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 속이었다가, 나비였다가

by 민진

그 시간만 되면 날마다 우화 한다. 다음 날 번데기로 돌아가는 것을 반복한다 할지라도 그때만큼은 날개를 퍼덕거릴 수 있다. 오후 다섯 시면 조그마한 공간을 탈출한다. 빠삐용은 자유를 얻은 다음 그곳으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날마다 도돌이표다. 삶의 한 부분이라 여길뿐이다. 언젠가는 완전한 날개를 펼치며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때는 진짜로 날개를 접어야 하는 때인지 알 수 없다.


한 평도 안 되는 곳에 차근차근 쌓아 올린 물건들이 빙 둘러 있다. 유리창으로 마주 보이는 벽에 엄마손 파이와 비스킷이 얼굴을 내민다. 골라서 가져다 놓은 과자 가짓수들이 눈에 익다. 기저귀와 세면도구라든지 일상에 필요한 것들이 쟁여있다.


그이는 오도카니 종일 앉아 있다. 전에는 가끔 아는 사람이 놀러 와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좁다란 곳에도 웃음소리가 나풀거렸다. 작디작은 공간이지만 숨을 쉬며 뭔가가 살아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다. 차 한 잔에도 웃음이 녹아있어 마실 때마다 훈훈했다. 전염병은 거리두기로 우리들의 도타운 정들을 가져가 버렸다.

코로나가 일어났을 때 병원 후문에서 열을 체크하는 청년이 매점 안의 분과 닮아 있었다. 커피를 한잔 달라하면서 아들이냐고 물으니 맞다 한다. 아들 둘인데 큰아들은 병원 주차장에 있고 작은 아들은 거기에 있다고 했다. 아들만 있고 딸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그러게요 나이 들수록 딸이 필요하지요 하며 맞장구를 쳤다. 돌보는 친구 재활치료를 위해 일주일에 두 번은 병원에 들렀었다. 그즈음에는 자주 보다 보니 세월의 변화가 읽어지지 않았다.

일을 그만 둔지 몇 년째. 고혈압 약을 탈 때와 이상이 있을 때에만 가정의학과에 들린다. 무리를 했나 보다. 오줌소태가 와서 병원에 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조금씩 몸 상태가 헐거워져 쉬이 지친다. 소변검사를 한다. 혈류가 섞여 나온다. 아버지가 신장이 안 좋아 멀리 가셨기에 사뭇 긴장이 된다. 형제들 가운데 외모에서부터 속까지 제일 많이 닮았나 보다.


닮는다는 것은 좋은 부분보다는 반대편 쪽으로 기운다. 동생들은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 잇몸이 붓고 내려앉는다는데 나는 신장과 맞닿은 부분에 반응이 나타난다. 젊었을 때는 십 년 주기로 나타났다면 이제는 오 년이나 삼 년 주기로 아프다. 촌에서는 자소엽이라는 보라색 깻잎 삶은 물을 마셨다는데. 지금은 항생제로 쉽게 잡는다. 문제는 오랫동안 먹으라는. 대답은 잘 챙겨 먹겠다 하지만 절반만 의사 말에 따른다. 곧이곧대로 들으면 어쩐지 손해가 날 것 같은 삐딱한 마음이다. 몸의 신체리듬에 더 신뢰를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보다는 커다랗고 하얀 동그란 알약에 대한 거부반응이다.


삼일 뒤에 다시 한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커피 한잔을 주문한다. 매점 아줌마의 안색이 허여멀겋다. 얼굴 살은 쳐지고 눈동자에 웃음을 잃었다. 만사 귀찮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삶에 찌든다는 것이 그냥 전해져 온다. 커피 맛이 쓰다.

날마다 고치 안처럼 자신을 감싸며 아로새기는 시간일 수도 있다.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생활을 했는지 모른다. 환한 낮이라도 움직거릴 수 없는. 붙박이처럼 어딘가로 갈 수 없이 정지된 시간. 널널한 재활병원에서 울타리 안의 섬 같다. 아직 날개가 돋아나지 않는 고치 속의 애벌레처럼 숨죽이고 있다.

엊그제 병원에 갔을 때 그분의 아들들이 보이지 않았다. 직장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그녀의 마음 주름이 펴지기를 바란다. 햇볕 한 줌 쪼이지 못하고 놓여있는 삶에도 빛줄기가 쏟아져 내리기를. 날마다 오후 다섯 시까지, 토요일은 열두 시반까지 나비가 될 때를 위하여 웅크리다가 여리여리한 햇살 아래로 나서면 눈이 부시다. 고치 속이었다가, 나비였다가 하는 쳇바퀴의 나날. 봄빛에 팔랑거리는 나비처럼 아무 걱정 없이 날고 싶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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