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 공주래. 딸의 손에 들려온 꽃의 이름이 참 거창하다는 생각을 했다. 언뜻 떠오른 이미지는 냉이 꽃을 닮았네!이다. 총상 꽃차례로 둥글게 화관처럼 피어 있었다. 작고 앙증맞았으나 확 끌리지는 않았다. 이름이 주는 말맛이 동떨어진 느낌 때문이었는지도.
딸에게 예쁘다 보다는 신기하게 생겼네. 고마워 정도였다. 내 반응이 저의 생각과 다른지 미심쩍어했다. 지난봄에 왔으니 일 년을 키웠다. 겨울이 되자 좁쌀 알갱이들이 오밀조밀 일어난다. 조금씩 부푼다. 아기 젖니처럼 꽃잎이 돋아난다. 어떻게 보면 토끼 귀 같은 느낌을 주다가 둘레둘레 흰 꽃띠를 두른다.
첫아이를 안았을 때 발가락이 신기했다. 도톰한 발끝에 고 귀여운 발가락이 매달려 있는 것이 여간 신비로웠다. 보고 또 보고 만져 보고 발가락을 벌려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조그마한 발톱이 빛났다. 작디작은 완전한 발.
사 개월여 되니 아랫니가 올라왔다. 분홍색 잇몸에 딱딱한 것이 한 개 올라오더니 곧 두 개가 나란히를 했다. 입속의 꽃잎 같은. 분명히 아기를 뉘어 놓았는데 엎드려 있었다. 이상하게 여겨 반듯하게 눕혀놓으면, 다시 엎치느라 꽁꽁 힘을 썼다.
이메리스(이베리스)가 새로이 피어나니 나의 몸짓이 달라졌다. 일 년여 간을 돌본 것에서 나오는 정 때문이리라. 찾아보니 눈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름이 도대체 몇 개나 되는 거야. 백설 공주보다는 차라리 눈꽃에 더 가깝다. 하나 둘 손가락을 펴듯이 꽃잎을 내밀어 꽃 뭉치를 만들어간다. 소복이 쌓이는 꽃눈 송이가 소담하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부드럽다고 한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이다. 나에게 왔을 때는 예쁜 것을 모르겠더니 오랫동안 같이해서 그런가. 자꾸 눈이 간다. 섬세한 꽃 이파리 하나하나가 애잔하다. 흰색 꽃의 단아 함이다. 카랑코에는 연노랑으로 물들었다가 흰색으로 변하여 가는데 이메리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얗다. 더 이상 손볼 수 없는 흰빛. 겨울이 가시기도 전에 소르르 웃는다.
날마다 첫사랑이다. 꽃 한 가지 한 가지마다 낌새가 느껴진다. 처음이라는 말에 너무 무게를 두지 않으려 한다. 수많은 수식어가 붙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기에. 큰 의미와 가치만을 자로 재듯 할 수는 없다. 작고 소박한 것에 감도는 은은한 기쁨을 한껏 끌어올린다. 올해 들어 처음 본 민들레도 진달래도 제 빛깔로 찾아왔다.
꽃을 키우는 여건이 좋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꽃들이 못마땅하다고 나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부딪는다. 기준은 내가 만든다. 애달파하지도 않는다. 나날이 깊어가고 여물어준다. 새록새록 익어가는 꾸준한 사랑을 내어준다.
이메리스와 첫 만남이 생경하였다. 이른 이봄 기대하지 않았던 데서 오는 차오름으로 충만하다. 가꾸고 기른 꽃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는다. 공들여 물 주고 돌보며 애를 쓴 흔적이 고스란히 꽃 속으로 스며들었다. 저의 가지고 있는 가치보다 더 사랑옵다.
저울로 달아보면 한참 부족할지도 모르는데 내 시선에서의 무게중심은 팽팽하다. 꽃을 보는 내내 마음이 달달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