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의 기억은 생생하다. 장례식 역시 그렇다. 그때 감정도 기억이 나고 얼마나 울었는지도 안다. 그때 울음의 의미와 든 생각도 기억난다. 나는 그저 '잘해주지 못했다'라는 '나'에 대해 슬프고 화가 나서 울었다. 아빠가 보고 싶다거나 불효해서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는 게 아니었다. 당장 수술비가 두려웠고 돈이 없어 병원에서 나가지 못했던 그 순간들이 슬펐다. 사회 안에서 무기력했던 내가 슬펐다.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수많은 수술 동의서에 사인하던 날이 떠오른다. 보호자로서 나는 아빠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지병은 뭐였는지 먹는 약은 어떤 게 있었는지 나는 몰랐다. 그때는 그게 불효인 줄 알았다. 곰곰이 돌아보니 내 마음이 거기까지였다.
제사상을 볼 때 내 마음을 돌아봤다. 난 고생한 엄마만 생각났다. 제사를 준비할 때 나는 엄마를 돕지 못했다. 회사가 바쁜 시기에 들어섰고 야근을 한 것도 이유다. 하지만 형은 금전적으로 엄마를 도왔다. 마음이 없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예민했는데 아마 그 자리조차 불편했나 보다. 엄마를 돕지 않은 미안한 마음과 함께.
용서는 성찰 없이 안 되는 거였다. 누군가의 강요나 혼자서 하는 건 용서가 아니었다. 마음의 상처는 망각으로 인해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몸에 난 상처처럼 자연스럽게 치유될 수 없는 거다.
태어나서 단 한 번 타인의 폭력으로 피를 봤다. 아빠였다. 미성년자에게 술 사 오라고 매일같이 시켰다. 아빠였다. 집 거실에서 태연하게 다른 여자와 통화하는 사람, 아빠였다. 엄마 때리던 사람, 아빠였다. 같이 안 살 때 마음이 더 편한 사람이 바로 아빠였다.
형은 말했다. 그동안 원망도 많이 하고 싫어했지만 본인을 위해 여기저기 대출을 알아보던 그 날. 그리고 받지 못했던 그날. 멋쩍게 가진 게 없어 미안하다고 한 그날 용서했다고. 그게 부모 마음이라고. 그 이야기를 아빠가 수술하던 그날과 이후 제사나 명절 때 매번 듣곤 한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매번 잔소리하는 본인 때문에 힘들었을 거다, 이것 저것 하지 말라해서 고생했다처럼 말하곤 하면서 돌아봤다.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에선 아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사실 용서고 자시고 할 게 없는 게 아빠에겐 아무런 생각이 없다. 이미 내 마음에서 비운 지 오래인 사람이다.
그동안 괜찮을 줄 알았다. 엄마와 형이 표현하는 것처럼 아빠가 동정의 대상인 줄 알았다. 그러나 가족일지언정 나는 엄마나 형과 다른 사람이다. 아빠와 나 사이 관계는 다른 누구가 아닌 둘만이 정의할 수 있다. 마음의 상처나 트라우마는 누군가 강요해서 치료되는 게 아니다. 고통의 기억은 시간으로 인해 잠시 잊히는 거고 다시 대면하면 또 살아난다. 아마 난 그 일들을 평생을 잊지 못할 거다.
성찰 없는 용서는 외면과 방관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