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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by 민진

‘비밀처럼 계절이 흘러 상처들이 아물어 가면’에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삶은 나와 사랑의 나날이었나. 힘들던 세월을 어떻게 버티고 견디어 왔는지. 내 안의 나를 몰라라 외면하고 물처럼 흘러왔나 싶다. ‘설레이던 너는 설레이던 너는 한 편의 시가 되고’


인생은 기나긴 시다. 꽃이 피었다 지는 것처럼 아름다움이다. 포동한 아기 때는 바라보아 주는 이들의 몫이다. 순수하게 내 것이 되었던 것은 어느 순간부터였나.


사진기가 흔치 않았던 시절의 나의 맨 먼젓번 사진은 초등학교 사 학년 때였다. 맏이라서 그런지 제법 의젓해 보이고 해맑다. 기억의 첫머리에는 다섯 살 때 엄마가 사준 빨간 새 잠바를 입고, 이웃 마을에 있는 교회를 혼자서 찾아가고 있는 아이가 또렷이 남아있다. 내를 건너고 들을 지난다. 어린 마음에도 새 옷 때문에 기분이 좋았나. 처음으로 색이 입혀진 나를 만난다.

노랫말 때문인가. 감정이 복받쳐온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니다. 한곡만 도돌이표 해서 듣는다. 물기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위로가 필요하다. 그래 힘들었구나. 애썼다. 마음을 토닥거려준다. 남의 큰 상처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것처럼 발자국 따라 놓여 진 뒤안길을 돌아보니 왜 이리 서러운지.

한 때 카드를 돌려 막다가 딱지까지 붙였던 것을 아이들에게 보이고 말았다. 어느 정도 철이 들었던 큰 아이는 자기를 위해서는 돈을 쓸 줄 모르고 다른 이들만 위해서 사용하는 것 같다. 부모의 부끄러운 모습은 자식에게는 상처다.

노랫말을 들으며 이대로 삶에 떼밀려 흘러가다 보면 늘그막에 다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의 끝은 누구에게라도 찾아오는 것이라고 나를 일깨운다. 읽던 책이 너무 감성을 자극했나. 웅크리고 있던 감정들이 작은 틈새로 터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이런 면이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놀란다.

작은 서랍 속에는 내 아이들의 추억이 자고 있다. 손때가 묻은 것들이 새록새록하다. 언젠가는 돌려주어야겠지. 고사리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짧은 동화 짓기, 책 읽고 뒷이야기 쓰기, 신문에서 그림을 오려 붙이고 이야기 만들기. 함께 했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아이들의 것이기도 하지만 나의 것이기도 하다. 함께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어서 부모 자식 간일 수 있다. 피만 나눠 가진 것이 아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같이 울고 쓰라렸던 순간들 속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지어진 것이다.


요즘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들과 서로 알고 싶은 일들을 가족 카카오 톡 방에 중계를 한다. 같은 기억의 서랍을 가지려는 것이다. 답을 하는 아이도 있고 아예 모르는 척하기도 한다. 자식들도 나이가 지긋해지면 이해해주는 날이 있을는지. 혹여 더욱 튼실한 기억의 공동체로서 우애를 원하는 작은 바람인지도 모른다. 한 부모 밑에 자랐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까.

시 같은 노래를 통해서 슬퍼 보이는 나를 들여다보며 한숨 같은 나를 만난 것이다. 한 소절의 노랫말이 사람을 들었다 났다 한다. 헤어진 연인을 생각하는 노래니까 나와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 묘하게 깊은 울림을 주며 접목이 된다. 애틋하다. 가장 오래, 가장 나아중까지 기억의 서랍 속에 엉켜있는 실타래들을 풀어 가는 것이 앞으로의 세월이 아닐까. 남아있는 시간들을 곱게 물들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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