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란 설레면서도 긴장되고 두려움이 똬리를 튼다. 입학식 새내기 학생들의 풋풋함 속에 다 익은 보릿단 같은 내가 끼었다. 어찌할 줄 모르고 시간만 가기를 바라며 식장에 서있다. 내 자리가 아닌 듯 미안함이 송골송골 콧등에 땀처럼 맺히는 것 같다. 줄 서 있는 것마저 힘이 들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시간도 흐른다. 용기를 낸 나가 무너지기 직전 자리를 옮긴다.
일 학기 수강신청을 하란다. 내 휴대폰이 서버에 가 닿지 않는지 프로그램이 열리지 않는다. 발만 동동 구르다가 어쩔 수 없이 집에 가서 컴퓨터로 해야겠다고 다독였다. 마음으로는 몇 시간씩 흘러간 것 같다. 두 친구가 가까이 오더니 수강 신청했느냐 묻는다. 아니라고 했더니 자기가 해 보겠다고. 내 휴대폰이 안 열리니까 자기 휴대폰으로 수강신청을 대신해 주었다. 할 일을 마무리를 지었다는 것에 안도의 숨을 몰래 쉬었다. 고마움이 봄 바람결처럼 지나간다. 첫날부터 자칫 실패하고 낙담했다면 삼 학년이 된 내가 있을 수 있을는지. 구원투수의 역할을 자청한 것으로 보아 나를 위해 준비된 학생은 아니었을까.
그 친구는 초등학교 이학년 때 종양으로 서울 가서 항암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엄마와 병원 근처에 집을 얻어 기나긴 투병생활을 했다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들을 바라보는 것마저 쉽지 않았다고. 아이나 어른이나 생명에 대한 애착이 다른 것은 아니다.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뒤집어 들여다보면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음이다. 경험이 더해져서 실수를 줄여나간다는 것뿐. 다행히 건강해져서 삼 년 뒤 집으로 올 수 있었다고. 오 학년에 다니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가발을 쓰고 다닐 때 다른 아이들은 곁에 오기를 꺼려했지만 그 친구는 서슴없이 함께였다고.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다고 하여 신기한 장면을 마주하는 것 같다.
둘은 늘 붙어 다녀서 그런지 붕어빵처럼 닮았다. 겉모습은 같은 것 같지만 속은 개성이 다른 맛의 차이가 분명하다. 팥 앙금과 슈크림이 들어가 있는 붕어 뱃속은 빛깔부터 다르다. 불그죽죽 한 팥죽색과 노르스름한 슈크림의 매끄러운 달달함은 뭐하나 비슷한 점을 찾아볼 수가 없다. 같은 점이 있다면 빵 안을 채워 맛을 더한 것이다. 앙꼬가 없는 붕어빵은 생각할 수가 없다.
나를 도와주었던 친구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살필 줄 안다. 아프고 난 뒤 마음이 단단해졌을 수도 있다. 반면 같이 다니는 학생은 자기 이속을 다 챙기는 것이 보인다. 하나도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려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슈크림처럼 달달하면서도 필요하면 흘러내려 자기 유익을 따른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붕어빵을 사 먹을 때는 달달한 슈크림이 더 당겼다. 찬바람 부는 한 겨울에 주전부리로는 그만한 것이 없었다. 한 해 두 해 나잇살이 두꺼워질수록 알갱이가 그대로 씹히는 팥소를 찾게 된다.
입안에 살살 달달하게 녹는 슈크림이야 나무랄 것이 없다. 색도 노랑노랑 예쁘다. 달착지근하여 먹고 먹어도 또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맛이다. 실속이란 실속은 혼자 다 차린다. 젊을 때야 달달하게 입에 착착 붙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면 이제는 입맛도 옛것을 찾는 것 같아 속절없다.
팥이 들어있는 것 같은 친구와 슈크림이 들어있는 것 같은 학생은 한마음 두 몸인 것 같다. 신기한 것은 팥 앙꼬처럼 담백하고 고소한 친구가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면서도 인정을 지닌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다른 친구는 그것을 따르는 듯하다. 그러는데도 같이 잘 어울려 다니는 것을 보면 서로가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부럽다. 이십 대 초반이지만 마음 깊이 의지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보기에 참 좋다. 붕어빵처럼 다정하게 붙어 다니는 우정이 계속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