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국가정원에서 ‘한 뼘 정원’을 공모한다고 같이 출품해보자는 딸의 제안을 받는다. 좋다고, 이때껏 공부한 것들을 기준하여 이 궁리 저 궁리.
공부하는 엄마에게 힘을 실어 주고 싶어 하는 딸의 기특한 마음이 꽃향기처럼 맡아진다. 아이들을 가슴에서 떠나보내기 위해 허허로운 마음에 꽃을 들여앉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모든 촉수가 아이들에게만 향하여 하늘거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지역의 특성이 드러나게 기념품이나 교육적 자료로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것이겠지. 지역에 대하여 알리면서도 상품성을 고려하겠다는. 눈 돌리면 아파트와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도시 공간에서 작으나마 자연을 느껴 보자는 의미인가.
뭔가가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바람 채워진 풍선같이 가슴이 부풀었다. 딸은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으니 합작하면 괜찮은 것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들었다.
하룻날 전화를 한다. 딸은 순천 국가정원에서 공모를 의뢰한 회사의 관계자를 만나고 왔다며 이러이러하면 좋겠다고. 내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마음이 들어 말하는 중간에 내 생각을 이야기하자 “왜 내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느냐”며 화를 낸다. 저 딴에는 바쁜데도 시간을 내어 알아보고 올 만큼 성의를 보였는데, 엄마가 그것을 몰라주는데서 오는 서운함이 된 소리로 나온 것인지도. 감정의 골이 파인다.
각자의 생각들 속에 빠져있어 상대방의 말을 들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엄마와 딸 사이었으니 더했으려나. 마음이 갈라졌다. 딸은 거기다 지난날 저를 키우면서 서운하게 했던 것들을 쏟아놓는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욕구를 다 채워주지 못했다. 때론 아이들에게 생채기도 냈을 것이다. 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는데도 뭔가 끄나풀이 되면 가라앉아 있던 구정물이 휘저어 올라오듯이 다시 텁텁한 감정의 도가니에 든다.
슬픈 계절처럼, 새파란 멍이 딸과 내 가슴에 채색된다. 옅어지려면 어느 만큼의 세월을 지나야 할까. 하얀 옷에 진녹색의 풀물이 들어 빠지지 않는 것처럼 오래된 기억의 파편 앞에 맥을 못 춘다.
내 어린 날, 매를 든 엄마에게 혼나고선 무릎을 꿇고 앉아 어머니에 대한 불만을 조목조목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다. 어린 마음에 예의를 갖춰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었다. ‘당신은 이러이러한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따지고 들었으니 얼마나 진저리 나는 딸이었을까.
너는 사람을 질리게 한다던 말에, 딸은 상처를 받았단다.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혹 그 사람을 질리게 하지나 않는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고. 그 지난한 시간들이 딸의 저 깊은 맘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나를 바늘처럼 찌르는 것 같다.
내 어머니에게 했던 짓들이 돌고 돌아 딸을 통하여 나에게 반복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한없이 내려앉는다. 나를 닮아서 그런다고 자책해본다.
나비가 알을 낳고 그 알에서 애벌레가 깨어난다. 신기하게도 뻣뻣한 배추 겉잎보다는 부드러운 잎에 벌레들이 보인다. 나비도 본능으로 아는가. 겉잎보다는 속잎이 갉아먹기에 좋다는 것을. 애벌레의 이빨로 사각이며 배를 불릴 수 있는 곳에 알을 떨구어 놓은 벌레 엄마, 나비. 배추 속잎에 어른어른 연둣빛의 꼬물꼬물 한 것들이 붙어있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애벌레의 풀색 똥이 있으면 그곳에 배추벌레가 있다.
부모와 자식 관계가 물 같다가도 얼음 같기도 하다. 응어리에 부닥치면 배추벌레가 싸놓은 똥처럼 감정의 찌꺼기들이 마음과 생각을 다스린다. 먹구름처럼 무거운 시간이다. 배추벌레가 배추 속을 파먹고 자라 가듯 괴로움에 내 속을 파 먹히며 나도 자라 가는 걸까.
배추벌레가 고치를 짓고 그 어둠 안에서 나비가 되어간다. 신비는 작은 것들에게서도 일어난다. 밤이 커튼처럼 하늘에서 내려오고, 비도 은빛 나래를 펼치며 이산 저산 뛰어다니다가 천둥을 만나 무섬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구름은 바람을 만나야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
나는 늘 눈부신 날만 좋아하는지 기우뚱 거리는 것을 힘들어한다. 비뚤거리면 잘못된 것으로 알고 큰일 나는 줄 안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해진다는 사실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둠이 있어야 빛의 귀함을 알 수 있는데.
아직 딸의 마음이 온전하게 풀리지 않았다. 저 스스로 고치를 뚫고 나와 나비가 되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서둘지 않으련다. 어둠의 시간은 날이 밝아 올 것이라는 전제 앞에 서 있기에.