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유는 좋든 싫든 아빠였다. 작년 4월쯤 브런치 작가가 됐다. 사실 최초로 브런치 작가가 되기로 결심할 때보다 시간이 꽤 흘러서야 작가가 됐다. 언젠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나라는 사람이 그렇듯 계획을 빠르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행동의 도화선이 된 계기가 아빠라는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그 아빠의 죽음이었지만. 덕분인지 때문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작이 반이라는 옛말처럼 첫 발을 내딛게 해 준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브런치 속 초창기의 글을 보면 온전히 아빠에 관한 글들이었는데 그에 대한 원망이 주를 이뤘다. 내 마음에 응어리진 풀 곳 잃은 서러움과 서운함들이 글로서 정리되고 보이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일종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버렸다. 덧붙여 아빠가 있었던 병원에서 있던 일이나 장례식 등 죽음과 관련된 현실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그 당시의 힘듦, 그래 봤자 돈에 관한 것이지만 꽤나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엿볼 수 있다. 글들은 날카롭고 지독했으며 정제되지 못한 날 것의 느낌을 줬다. 나는 당시 그 어떤 목적도 이유도 없이 망망대해에 떠있는 배처럼 손이 가는 대로 글을 갈겨썼다. 손으로 썼다면 필시 아무도 못 알아봤을 거다. 필자인 나일지라도.
최초로 쓴 글들은 하나의 주제로 묶고 싶었기에 매거진을 만들었다. 그 제목은 '아빠가 민들레였으면 좋겠다'로 정했다. 민들레의 꽃말은 '감사하는 마음'이나 '행복'으로 풀이된다. 꽃말에서 유례가 되듯 처음에는 아빠에 대한 원망이나 세상에 대한 한탄을 쏟아내도 점차 아빠와의 추억을 돌이키면서 좋은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시리즈는 15편 정도 쓰기로 마음먹었고 마무리는 민들레처럼 자유롭게 세상 어느 곳이든 마음 편히 날아가시라는 의미를 담으려 했다. 그런데 그러기가 참 힘들었다. 세상은 계획처럼 흘러가지 않았고 내 마음도 내 뜻대로 좋게만 흘러가지 않았다. 꾸준히 글을 써야 한다는 게으름은 둘째로 치고서도 무조건적으로 아빠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거짓으로 포장한들 내 마음이 불편할 뿐이었다. 브런치가 아무리 공적인 공간이라도 결국 최초의 독자는 '나'인데, 나는 나를 속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를 쓰자니 나는 아빠와 추억이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글을 쓰기로 했다. 직장인으로서 내 분야에 대한 이야기, 좋아했던 축구에 대해 겪은 이야기와 생각, 삶 속에서 문득 스치던 아이디어, 연인에 대한 글까지. 나는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적어내고 싶었다. 새해 들어 '하루에 한 글씩 써내자!'라는 목표는 점차 수 그러 저 갔다. 내 딴에는 동기부여와 꾸준함을 만들어 글쓰기를 습관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원해서 쓰기 시작했던 글은 어느새 글감을 찾아 길을 잃고 헤맸다. 글쓰기란 습관은 곧 강박이 되고 불안을 만들었다. 조회수나 독자는 신경 쓰지 말자고 했던 결심은 점차 집착으로 변했다. 주객이 전도된 끝에선 요즘은 원초적인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쉽사리 답을 내리지 못한 문제다. 시작했다고 다 같은 시작이 아니었다. 단순히 많이 써서 어찌어찌 엮어서 책으로 낸다고 한들, 내 브런치 자기소개에 출판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한들 이런 식으로는 의미가 없었다. 글을 쓰는 건 단순히 돈을 벌고 싶어서가 아니다. 뭔가 더 명확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의 기원이 아빠의 죽음이듯, 나라는 사람의 시작인 아빠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시작은 또 다른 시작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