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ilUm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lim Feb 19. 2022

3번의 실종과 실패를 딛는 법

영화 <어디갔어, 버나뎃>

  


Photo by Annapurna Pictures - © ANNAPURNA PICTURES, LLC. All Rights Reserved

  영화의 제목처럼 버나뎃은 사라진다.
  그가 활동하던 LA에서, 자신의 집에서, 남극 한복판에서. 그리고 원래의 버나뎃도 사라진다. 그가 겪은 실패의 아픔으로부터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다.  


  상처 입은 사람은 고통을 겪는다. 고통을 몸소 절절히 느낀 사람은, 같은 고통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위험 요소에 더욱 집중한다. 살아남아야 하니까.


  상처 뒤에 오는 고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수만 가지 감정들이 혼재되어 있다. 슬픔, 자괴감, 수치심, 분노 등. 그것들을 온전히 마주하기 어려워 우리는 상처 앞에서 자주 회피하고, 남을 탓하며 화내고, 비관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기대를 가지지 않아야 실망할 일도 적으니까.


  자신을 무너뜨린 실패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걸 극복할 수 있을까? 상처는 끝내 실패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좋은 것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서 고통은 생생히도 기억하는 우리의 생존 본능으로부터 우린 어떻게 건강하게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까.

  실패라는 말은 자신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제목에서는 실패를 사용했지만 글에서는 상처라는 단어를 사용하겠다.


Photo by Annapurna Pictures - © ANNAPURNA PICTURES, LLC. All Rights Reserved

  버나뎃의 첫 번째 실종은 건축가로서 그가 활동하던 LA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남자들의 전유물이던 건축을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방식으로 접근해 최고의 상을 받고 이름을 날리던 버나뎃. 그가 심혈을 기울여 건축한 20마일 하우스는 건축사에 길이 남을 성과였으나, 멍청한 한 연예인에 의해 단숨에 철거되고 현재까지 주차장으로 쓰인다.

  버나뎃과 20마일 하우스는 세상의 우스움에 무너졌고 지켜지지 못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버나뎃은 남편 엘진을 따라 시애틀로 이주하여 다시금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하지만, 4번의 유산을 겪는다. 그리고 어렵게 얻은 소중한 아이는 약하게 태어났다. 버나뎃은 온 신경을 딸 B의 건강에 쏟았고, 그녀의 작업은 중단되었다. 그리고 남편과의 사이도 멀어졌다.

  삶은 버나뎃에게 너무 가혹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러하듯이.

Photo by Annapurna Pictures - © ANNAPURNA PICTURES, LLC. All Rights Reserved

  세상은 버나뎃의 상처를 실패라 불렀고, 스스로도 그렇게 여겼다. 아픈 상처들이 치유되지 않은 채 고통 속에 20년을 살았던 버나뎃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늘 불평을 늘어놓고, 쉽게 분노하고, 시애틀과 주변 사람들을 싫어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불안에 가득 차 불면증에 시달리고, 자기 자신과 집을 방치한다.


  상대적으로 마음의 힘이 더 강한 사람이 있고, 약한 사람이 있다. 고통에 더 예민한 사람이 있고, 비교적 무딘 사람이 있다. 하지만 동일한 건, 마음의 힘은 모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두 발로 서 있던 마음이 한 발로 서 있어야 할 땐 서 있는 것만으로 힘이 든다. 그러면 다른 것들에 내어줄 힘이 없어지고, 자신을 더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갈 여력도 사라진다.

  누군가를 믿는 것도, 자신의 진심을 들여다보는 일도, 도전을 하는 일도, 지나가던 꽃을 보고 미소를 짓는 일도, 일상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자신과 공간을 가꾸는 일도 모두 마음의 힘이 필요하니까.


  힘든 시기를 보내느라 까칠해진 사람을 대하는 건 어렵다. 그렇지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자기 자신을 자책하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가혹한 건 삶 하나로도 충분하니까.

Photo by Annapurna Pictures - © ANNAPURNA PICTURES, LLC.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우리가 버나뎃을 힘들어하거나 쉽게 판단하질 않길 바란다. 그래서 괴짜 같은 버나뎃의 모습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딸 B의 시선으로 버나뎃을 따라가게 되며, 그의 사랑스럽고 멋진 모습들을 발견한다.

  카펫 아래 자라나는 새싹을 발견하고 카펫을 찢어 생명을 지켜주는 모습, 강아지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 딸과 함께 노래를 부르다 눈물을 흘리며 솔직한 마음을 말해주는 모습, "인생은 갈수록 따분하지만, 자신만이 삶을 즐겁게 만들 수 있단 것을 알아야 해." 같은 멋진 통찰력을 보여주는 모습 등등.


Photo by Annapurna Pictures - © ANNAPURNA PICTURES, LLC. All Rights Reserved

  이러한 버나뎃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대조된다.

