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표처럼

by 민진

돌쟁이 때부터 보았던 남편 친구의 딸이 결혼을 해 지난 토요일에 다녀왔다. 창녕이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우포늪을 거닐다가 들어갔다. 외떨어진 야외에 마련된.


예배로의 결혼예식을 올리리라 여겼는데 다르게 진행이 되었다. 신부 아버지 되시는 분이 개성이 강하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틀을 깨는 것을 좋아한다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식장 뒤로 저수지가 호수 같은 느낌을 주면서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봄 햇빛이 모든 것을 빛나게 했다. 흰색의 온갖 꽃으로 장식된 순백의 아치. 창원에서 불러온 뷔페도 훌륭한 것을 보면 아담한 것도 괜찮았다.


양가 부모님들의 당부 말씀이 있고 신랑 신부의 약속을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다. 신랑의 떨리는 음성이 더 귀를 기울이게 했다. 여러 하객들 앞에서 처음 하는 고백이니 설렘과 벅참 때문이리라. 입 꼭 다물고 있다가 묻는 말에 대답 한마디만 하던 때와는 비교가 안 되었다. 주인공들의 맘이 반짝 엿보였다. 축가로 정인의 <오르막길>이라는 노래가 불리어졌다. 결혼을 가볍게 보지 않고 있다는 젊은이들의 속내가 읽혀 미더웠다. 입장과 퇴장의 음악도 늘 들었던 결혼행진곡이 아니어서 신선했다.

주례사도 없고 설교도 안 하고 축복기도로 마무리하며 퇴장한 신랑 신부의 선언 같은 긴 입맞춤으로 순서를 마쳤다. 일가친척과 아빠 엄마의 친구들이 모인 자리인데도 사랑의 표현을 서슴지 않아 세대 차이가 느껴졌다. 자신들의 인생을 당당하게 살 것이라는 이야기가, 느낌표처럼 거기에 다 담긴 것 같았다.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남편이 누구는 결혼하는데, 누구는 공원에 앉아서 일한다고 사진이나 보내온다고 딸 이야기를 한다. 딸이 지금 결혼한다고 하면 가슴이 쿵 내려앉을 거면서 그러냐고 하자 웃는다. 이 모양 저 모양 준비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 결혼할 때 남편 쪽 손님들이 아마 삼분의 이보다 더 왔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작은 월급으로 야간학교를 다녀 모아놓은 돈이 없었다. 집도 어머니 혼자서 동생들 건사하느라고 어려웠고. 결혼식 식비를 반반을 부담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아주버님이 계산을 했다는데 배려가 없다는 생각이 목까지 차올랐다. 꽁해서 그런지 애들 큰아버지가 외국에서 한 번씩 들어올 적마다 그어진 선 때문인지 마음을 열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서야 남편에게 결혼식 식비 이야기를 했다. 그 얘기를 왜 이제야 하느냐고 한다. 미리 말했으면 뭘 어떻게 할 것도 아니면서. 그때 결혼식 비용과 식비를 해결하느라고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싶었던 기억은 선명히 내 안에 있다.

작은 결혼식을 보며 내 마음에 부러움이 일었다. 처지대로 시작을 했으면 되는데 왜 그랬을까. 서울 한 복판에서 꼭 결혼식을 했어야 했나. 현실감이 참 부족했다는 맘을 지울 수가 없다. 그만큼 자신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 한쪽이 멍울처럼 아리다. 자꾸 작아지는 마음을 가지고 여태껏 살아온 것 같아 못내 아쉽다. 내가 짜낸 삶의 무늬들이 예쁘기만 할 수는 없지만 수수하고 은은하기를 바랐는데.


꽁꽁 싸매어둔 말들을 민들레 홀씨처럼 내 보낸다. 가슴에 남아있는 아픔은 어떤 식으로든지 살갗을 뚫고 나와 폴폴 날린다. 끝내 묻어두지 못하는 옹졸함이라니. 새로운 날들을 살아내기 위한 가지런하기라면 될까.

복사꽃이 환하고 연두의 나무 잎들이 꽃처럼 눈부신 계절. 인생의 새 문을 연 신혼부부에게 마음으로 축하를 보낸다. 꽃송이 같은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며.

우포늪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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