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길

by 민진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맞은편 숲이 우리를 빤히 건너다본다. 나무들이 손짓을 하는 것도 같다. 들어서는 곳은 풀이 잘 깎이어 단정해 보인다. 저 숲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이 인다. 짙푸른 숲 내음이 날 것 같다. 거닐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한 번도 가지 않는 길에 대한 기대감이 자라난다.

몇 년 전만 해도 친구와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나 산책 같기도 하고, 등산이기도 한 야트막한 산을 오르곤 했다. 사계절의 변화가 한눈에 들어왔다. 대나무 숲길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바람결에 외친다. 물소리길이라고 해서 두리번거렸는데 산에 수도를 끌어다 놓고 지어놓은 이름이었다. 꼭지를 돌리면 물소리가 나긴 했다. 맨발로 걷는 길이어서 마련해 놓은 배려였나. 오월 등나무 꽃이 보랏빛 향기를 날리면 도시락을 준비해 갔다. 꽃그늘 아래서의 식탁은 꽃빛과 향기가 어우러져서 무얼 먹어도 맛났다. 한참을 올라가면 타잔이 줄을 잡고 건너 다닐 것만 같은 밀림의 골짜기를 지나 두 갈래의 길이 나온다. 더 높은 곳을 오를 것인지 가까이 마련된 중간지점에서 마칠 것인지 골라야 한다. 온 산에 난 길이란 길은 안 가본 곳이 없다. 나중에야 한 곳으로 정해졌지만. 산에서의 시간들을 묵힌 친구랑 만났으니 산보다 더 한 곳을 가는 것도 두렵지 않을 것 같은.

들어선다. 부드러운 흙길에 입혀진 풀들이 다스려졌다. 누군가 꾸준히 돌보았다는 말로 읽힌다. 발밑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다. 시멘트 길이 아닌 것에 감탄한다. 도심에 이렇게 밟을 수 있는 길이 몇 군데나 있을까. 그것도 바로 가까이에. 과수원이었던 듯 나이 지긋한 과목들이 듬성듬성하다. 생각으로 잎 진 나뭇가지마다 피어날 꽃들을 매달아본다. 봄의 어느 날 꽃잎이 분분히 날릴 때도 거닐 것이다. 감동하면서 길을 간다. 언덕이 나온다. 줄 맞추어 심긴 스카이로켓 향나무가 신비감을 더한다. 올려다보니 찻길이다. 그러니까 도로 아래 마련된 숲길을 걷는 것인데 어디로 향할까. 데크로 만든 길이 나오자 끝까지 걷는다. 전원주택들이 몇 채 서 있다. 숲 위에 얹히어진 그림 같은 집. 도로는 저 집들을 위해서 난 것이 분명하다. 집으로도 이어진 데크 길. 바라만 봐도 좋겠다 싶은 맘이 뭉게구름처럼 일어난다. 한적한 길이었다. 드물게 보이는 몇 사람. 흙길과 나무로 만들어진 길 끝으로 이어진 단단한 길은 접어두고 돌아선다. 오가는 길이 오십 여분 정도이니 걷기에도 은.


비밀의 숲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입이 벌어진다. 언제라도 찾아가면 품어줄 산울로 둘러진. 길은 길로 이어진다. 길이 길을 부르기 때문인가. 가고 싶은 길을 가면 된다. 가다가 되돌아와도 누가 뭐라고 하랴. 가는 길은 다 다를 수밖에. 모범 답안처럼 어떤 길로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인식들이 우리를 울타리에 가둔다. 그 너머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가보지 않는 길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필요가 있다. 가고자 하는 길에 시도라도 해보는 용기를 냈을 때 내가 나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길이 없는 곳은 걸으면 길이 된다고 그랬다. 어떤 나라는 아파트가 지어지면 두고 본다고.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하여 길이 나면 그때서야 길을 닦는다는. 우리나라는 미리 동선을 정해두고 그 길로만 다니라고. 더 가까운 곳으로 다니려는 유혹 때문에 개구멍이 생기기도 한다.

모과나무 꽃

처음으로 만난 숲과의 설레 임. 무지개가 숨어있나 저 숲 속에. 색으로 칠한다면 몇 가지 색일까. 상록의 종가시 나무들이 짙푸르다. 도토리처럼 열매를 맺히지만 사철 푸르다. 이런 나무들이 참나뭇과에 속하는지도 이제 알게 되었다. 어린 모과나무가 지지대를 의지하고 서 있다. 모과나무에 피어날 연분홍 그 이쁜 꽃무리를 그려본다. 햇빛으로 가득한 겨울날에는 상록의 나무 사이를 걸으며 오는 봄을 기다려야겠다. 가을이 깊지도 않았는데 벌써 꽃을 잃은 계절을 품는다.

새로운 길. 길은 거기에 있었다. 여러 해를 지나다녔건만 이제 발견한 것이다. 카페가 한몫을 했다. 문을 바로 연 찻집도 가끔은 들어가 볼 일이다. 눈에 선 것들이 다정해질 수도 있고 산보 길을 만나 싸목싸목 걸을 수도 있다. 차가운 공기로 탁한 폐를 닦아내어 맑은 유리창 같아질 수도 있겠다. 차 한 잔의 여유로움과 마주한 숲 때문에 자주 찾아올 것만 같다. 나란히 붙은 도시락집이 있어서 점심을 사 가지고 갈 수도 있겠다고 마주 보며 웃는다. 벌써부터 이 길로 잇대어 찾아올 즐거움들이 잔뜩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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