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by 민진

학교 다니던 아들이 내려와 몸 상태가 안 좋다고 자꾸 누워있다. 차를 오래 타서 그런가 하면서도 걱정은 안 된다. 밥때가 되면 잘 먹는 것을 보면서.

다음날이 설이어서 아이들과 어머니를 뵈러 가기로 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그 앞날 모두 모일 텐데 당일치기로 가서 점심만 먹고 오기로. 내 생각으로는 동서 네가 왔다 가면 우리가 들어가 맞바꾸면 되겠던데, 남편은 바꿀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막내아들이 반대를 하고 나온다. 코로나 정국에 오인 이상 집합 금지인데 모이면 어떻게 하느냐고. 남편은 할 말을 잃는다.


날이 샌다. 아침을 먹고 움직여야 하는데 큰 아들이 아무래도 검사를 받아봐야겠다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본다. 설날 아침이라 그런지 연결이 안 된다고 처져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 부부도 어디를 방문하면 안 다. 뭔가 확연치 않는데 움직였다가는 서로에게 못 할 일이 될 수도 있기에. 나이 드신 어머니만 아니라면 취소하면 될 것인데 참 어려운 문제다.

시댁에 도착해서 아이들이 못 오는 이유를 이야기하자 그럼 형님네도 오면 안 되죠 하는 말이 주먹처럼 폭 들어온다. 틀린 말이 아니어서 잘못을 지적받은 느낌에 난처했다. 마스크 잘 쓰고 있지 뭐 하고 말았지만 더 조심스러워졌다.

아들에게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왔다는 전화가 온다. 친구들과 저녁 약속도 취소했다는. 식구 중에 처음 받는 검사라서 긴장이 된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어디 가면 안 되고 집에만 들어앉아 있어야 한다.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오손도손 이야기도 했으니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면 닥칠 일이 보통이 아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의 타래들이 뭉텅뭉텅 감긴다. 양성반응이 나오면 우리는 두 주간을 격리 조치당해야 한다. 아는 분 가족이 양성이어서 연수원에 들어갔었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따로 각자의 공간에 섬처럼 떠 있었다. 창문도 활짝 열지 못하여 조각하늘만 쳐다보고. 사람들에게서만이 아닌 바깥으로부터도 외떨어진 혼자인 시간이 열나흘. 괜찮은 것일까.

긴장되는 순간들은 참 길게 느껴진다. 밝고 환하게 아무 걱정 없이 지냈는데 갑자기 어그러지는 느낌이다. 아닐 거라는 편에 마음을 두지만 만의 하나 전염병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암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거기다 동서 네와 어머니는 어떻게 하지. 일파만파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생각들이 나를 옥죈다.


음성이래요. 아들의 이 한마디에 참 많은 말들이 지나간다. 여러 생각들이 안개처럼 흩어져 가고 시냇물 한 줄이 졸졸 흘러든다. 일상을 그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이렇게나 큰 기쁨으로 다가오다니. 숨을 크게 내쉰다.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들이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일이 손에 익자 시키는 일에 즉시 움직이기보다는 붙잡고 있는 일을 마저 끝내려고 했단다. 그것을 못 참고 관리자 형이 닭발을 집어던지며 성을 내더라는 것. 형 알았어요. 지금 합니다. 하며 뒷수습을 했다는데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었나 보다. 평소에 잘해 주기에 좋아하는 형이었다고. 말은 못 하고 힘들다고 몸으로 외쳤나 보다.


육체는 정신에 압도당한다. 손으로 만질 수도 느끼지도 못하는데 어느 순간 맹렬하게 꼼짝 못 하게 한다. 영혼이 아프면 몸은 연체동물이 된다. 당하지 않아야 할 행동 앞에서 거부의 몸짓으로 모멸감을 떨쳐내고 싶은. 코에다 붙이면 코걸이 귀에다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처럼 코로나로 착각할 만큼 마음이 아팠구나.

올라가자마자 그곳으로 바로 일하러 가야 해서 긴장감이 더한 것 같다. 그 앞에서야 별일 아닌 것처럼 의연하게 행동했지만 마주치고 싶지 않았나 보다. 그만두지. 알아서 할게요. 다시 한번 더 그러면 생각해 봐야죠. 그때는 분명히 얘기할 거예요. 너도 바로바로 움직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지 않아. 그러게요.


그러구러 몇 달이 흘렀다. 사장이 가게를 하나 더 차리면서 일주일에 한 번은 닭발 집으로 가서 일을 했던 것. 자기가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직원 같은 느낌이더라고. 일하는 사람은 적고 할 일은 많아서 힘이 드는. 나름 재미가 있다고 하더니 머춤한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일을 찾아보고 싶어 지는 것이 지난번의 그 사건도 한몫을 했으려나. 사람 구할 때까지만 일을 더 해달란다고. 일주일에 두 번이지만 일 년을 밤을 지새웠다. 작은 터널 하나 지나온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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