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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타나

by 민진

식물은 머물지 않는다. 자람을 계속하여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꽃으로 잎으로 줄기로 확인하여 나간다. 생각이나 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본능이 알려주는 속성을 따라간다. 저 가지 끝 꼭대기까지도 물길을 내어 목을 축이며 살아간다. 맑은 날은 빛으로 세수를 하여 속까지 말개진다. 안으로 껴안은 빛살들은 열매로 뿌리로 잎으로 골고루 나누어 가진다. 말하지 않아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제 삶을 빛과 수분으로 채워 푸른 잎을 피운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벼룩시장과 달장에서 생산자와 판매자를 해 보았다. 중간 유통이 없으니 싸게 팔아야 한다는 암묵적 조건이 들어 있다. 품삯이나 했나 묻는다면 낯간지럽다.

다육 식물 중에 요술 꽃이 환했다. 해가 나자 오므리고 있던 꽃잎들을 소르르 펴 하늘을 본다. 비싸지 않는데도 값을 깎는 얌체 아주머니. 팔아야 되나 그냥 내가 보아야 하나 순간의 망설임이 지나간다. 그곳에 있는 이유에 충실했다. 아파트 모델하우스와 관련된 일을 하는지 화분을 실어주자 일회용 물티슈를 막무가내로 듬뿍 챙겨주었다. 자기 딴에는 값을 깎은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한다는 의미였는지.

미술관 뜰에서 하던 달장에 란타나 화분을 가져갔다. 갓 피어나기 시작한 둥그런 꽃 봉오리들이 새초롬하다.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가 한참을 바라보다가 집에 다녀온다며 갔다. 팔지 말고 데리고 있으라는 말 같은 것은 얼비치지 않은 채. 팔리지 않겠거니 했던가. 젊은 커플이 왔다. 아가씨가 ‘오빠 나 저거 갖고 싶어!’ 하자 남자 친구가 천원이 부족하다고 깎아달라고 한다. 그 가격에 주었다. 물은 언제 주어야 하는지 햇빛을 좋아하는지, 이것저것 물어본다.

식물이라는 것이 그때 그 순간의 예쁜 모습으로 가만히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가 않다. 늘 변화를 추구한다. 살아있다는 것의 표현이다. 가꾸는 이의 손을 타야만 한다. 진 꽃은 따 주어서 다른 아이들에게 해가 없도록 하면, 고마워하듯이 새 가지를 뻗어 꽃을 더 내어준다. 고운 모습을 꾸준히 보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자르고 미운 시간을 견디기도 해야 한다.


마칠 때가 가까워 오는데, 집에 다녀오겠다던 아주머니가 왔다. 란타나 화분이 눈에 밟혀서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이미 다른 주인을 따라 팔랑팔랑 길을 나서 버린 것을 아쉬워하며 가는 뒷모습이랴. 꽃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살아가는 일에 지장이 없다. 단지 맘에 든 것을 가지지 못했다는 순간의 감정이 가끔 낭패감으로 찾아온다. 아쉬움이 배가 된다. 그것이 사람일 때는 평생의 한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다음 달 장에 그분은 다시 와서 꽃들을 바라보고만 갔다. 마음에 꼭 드는 것이 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가끔 망설이면서 다음에 사지 뭐! 할 때가 있다. 다음은 잘 없다. 특히 식물일 경우에는 더 하다. 눈에 자꾸만 밟히면서 마음 한편에서 나무는 소리 없이 자라고 있다. 얼마 전 보고 온 휘카스 움베르타가 그렇다. 산소를 많이 내는 식물이라고 씌어 있었다. 수채화 같은 ‘엔조이 스킨답서스’와 몇 가지를 사는 바람에 움베르타는 다음에 사기로 했는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 다른 것은 다 나중에 사고 서글서글하고 잎 넓고 둥글둥글한 그 녀석을 데리고 오는 건데 하는 후회가 밀물이 되어온다.

나도 그 아주머니에게 란타나를 보냈으면 했다. 꽃을 많이 키워본 분 같았기에. 정표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것을 팔지 말아 달라는 한마디의 언질을, 선금을 조금만 내었어도 좋았을 것을. 아쉽다고, 떠난 기차는 선로를 바꾸지 않는다.

요새 우리 집 란타나가 알록달록 한창이다. 꽃은 화려한데 미모가 별로 없다. 돌보지 않았다고 소리하는 것 같다. 꽃잎이 낱알처럼 다닥다닥 붙어 피어나 한 숭어리의 꽃방울을 완성한다. 처음 필 때는 노란색이었다가 점점 색을 달리해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칠 변화라는 이름을 주었다. 질 때는 꽃잎을 우수수 떨어트린다. 꽃 점 같이 떨어져 바닥에 구르는 것을 볼 때마다, 인생을 생각하게 된다. 때론 옆의 꽃나무에 소르르 쏟아져 새로이 꽃이 피어난 듯 착시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때 마음 한 자락은 란타나를 따라갔는지 모른다. 새로운 곳에서 잘 나고 이쁘게 피어 사람들을 비추는 꽃등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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