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안의 꽃시계

by 민진

별 떨기들이 수북이 쏟아져 은하수가 되기를 바랐다. 꽃잎 한 개 한 개 애를 태우며 피어난다. 시간 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세월아 네월아 한다. 별 한 개씩 그러모으더니 드디어 소복하다.


하얀색 카랑코에를 얻어왔었다. 순둥이어서 이파리 하나 따서 흙에 꽂아도 한그루가 되어 나오고 가지 하나 꺾꽂이하면 그대로 뿌리를 내어준다. 꽃을 양껏 볼 욕심으로 여럿의 개체수를 만들었다. 이듬해 봄이 되어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데 피어날 낌새가 없다. 얻어온 곳에서는 꽃은 피어나고 우리 아이들은 눈 꼭 감고 귀 닫아 맹숭맹숭하다.


카랑코에는 단일 식물이어서 밤의 길이가 길어져야 꽃망울이 맺힌다는. 우리 집에는 밤이 도착하지 않았던 것인가. 분명히 해는 서쪽하늘에 노을을 짓고 그 속으로 가라앉았는데. 까만색 어둠이 나뭇가지에, 공간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이유가 무엇인지 골똘하게 생각한다. 가로등이 밤의 꽃처럼 부시다. 네온 불빛도 낮과 겨루려는 듯하다. 빛 공해로 벼 이삭이 여물지 않는다더니. 초록의 잎들만 넋 놓아 눈을 깜박거린다. 그늘 농사란 말이 있더니 어둠이 짙어야만 꽃이 몽글몽글 맺히는가 보다.


카랑코에는 성격이 수더분하다 싶었는데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 어둠살이 돋아나야지만 몰래몰래 꽃구름을 일으키는 것을. 한낱 작은 식물이라도 생체리듬에 따라서 움직인다.

지난여름이, 떠나기 싫어 미적거릴 때 해가 지기도 전에 검은 봉지와 박스를 씌워주었다. 아침 느직이 벗겨주기를 두 주를 해 주면 된다는데도 미심쩍어 삼 주를 씌워준 것 같다.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껴서 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내버려 두었다. 작은 변화가 일기 시작하더니 알갱이처럼 뭔가 몰려오고 있었다.


화분에 초록의 연한 것들이 보송보송하다. 벙그는 꽃을 보면 기쁨이 이슬방울처럼 맺히는 것 같다. 꽃방울 하나하나 마음에 들어온다. 작은 화초이지만 멋스러움을 입혀보고 싶어 곧게 키우다가, 위에서 순지르기를 하여 나무의 이미지를 입힌다. 꽃이 만발하면 멋지지 않을까 기대를 모으고 애를 쓴다. 나름 괜찮게 자랐다고 뿌듯해했다. 이파리가 찐득거린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벌레들의 공격에 아연하다. 파리약을 뿌려보고 이것저것 방제에 좋다는 것을 해본다. 겨우 버티어 살아남은 것들이 꽃을 피워냈다. 그 시간의 싸움을 모르는 이들이 보면 시쁘게 여기겠지만 나에게 꽃은 보석이나 마찬가지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진다. 벌써 꽃들로 가득하다. 아침은 마당으로 저녁에는 안으로 들이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눈 뜨면 바깥 온도부터 확인한다. 사월부터는 마당에 내어놓아도 냉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이란 기분 좋은 수고로움이다. 애면글면 키운 코에가 개화기간이 오래여서 마음껏 꽃을 본다. 흰색과 주황, 노랑 빛깔이었는데 분홍과 빨강을 더 보탰다. 총천연색의 꽃을 이른 겨울에 볼 요량으로, 여름이 이슥할 때 밤 길이를 늘려 주려한다. 그럼 카랑코에 안에 있는 시계가 딸깍 움직거리겠지.


꽃의 갈래가 얼마나 많은가. 밤 길이에 눈 뜨고 하늘이 달구어지면 깨어나거나, 소슬바람이 불어오면 피어나는 국화. 이도 저도 아닌 풋내 나는 사랑처럼 사시사철 피어나는 고운 꽃. 나는 모든 계절에 헤프게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한철 빼꼼히 미소를 짓다가 일 년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감질이 난다. 푸지게 흐드러져 맘껏 볼 수 있어야 성에 찬다. 모든 계절에 피어나는 꽃을 배경으로 깔고 반짝 웃어주는 초화류를 키우면 내내 재미지다.

내 안의 시계는 어떤 것에 의해 움직이는지. 깨어날 꽃 정서는 남아 있을까. 감성은 쇠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기에 날마다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은 아닌지. 나를 두른 둘레와 넓이가 달라져 있을 뿐이다. 째깍째깍 미세한 초침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피워 내어야 할 웃음, 사랑, 그리움과 그늘. 때론 삶에도 그늘이 필요하다. 음지식물과 양지 식물로 나뉘고 반그늘을 좋아하는 녀석이 있듯이. 그늘은 품을 넓게 하는지 모른다. 어느 음역대의 식물인지 알아야 꽃을 잘 피울 수가 있다.

별꽃이 묻는다. 그대 안의 꽃시계는 어디쯤 흐르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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