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자를 빨간색으로

by 민진

그이는 소나무를 옥상 가득 키우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멋들어지지 않은 것 같아 말은 안 했지만 왜 솔을 기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름에 일 마치고 들어가면 그 많은 나무에 물 주느라 밤이 이슥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고생을 사서 한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이사를 했는데 소나무를 선물로 가져왔다. 니기다 소나무는 아니고 참 솔이었다. 집에 웬 소나무야! 뻘쭘했다. 나무라고는 장미 두 그루 있었다. 노랑과 빨강 꽃을 머금는. 받은 것은 소중히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잘 돌보기로 했다. 키가 하늘을 찌를까 봐 생장점을 잘랐다. 모양이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누구 줄 수도 없고 고민이 되었다. 그러구러 몇 년 지나니 몸통이 굵어졌다. 제법이네 하면서 지지대를 세우고 수형을 어떻게 하면 잘 잡을 수 있을까를 궁리하게 되었다. 큰 사기 화분에 심었는데 뿌리가 자라면서 화분을 깨 먹기까지 한다. 더 큰 집을 달라고 보채 듯 그릇에 금을 사정없이 긋는다.


나와 달리 남편은 처음부터 맘에 들었나 보다. 소나무를 손보기 시작했다. 몇 차례 거쳐서 전지를 한다.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니 괜찮았다. 와우! 정이품 소나무가 되었네! 환호했다. 벤자민 고무나무도 우거지게 키워놓더니 실력 발휘를 한다. 모르는 척 있다가 어느 순간에 구원투수가 된다.

사진을 한 장 찍어 소나무를 주신 분에게 ‘정 이품 소나무입니다.’ 카카오 톡으로 사진을 보냈다. 크크크 웃음소리만 떠다닌다. 그것이 동의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나중에 만나면 사실관계는 알아보기로 한다. 자려는데 내 행동이 웃음이 나서 톡을 들여다본다. 사진 속 나무 밑에 얌전히 앉아있는 아직은 한뎃잠을 잘 수 없는 화초들이 보인다. 자그마치 세 개다. 뛰어나가서 화분을 들인다. 밤 열한 시. 해 바라기 시키다가 잊어먹고 들이지 않아서 보낸 것들이 몇 개인데. 소나무가 너희들을 살렸다. 후유! 세조의 가마가 소나무 밑을 지날 때, 가지를 들어주어 정이품 벼슬을 내렸다 하더니. 우리 집 소나무도 내가 하던 말을 귀담아 들었나.

서너 해 전 어떤 자리에서 우연히 집 마당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한 분이 소나무는 집에서 함부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 저택의 멋진 소나무는 뭐냐고 했더니 그것은 기가 센 분들이 이층 집에서 아래층을 내려다볼 때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출세를 했거나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어 큰 집을 짓고 사는 정도 되어야 한다고. 나도 기가 세니 괜찮다고 웃었다.


사찰음식을 만들고 연구도 하던 분이었다. 꽃이란 꽃 이름 중 잔잔한 들꽃까지도 꿰고 있을 정도였다. 진짜 기가 세 보이는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잘 사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삼기 위해 그런 말이 속설로 돌아다니는 것은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 보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권력의 상징으로 붉은색을 이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대대로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였으니 빨간색을 함부로 하면 안 되었던 것인가. 감히 대국의 색깔을 사용하지 않아야 된다는. 색에도 주인이 따로 있나. 어렸을 때 누군가의 이름을 빨간색으로 쓴다는 것은 그 사람을 저주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모르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빨간 펜으로 쓰게 되었을 때 얼른 검은색으로 바꾸어 썼다. 도장을 찍어 박힌 벌건 색은 어떻게 해석하지. 요즘은 일부러 한 번씩 내 이름자를 빨간색으로 적어본다.


가림 막으로 세워놓기 위해 한 그루 더 얻어온 소나무도 잘 자라고 있다. 시간과 하늘과 공기를 숨 쉬며 서서히 자신을 만들어간다. 사람들은 꽃과 나무에 왜 이런저런 주문을 매다는 것일까. 나무면 나무고 꽃이면 꽃 그대로의 모습을 보아내도 너무 충분한데.


봄이 깊어지면 소나무에도 보랏빛 꽃망울들이 새초롬할 것이다. 푸른 아기 솔방울도 종처럼 달리겠지. 우리 집 나무 울에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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