  LA 활동 시절 그의 옛 동료인 폴과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는 버나뎃은 자신이 아직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며, 그걸 회피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다만, 그걸 직면하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나아갈 힘을 오롯이 갖지 못했을 뿐. 그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해주는 한 마디의 확신이었다. "너는 예술적인 창조를 해야 하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 위협이 된다고. 가서 네 일을 해."


  같은 시간, 남편 엘진은 버나뎃을 잘 모르고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한다. 그리고 버나뎃이 심각한 정신증이며,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돕고 싶은 진심이었을지언정, 버나뎃이 어떤 사람인지 잊어버린 것이다. 그도 힘들었던 시간을 버텨내기 위해 강해져야 했을 테니까. 자신의 시선이 버나뎃에게 더 깊은 상처가 되는 것을 모른 채.


Photo by Annapurna Pictures - © ANNAPURNA PICTURES, LLC. All Rights Reserved

  버나뎃은 폴과의 만남 이후, 딸 B의 발표회를 멀리서 지켜보고 결심한다. 자신은 나아가야 한다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그 변화는 오로지 스스로만이 가능하다고.


  그러나 엘진은 낯선 이들과 집에 들이닥쳐 버나뎃을 강제 입원시키려고 한다.


  이때 버나뎃은 2번째로 사라진다. 자신을 입원시키려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집 한복판에서.

  2번째 실종을 두고 엘진은 버나뎃이 또 도망쳤다며 비난하지만, 버나뎃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첫 시도를 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공격적으로 대하던 이웃 오드리를 찾아가 도움을 구하고,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말한다. 그리고 딸 B와 약속했던 남극 여행에 혼자라도 가기 위해 배를 탄다.

  이 남극 여행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던 자기 자신이 달라지기 위해 처음으로 결심했던 도전이었다.


Photo by Annapurna Pictures - © ANNAPURNA PICTURES, LLC. All Rights Reserved

    남극으로 향하는 크루즈를 탄 버나뎃은 팔머 기지를 거쳐 남극 기지로 향하는 연구원을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남극 기지를 철거하고 새로 짓는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미 새로운 시도를 위한 선택을 마음먹고, 남극 여행을 통해 조금씩 자신만의 방식으로 힘을 회복하던 버나뎃의 마음엔, 새로운 문제가 들어선다. 20년 만이다.


Photo by Annapurna Pictures - © ANNAPURNA PICTURES, LLC. All Rights Reserved

  버나뎃은 조금씩 자신의 본모습으로 돌아온다. 다시 뜨개질을 하며 창의적인 고민을 하고, 다양한 질문을 하며 자신이 해결할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의욕과 호기심 그리고 도전의식을 가진다. 그리고 아무나 갈 수 없는 팔머 기지를 향하기 위해 허락되지 않은 탈출을 감행한다.


  이것이 버나뎃의 3번째 실종이며, 이로써 그는 상처를 딛고 다음 도전을 시작한다.

  버나뎃은 다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웃고 춤을 추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진다. 설렘과 기대, 감흥으로 가득 찬 그의 마음은 반짝이는 눈빛과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버나뎃을 찾아 남극을 좇아온 가족과 팔머 기지에서 상봉한다. 그리고 버나뎃은 말한다.
  "나를 이렇게 만든 건 시애틀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어. 약속해, 난 이제 앞으로 나아갈 거야."
  그는 남극 기지로 이동해 5주간을 거주하며 결국 새로운 남극기지를 건축한다.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답게.


Photo by Annapurna Pictures - © ANNAPURNA PICTURES, LLC. All Rights Reserved

  가족은 버나뎃에게 자신이 상처를 딛고 나아갈 또 하나의 동력이 되어주었다. 딸 B와 부르며 눈물을 보인 'Time after time'의 가사처럼.

  하지만 버나뎃의 상처를 실패로 끝내지 않고 다시금 시작하는 과정으로 만든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우리의 삶은 오직 우리 자신만이 구원할 수 있으니까. 그건,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말처럼 '선택'의 영역이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 후유증은 머리에 각인되고, 마음 어딘가에 묻혀있다 불쑥불쑥 터진다.

  그럼에도 상처는 실패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도망치기도 하고, 가만히 있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남 탓을 하기도 하고, 수치스러워도 하면서 기다려주면 된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하나하나 직면하고 작은 시도부터 하면 된다. 오로지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자신에게 모든 것이 달려있다는 말은 어쩐지 냉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희망차기도 하다.


  슬럼프라고도 부르고, 회피, 방황이라고도 부르는 어떤 시간을 지나고 있는 모든 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조금 덜 아프고, 더 가볍고, 실없이 웃고, 마음으로 기대를 가지는 날이 다시 올 것이라 믿기를.


If you're lost you can look and you will find me
Time after time
If you fall, I will catch you, I'll be waiting
Time after time
If you're lost, you can look and you will find me
Time after time
If you fall, I will catch you, I will be waiting
Time after time

영화 삽입곡 Cyndi Lauper - <Time After Time>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유니콘을 믿기로 선택하는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