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2

by 민진

어머니 집에 미산딸 나무와 백합을 심으러 가기로 한 이틀 전 작은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장례식장 손님은 인천에서 받고 화장하여 마지막은 선대가 있는 곳에 평토장으로 안치하기로. 한 많은 세월을 마치고 떠나가신 듯 애절하다. 작은 어머니 가시고 딸들 곁으로 가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우리 영역 밖이지만 슬픔은 남아 있는 자들의 몫이다.


자식들이 모두 경기도에 있으니 오히려 먼저 가신 작은 어머니를 모셔가야지 않을까 하는 혼자 생각을 한다. 살아있는 부모를 찾아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돌아가신 분을 찾아 몇 시간씩 내려온다는 것이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첫가을만 되면 벌초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수고비를 보내오거나 아예 아무 말이 없기도 하다. 자식들이 냉천 같다고 풀이 우쭉우쭉 자란 봉분을 그대로 둘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일은 늘 하던 사람들 몫으로 남겨진다.

옛날에야 사대까지 제사를 지냈다지만 앞으로 자식들 세대에게 바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제사란 기억하는 데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의식이 아닐까.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차차 무의미하게 변하여 갈 것 같은 조짐이다.

뭘 준비해야 할지 남편에게 묻자 지금 코로나 때문에 아예 판을 벌리면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준비할 것이 없다는 소리로 이해했다. 동서가 전화해서 뭘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아예 시작을 않아야 된다네. 큰집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는데 갑자기 내가 몰인정한 사람으로 비추인다. 조금 더 알아보자며 끊는다. 나중 동서가 전화해서 자기가 너무 앞서 간 것 같다고.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생각이다. 시골 정서에 오시는 분들이 있을까 봐 동서는 반찬을, 나는 국과 과일을 준비해 가기로 한다. 상주들 간식도 같이 준비했다.


그날은 비가 예보되어 있어 나무를 심으면 잘 살 거라고 내심 좋아하고 있었다. 심어보고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까운 농원에 가서 사다 심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도 품었더랬다.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것이 사람 살아가는 이치이다.

마을 어르신들이 모였다. 어머니가 자식들 먹으라고 쪄놓은 찰밥과 국으로 점심을 대접했다. 사람 일이란 모르는 것이기에 마스크를 꼭꼭 여몄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산소가 있는 곳에 부드러울 만큼 물기가 베어 들어 땅파기가 수월했다고. 미리 땅을 다 파놓고 기다리고 있었기에 일이 수월했다. 작은 어머니와 작은 아버님만이 나란히 누우신 것 같아 다정해 보이기까지 했다.

작은 집의 상주들이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는 장의사 버스를 타고 총총히 떠나갔다.

기다렸다는 듯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동서 네와 우리는 비옷을 입고 뒷밭으로 가서 나무를 심는다. 작년에 심었던 황금사철의 오묘한 색감에 반하고, 꽃 봉오리를 머금고 있는 철쭉들의 입매가 야무지다. 무럭무럭 자란 남천, 황금 측백나무가 부듯하다.

아로니아가 제법 컸기에 심어놓으니 멋지다. 주인공으로 생각한 미산딸 나무는 칠십 센티였기에 심어놔도 티가 나지 않는다. 기대를 하고 거금을 들여 준비했지만 가느다란 막대기만, 한 줄로 꽂아놓은 것 마냥 미미하다. 아직 꽃도 잎도 없는 맨 가지만 하늘을 향하고 있다. 나무란 꽃을 매달거나 잎을 내밀 때 살아있는 느낌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백합을 심었다. 혹여 풀로 여겨 어머니가 맬까 봐서 표시를 한다. 풀을 뽑다가 그만하라는 세찬 빗소리에 물러났다.


며칠 뒤 어머니 곁에 앉아 식사를 하던 집안의 형님 되는 분이 코로나 양성반응이 나왔다는. 그 한적한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산 깊고 물 맑은 곳에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웃마을에 외국에 갔다가 온 사람이. 그곳에 코로나 환자가 다섯이나 나와 주변 마을 사람들이 모두 검사를 했다. 다행히 두 번의 검사에서 어머니와 동네 어른들은 음성이 나왔다.


문제는 그 이야기를 들은 날부터 내 몸이 이상한 것을 떨칠 수가 없다. 덜컥 의심이 든다. 힘이 없고 꼭 몸살감기처럼 처진다. 자꾸 눕고 싶은 것이 이상하다. 열이 오르거나 기침은 나지 않고.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병원 선별 장소에 갔다. 일점오 단계로 내려갔다고 검사비용 팔만 원을 내라고 한다. 아들도, 남편도 그냥 검사받았는데 나만 그렇게 큰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 억울했다. 멀찍이 서 있는 남편에게 검사비용을 이야기했더니 보건소에 가면 무료일 것이라고 한다.

오기가 생겼다. 식사를 같이했던 어머니도 괜찮고 동네 다른 분들도 다 음성이었으니 마스크를 잘 쓰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내가 코로나일 수 없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그냥 버티기로 한다. 잡아놓은 약속은 없던 것으로 하면서.

어머니에게 다녀온 남편이 이웃집의 형님이 괜찮아져서 집에 와 있더라고 한다. 얼마나 놀랬으면 마을분들이 집안에 계시면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더라는. 시골 인심마저 마스크 속에 꽁꽁 숨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모두들 터널 속을 터벅거리며 지나는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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