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싹 대빗자루 비질 소리가 잠결에 붐한 새벽을 뚫고 방문에 매달린다. 맨땅에 수도 없이 금이 그어지고 나서야 멈추던 손이 감꽃은 그대로 둔다.
우리 집에 없던 감나무는 윗집 할머니 댁에 있었다. 높은 화단 맨 가장자리에 우뚝 서서 내려다보던 나무는 거뭇한 뿌리를 벋어내고는 걷어 들이지를 않았다. 새봄이 오고도 꿈쩍 안 한다. 오래된 앙상한 가지만 바람에 젖는다. 황매화가 피고 지고, 보드라운 봄꽃들이 자리를 비켜나면 그때서야 기지개라도 켜는 양 자랑처럼 새잎 돋워 낸다. 방금 수혈을 끝낸 것처럼 수도 없는 노란색 감꽃들을 매단다.
연두의 새끼 감이 빠꼼 밖을 내다보면 아쉬움 없이 투둑 떨어져 내리던 뭉툭한 꽃잎. 왜 그리 마냥 좋아했는지. 애기 골무같이 새끼손가락에라도 끼어질 것 같던 두툼하여 더 다정했던 꽃. 무명실에 꿰어 금빛 목걸이를 하면 무엇도 부럽지 않던 시절이었다.
앞집에는 또래 남자아이가 살았다. 그 아이 엄마는 생선 장수였다. 아침보다 더 일찍 장에 가고 나면 늘 어울려 놀고는 했다. 사금파리에 감꽃 잎을 수북이 담아 밥을 짓고, 풀잎 뜯어와 반찬이라 하며 소꿉놀이를 했다. 나와 그 아이를 엄마 아빠라 하고 동생들은 아들딸이 되었다. 새침한 내가 어울려 놀기는 했지만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가늠하지 못하는 뭔가가 스멀거렸다.
그 아이는 엉덩이뼈가 조금 튀어나온 듯 자연스럽지 않았다. 다름이 차별로 찾아온 첫 감정이었다. 뭔가 아량을 베푸는 것 같은 안개 같은 것이 내 안을 채웠다. 꼭꼭 눌러놓은 나만 아는 비밀이다. 장애인지는 모를 나이였지만 본능적인 촉수는 나를 주춤거리게 했다. 어쩔 수 없이 놀긴 했지만 마음을 뒤로 빼곤 했다. 그 남자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눈만 뜨면 놀러 왔다.
아련하다. 금빛 감꽃처럼 그냥 환하면 되었을 것을. 사금파리 소꿉놀이도 마음껏 즐거워하고. 꼬마 부부도 더 재미나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눈치가 사람을 못나게 했다.
초등학교 높은 학년이 되자 그 친구네는 이사를 갔다. 아무런 소식을 모르다가 몇 해 전 연락이 왔다. 여전히 그때처럼 해맑았다. 꼬꼬마 때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렵게 공부도 하고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과 이루어온 것들이 자랑처럼 빛났다. 소꿉친구라고 해 살 없이 대하는 것을 두고 고상하지 못하다고 속으로 핀잔한다. 작고 옹졸하다. 예나 지금이나 생각이 많아서 탈이다.
어쩌면 그 친구는 그것을 장애로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이 만들어낸 딴지다. 그는 나보다 훨씬 건강한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순박한 그 친구를 보며 오히려 내가 초라해지는 느낌이다. 그 어린 날 새침데기 아이가 지금은 함치르르하면 좋을 것을.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아 두루뭉술해져 가리어졌을 뿐.
감꽃 진자리에 풋감이 예쁜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