 방을 돌아다니시면서 아이들과 되고 싶은 꿈(이라는 이름의 직업)을 이야기해보는 시간이었다. 역사가 좋다고 말하니 선생님은 '사학가'라는 멋진 직업을 알려주셨다. 그래서 나는 사학가가 되기로 했다. 초등학생의 시선에선 멋진 이름과 학자라는 직업이 낭만적으로만 보였다.
꿈은 때때로 거창한 포장지를 가지지만 그 시작은 단순할 때가 많다. 나는 역사가 좋았다. 불멸의 이순신 같은 사극이 좋았고 삼국지가 재밌었다. 역사와 관련된 걸 보고 있노라면 가슴 깊은 곳부터 뜨거워지는 무언가가 생겼다. 그때마다 나는 애국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군대에서는 좀 다른 구석도 있었지만. 어쨌든 지금 생각해보면 역사 전체보단 전쟁사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어느 정도였나면, 고등학생 시절 한참 역사에 빠졌을 때는 고구려와 당나라 사이 전쟁의 서사를 친구에게 점심시간 내내 설명할 수 있었다. 노트 빈 곳에 지도도 그리면서 성의 위치나 전투의 순서, 장수의 이름, 연도 등 막힘없이 써내려 갔다. 유독 다른 부분에 비해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들 자신 있게 떠들어 댈 수 있었다. 문화나 경제 부분은 역사 성적이 전성기를 달릴 때도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웠다. 하기사 역사는 항상 전쟁을 동반하기도 할뿐더러 전투에선 멋진 영웅들이 나온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즐비하다. 언제나 그곳에서 서있는 불상이나 석탑 이름을 외우는 것보다야 전생사가 조금 더 흥미로웠다.
초6 담임선생님의 입에서 사학가라는 단어가 나오고부터 내 장래희망 칸은 사학가라는 글자가 채웠다. 매해 새 학기에 들어서면 가정통신문 비슷한 곳에 장래희망을 적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고민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가장 꿈에 대해 걱정 없던 시기다. 나는 또래 친구들이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말의 뜻을 알기까지는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렇게 내 꿈을 쓰고 또 쓰던 시절, 어느 날 나는 형과 이 주제로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 형은 나보다 9살 많다. 내가 기껏 해봐야 중학생쯤으로 기억하니 형은 이미 20대 초반의 시기를 거의 다 보낸 뒤였다. 동생이 사학가가 되고 싶다는 말에 형이 한 첫 대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거 하면 굶어 죽어"
그리고는 역사는 이미 다 드러나 있는데 뭘 해서 먹고 사느냐 하는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지금 돌아봐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형은 형 나름의 철학이 있던 거고 동생의 앞날을 걱정했다. 어린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름 심도 깊게 고민했다. 나는 다른 꿈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이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걸로 봐서 나도 한결같은 사람인가 보다. 이 문제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꿈이라는 것은 직업과도 같을 수 있고 직업은 경제력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 선생님.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10대 땐 세상이 수많은 직업이 있다는 걸 몰랐다. 눈에 보이는 게 내 세계 전부였다. 문득 수업 시간 앞에 서 계시는 선생님이 멋있어 보였다. 자기 분야에 능통하면서도 어린아이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나눠준다. 스승의 날엔 제자들이 노래도 불러주고 선물도 준다. 이보다 멋진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선생님이 나라에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라는 사실은 훗날 알게 됐다. 중학생 때 한 번은 수업시간에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는데 (잠깐의 일탈과 같은 행동이었다) 친구들의 비웃음을 들었다. 아마 그 친구들도 사실은 선생님도 공무원이라는 것과 그중 몇몇은 본인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거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항상 공무원 대신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역사 선생님은 말을 해도 오~하고 감탄사를 받게 되는 면에서도 탁월했다. 역사라는 과목은 반에서 한 두 명 정도나 선호하는 과목이며 선생님은 이름부터가 존경심을 들게 한다. 그러나 나와 역사 선생님은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수능이 다가오면서 국사과목을 서울대 입학 필수라는 소리를 듣고 선택하지 않았다. 당시 근현대사를 선택했는데 그 행동 자체가 스스로가 이 분야에 자신감이 없다는 걸 반증하는 꼴이었다. 나는 길을 잃었다.
선생님은 본인이 원하는 분야를 위해 다른 분야도 잘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고 결국 원하는 과나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 수능 이후 입시를 준비하면서 사학과나 다른 학교 역사교육과 등 선택할 수 있는 환경에서도 그 전공들을 고르지 못했다. 어쩌면 태어나 처음으로 꾸고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지켜온 꿈이 그 정도였나 싶다. 지금도 딱히 후회하거나 돌아가고 싶거나 하진 않는다. 다만 유튜브에서 역사 관련 영상을 자주 보고 역사 기반 영화들의 팬이며 언제 봐도 재밌는 책들이 역사 소설 같은 걸 보면 본성은 어디 가지 않는 것 같다. 비록 강단에 서는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직업으로서 꿈은 그렇게 저물었으나 역사에 대한 소중한 마음은 그대로다. 스스로에게 꿈을 지켜주고 견뎌온 나날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한다.
시작은 그와 동시에 끝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끝이 나면 또 새로운 시작이 바통을 이어 달려 나간다. 내 꿈에 있던 자리를 이을 다음 주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나란히 서서 뛰고 있었다. 보이지만 않았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