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이면 아빠가 돌아가신 지 1년이다. 아빠와 나눈 마지막 대화.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간 시간들. 수많은 동의서에 한 싸인. 수술을 기다리는 새벽 형과 나눈 이야기. 집에 잠깐 들렀을 때 세상을 떠났다는 아빠 소식과 마지막 모습. 장례식장과 화장까지 아직도 그 날들이 생생하다.
그 후로 단 한 번도 생각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장례식 후 몇 번 생각은 났다. 열 번은 아닐 거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아닌 것 같다. 난 그리울 만큼 아빠를 좋아하지 않는다. 원망까지 아닌 건, 수술을 기다리던 밤 형이 해준 말 덕분이었다.
"죽으면 원망할 수도 없어"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었다. 시간이 형 말의 뜻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사람의 마음이 그런 건지 뇌가 그런 건지는 모른다. 기억 속에 남은 아빠는 점점 원망이 대상이 아니게 됐다. 상처는 아물고 악몽은 무뎌지듯이 그렇게 아빠와 추억만 남았다. 그 추억마저 흐려져가지만.
엄마는 내 인생보다 오래 본 아빠의 얼굴을 까먹기 싫다는 듯 영정 사진을 거실에 뒀다. 잠도 거실에서 잔다. 아빠가 자던 바로 그 자리다. 최근엔 본인 것을 두고 아빠가 쓰던 핸드폰으로 바꾸려고 한다. 가끔은 아빠 생각이 난다며 밥 먹다가도 울먹이곤 한다. 엊그제 내가 잔치국수를 먹을 때도 그랬다. 아빠가 국수를 참 좋아했다고. 오늘 저녁엔 반찬 투정하는 동생이 미워 혼내려고 하니 '누구 닮아가냐'라는 말에 그만뒀다. 아직 닮고 싶은 부분을 생각해내지 못한 탓이다.
최근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빠 덕을 봤다. 아빠가 남긴 '남양주시' 마크가 붙어 있는 마스크들이다. 수십 장은 되었다. 마스크가 없어 고생하던 이모에게도 넉넉히 줬을 만큼 충분했다. 아빠는 공공근로 노동자였다. 아마 그때 얻어왔나 보다. 생전에 받은 것일 테니 족히 1년 넘게 된 것들이지만 이 시국엔 더없이 든든했다. 숨결을 잃은 아빠가 온 가족을 숨 쉬게 해 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원망을 했지만 아빤 사랑을 남겼다.
감사한 마음까지 잊을까 글로 남겨본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마스크를 남겨뒀다고. 적어도 마스크 때문에 이 시기에 불안한 마음은 없었다고. 아빠는 나도 모르게 내 삶에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